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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온 Jan 27. 2020

(서평) 정의란 무엇인가

공리주의, 무지의 장막, 공동선

'정의란 무엇인가'는 조금은 유행이 지나가 버린 책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은 다시 이 책을 떠오르게 한다.



1. 공리주의


이 책은 너무 유명해져 버린 질문으로 시작한다.


전차의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
전차가 선로를 따라 전진한다면 앞에서 일하는 5명의 사람이,
선로를 변경한다면 옆에 있는 1명의 사람이 희생된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밴담이 주장한 공리주의로 첫 번째 해답을 찾아보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함축적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밴담은 다수의 행복이 곧 '정의'라고 말한다.

밴담은 경로를 변경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아마 우리 중 많은 사람들도 이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그럼, 공리주의는 정의로울까.


샌델 교수는 조금은 다른 상황을 보여준다.


배가 난파되어 조난된 4명의 사람이 있다.
1명의 선원은 바닷물을 먹고, 죽어가고 있다.
그들의 굶주림과 갈증이 극에 달했다.
3명은 선원은 결국 병든 사람을 잡아먹었고, 며칠을 추가로 생존해 구조될 수 있었다.


이 상황을 공리주의 관점으로 살펴보자.


1명의 죽음과 4명의 죽음 중,

그들은 1명의 희생을 택했다.

공리주의 관점에서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결정이다.

하지만, 이를 '정의'라고 하기에는 너무 불편하다.


공리주의는 본질적으로 다수의 행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수의 권리가 심각하게 훼손된다. 제산이나 목숨까지도 말이다.


공리주의를 절대적 정의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회는 인간적 감정이 말살되지 않을까.




2. 무지의 장막


'존 롤스'는 어떤 방식으로 '정의'를 주장했을까.

그는 '무지의 장막'에서 내리는 결정이 '정의롭다'라고 말한다.


무지의 장막이란

토론자 본인의 인종, 성별, 직업을 포함한 모든 항목에 대해,
완벽하게 무지한 상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백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노예제 찬반투표를 하는 상황
이를 완벽하게 모르고 투표하는 상황


전자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찬성을 할 것이다.

( 미국의 남북전쟁도 이 때문이었다. )

하지만, 후자의 경우 아마 대부분이 반대할 것이다.

소유주가 되었을 때 만족감보다는, 노예가 되었을 때 고통스러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상황에 대해 무지하다면 인간은 보다 공평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할 것이다.


작은 불이익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모습


한국도 최근 분열의 양상이 매우 강하다.

지역, 정치성향, 소득, 세대, 성별에 따라 각자의 상황에 크게 우선한다.

자본주의의 고도화와 각종 미디어의 영향에 따른 결과이지만, 조금은 답답하다.


나는 '무지의 장막'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이상적이며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최근, 이국종 교수의 사임과 함께 논란이 되고 있는

닥터 헬기 운영에 관련된 병원 사람들.
소음으로 민원을 넣었던 사람들.
이를 방관하는 기관들.


과연, '무지의 장막'에서 내린 결정은 이와 같을까.




3. 공동선


'무지의 장막'은 완전하기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로가 만나서 의견을 나눠야 한다.

'나'만의 이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


이 측면에서 바라볼 때, 최근 매체의 변화는 너무 위협적이다.

유튜브는 주로 1~2명의 같은 견해를 지닌 사람이 말한다.

그리고, 시청자가 이전에 봤던 내용을 기준으로 다시 유사한 컨텐츠를 추천한다.

계속적으로 한쪽 의견만 듣고, 강화되고, 확신한다.


나는 '공동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아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믿는다.


1. 공론화
2. 토론
3. 의견조정(사회합의)
4. 결정


전통적으로 공론화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토론도 조정도 너무 힘든 과정이 되었다.


1. 각자 의견 확신
2. 다수(권한 있는 자)의 결정


지금은, 위 2단계로 모든 것이 진행되는 것만 같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나라의 국민들, 각 국가의 관계 또한 모두 우리와 유사하다.

서로의 말을 한 번이라도 귀담아 들어준다면, 조금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되지는 않을까.




정의를 하면 꼭 떠오르는 글이 있다.

'마틴 뉘밀러'의 이 시로 이번 서평을 마친다.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nicht protestiert.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Als sie die Jud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Jude.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en konnte.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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