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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어 May 29. 2024

나는 무엇일까요

어둠으로부터 태어나 세상에 나와서도 사람들의 발밑에 몸을 숨기고 살아갑니다. 

항상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사람들은 저를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제 몸을 숨기는 데에 실패해 사람들에게 발견되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저를 세상에 세균 같은 것을 퍼뜨리고 사는 존재처럼 보고 없애려 합니다. 그래서 저도 사람들을 피해 항상 눈에 띄지 않게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한 번만 절 발견하면 잊지 못해요.  


학교에서 자꾸 몇몇 애들의 눈에 띈 적 있었어요. 그날 수업 내내 저를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몸을 한껏 웅크렸는데도  그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저도 존재하니깐. 


수업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저를 째려보던 애들이 저에게 다가왔어요. 

“더러운 새끼.”

저를 교실 구석으로 몰고 가 도망갈 수 없게 만들어놓고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들  중 일부는 빗자루와 대걸레 자루를 들었고, 다른 일부는 자기가 들고 있는 책으로도 절 때렸어요. 그들의 폭력을 피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봤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들 사이를 비집고 도망가기에도 공간이 좁았고요. 


겨우 그들에게서 벗어나 교실 한가운데로 갔는데, 저를 피해 도망가는 여자애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맞고 있었는데. 저를 죽이려 달려든 그 애들보다 그 비명이 더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비틀거리면서도 제법 빠른 발걸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집으로 향했어요. 우리 집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데보다 낮은 곳에 있어요. 그날따라 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영원히 계속될까 봐 두려웠어요. 긴 계단의 끝에 기적처럼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가 있는 게 보였어요. 집에 환하게 불을 켜는 일이 적다 보니 어둠에 익숙해, 엄마가 어둠 속에 있어도 잘 알아봐요. 엄마는 상한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시선을 아래로 제 몸을 짧게 훑어봤어요.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잠깐 슬퍼 보였던 것 같아요. 


“배고프지?”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고 종종 반찬을 가지고 왔어요. 저도 알아요. 그거 사람들이 남긴 거라는 거. 그거야말로 더러운 거일 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거라도 안 먹으면 살 수 없어요. 


“왜 아무것도 안 물어봐?” 엄마에게 물었어요. 

엄마는 한참 말이 없다가 말했어요. “조용히 살자. 살아있는 거에 감사하면서.”


그날처럼 엄마를 죽이고 싶던 날이 없었어요. 엄마, 정신 차려. 내가 조용히 살지 않아서 맞은 게 아니라고, 우리가 살아있는 건 고통 그 자체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우리에게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건 엄마의 이 패배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엄마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서 엄마를 정신 차리게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저는 학교에서 그들에게 맞을 때처럼, 엄마 앞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엄마는 그날 제 손에 죽는 걸 원했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처맞거나 빌어먹다 죽을 운명이라면, 차라리 내가 엄마를, 아니면 엄마가 나를 죽이는 게 낫죠. 그러나 엄마는 끝내 나를 죽이지 못해요. 그놈의 모성애는 비참한 우리에게도 있거든요.

나는 무엇일까요?


내 방엔 창문이 없어요. 거실에 하나 있는 창문에서는 사람들의 발밖에 보이지 않아요. 우리 집이 그들이 걸어 다니는 거리보다 더 어두우니, 사람들은 자신들의 발아래 우리가 그들처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지나온 과거에 대해 되짚어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 줄 모를 거예요.  


사람들이 신경 쓰는 부분은 자신의 머리부터 자신의 발이 닿는 영역까지예요. 자신의 몸에 닿지 않는 부분, 자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내가 죽고, 엄마가 죽고, 내가 살고, 엄마가 살아있는 것에 대해 그들의 눈에 띄지만 않고, 그들의 몸에 닿지만 않으면 전혀 알 바 아니죠. 아니다. 사람들은 그저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네요. 


어둠 속에서 저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항상 사람들과 함께 있거든요. 
사람들이 거리에서, 침대에서, 그리고 내 하늘 위에서 나누는 일상의 이야기를, 저는 다 듣고 있어요. 

때로 사람들은 서로 장난치며 웃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혼자 목을 놓아 울기도 해요. 


제가 어두운 골목으로만 다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저를 괴롭히던 그들이 저를 붙잡았어요. 그들은 저를 묶어두고 제 다리와 몸통을 담배 불로 하나씩 지지기 시작했어요. 제 몸에 대한 탐구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살이 타오로는 냄새가 나고 고통에 몸을 떨었지만, 저는 끝까지 소리만은 지르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들은 제가 죽은 줄 알고 갔을 거예요. 저도 제가 죽어서 다른 세상에서 깨어난 거 아닐까, 아주 잠깐 그런 줄 알았거든요. 정신을 차리고 나서 드는 생각은 엄청난 통증과 함께 ‘아, 역시 그대로의 세상이구나’라는 거였어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저는 몸에 묶인 줄을 풀고 도망쳤습니다. 그때 알았어요. 내 몸은 그들과 달리 아주 작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왜 나는 그것도 모르고 묶여있던 걸까 어이 없었어요. 공포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나봐요.


마치 마녀사냥 당하듯 담뱃불로 화형에 처했던 그날, 이제는 도저히 회복될 수 없다고 여기던 그날, 엄마는 집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요. 난 엄마밖에 없는데.


그 뒤로 시간이 멈췄어요. 우리가 세 들어 산 집 주인은 아직도 제가 그 집에 사는 줄 모르고 있을 거예요. 가끔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이 집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나가요. 저는 사람들이 이 집에 올 때에도 아주 작게 몸을 축소해서 집에서 가장 어두운 구석에 숨어 그들을 지켜봤어요. 얼마 안 가 집 주인도 이 집을 세놓는 걸 포기한 것 같았어요. 오랫동안 사람에게도, 빛에서도 방치된 집. 이제 진짜 제 세상이 된 거예요. 


가끔 꿈을 꿨어요. 대낮에 저의 날개를 활짝 펴고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나는 꿈이요. 어차피 저를 보면 비명을 지르니, 일부러 사람들을 놀라게 해서 더 큰 비명을 지르게 하고 싶어요. 날개를 펼쳐 그들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서 토하고 싶어요. 심약한 사람은 기절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건 제가 바라는 삶이 전혀 아니라, 꿈에서 깨어서도 기분이 안 좋아 토하고 싶어져요.


알아요, 저는 죽어가고 있어요. 아니, 이미 죽었어요. 더 이상 제가 살아있다고 알아주었던 엄마가 이 세상에 없으니 죽은 게 맞죠. 누구도 홀로 자신을 증명할 수 없잖아요. 


아마 제 마른 시체를 발견한 사람도 저를 보고 비명을 지를 거예요. 평생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었으니, 죽어서도 마찬가지네요. 


 이제 저는 흙으로 돌아가는 걸까요? 공중으로 흩어질까요? 전 엄마와 다시 태어날 거예요. 다시 태어나 햇빛 아래에서 꽃 사이를 날아다니다가 꽃에 앉아 당분으로 배를 채우고 꽃가루를 온몸에 묻히고 세상에 흩뿌리며 살 거예요. 그럼, 나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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