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 쓰게 되는 가장 큰 원동력은 고통이다. 고통 안에는 슬픔이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날 고통스럽게 하는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혼자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들이 날 버려서, 내가 그들을 버려서, 누군가를 찾지 않고 혼자 감당하기로 결정해서, 이 모든 것들이 글을 쓰게 만들어서 충분히 다행이 되었다.
아무도 (나조차도) 읽지 않는 노트에 글을 쓰다 보면, 글이 ‘토로’에 가까워진다. 쏟아내고 질문하기. 그게 맞아? 내가 틀렸어? 어쩌라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답할 수 없는,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그럴듯하게 나를 설득할 답을 찾느라 헤맨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괴로움은 커진다. 자신을 꼬리를 먹는 뱀 우르보스처럼 나는 나를 삼킬 듯이 대답을 요구하고, 대답을 하지 못한다.
글을 시작했을 때의 방향을 모르던 간절한 마음이 열 문장을 채 다 쓰기도 전에 사라지기도 한다. 핸드폰이 내 세상이 되었고 그 핸드폰으로 글을 쓰다 보면 종종 있는 일이다. 핸드폰으로 글을 쓰면 빨리 만족하고 돌아서면 금세 궁핍해진다. 손에 든 작은 박스에 스스로 갇히기를 선택하고 한계를 긋는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그거 ‘네 손안에 박스야’라고 말해주기 전까지. 아니면, 핸드폰을 충전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알게 되지.
밖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리는데, 그걸 듣고 있을 때 마음이 동요되지 않으니 내가 얼마나 안전하게 있는지 인식하게 된다. 커튼을 쳐야 한다. 햇빛과 바람을 집 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극에 의해 마음이 물결처럼 움직이게, 파동을 이루게 해야 한다. 동요되는 것이 살아있음의 증거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