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과의 이별여행
화석연료로 대표되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는 그 가치를 발견했던 순간마다 혁신적인 발명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류사에 전쟁, 제도 및 철학 등의 굵직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삶의 대부분을 석탄과 석유등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발견 초기에만 해도 석탄, 석유의 발견은 또 다른 의미의 생태보전활동(삼림보전 등)이었는데, 그 찬사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생태파괴의 주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과거의 혁신이 세월이 지나면서 불합리함을 타파해야 하는 혁신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를 만들고 있습니다.
석탄이 갖는 다양한 역사적, 기술적 의미와 배경을 생각해 보면 이 오래된 물질의 역사만큼이나 같이해온 인류의 문명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근대화의 상징으로 인식된 이러한 기술의 정점에서 산업화를 이룬 우리나라는 화석연료 중독이라는 오명을 갖게 된 과정을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식민지배, 열강의 틈에서 생존의 몸부림으로 시작된 근대화와 함께 남북 분단의 특수성까지 겹친 상황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노력했던 지난 시간의 과정을 단순화시켜 '버려야 할 적폐 대상으로 석탄'을 지목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인류는 석탄을 포함한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해서 기술개발과 문명의 발전을 이루어왔습니다. 이 에너지원은 크게 단순 열원에서 출발하여 고유한 화학반응과 재료 개발의 원료로서의 기능 확대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른바 탄소 중립 혹은 탈 탄소라는 화두가 전 세계적인 열풍과 이슈가 되어 무차별적인 탄소 저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그간의 기술개발과정을 살펴보면 석탄을 포함한 화석연료는 '단순 에너지원'과 '부가가치 원료'로 구별되지 않은 채 오직 경제성이라는 단선적인 가치 기준으로 무차별적으로 남용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사회적 쟁점이 되는 전기,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 등과 같이 충분히 대체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할 여지가 있습니다. 반면 무리한 대체나 전환을 재고해야 할 영역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결국, 자연환경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배출을 억제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명료한 구분 없이 탈 탄소의 관점만을 붙잡을 순 없습니다. 실은 우리 몸도 수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탄소로 구성된 유기물 임이며, 우리의 일상의 삶을 풍요롭게 유지해 주는 숲과 같은 자연환경과 음식의 대부분이 탄-수화물(carbohydrate) 임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석탄의 열적인 연료로서의 직접적인 사용은 값싸지만 이른바 환경적인 이슈를 고려하는 전(全) 주기적 순환 관점에서 가치 산정을 한다면 절대 싸지 않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전 세대 혹은 석탄의 유용성을 발견한 이래, 계산에 넣지 못했던 여러 이슈가 제기되어 왔습니다. 유황성분이 포함되었기에 초래된 산성비, 산성화, 석탄재 등의 흩날림으로 환경과 건강 위협, 연소 산물인 이산화탄소 외에 SOx, NOx 등이 다시 초미세먼지의 원인 물질이 된다는 등.
결정적으로 탄소가 대기 중 잉여된 형태의 CO2로 남겨져서 자연생태계에서 흡수, 재이용되는 한계를 넘어서서 지구의 온난화 원인 물질이 되었다는 주장에 일순간 이 땅에서 영원히 퇴출당하여야 하는 원인 물질로 지목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역기능을 알게 되면서 값싸게 누려온 만큼의 대가 지불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관련해서 기후변화에 대한 특정 산업군의 절대적인 기여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은 서구의 근대화, 식민지화, 제국화의 산물이었습니다. 이미 그런 산업을 통해 성장하고 이제는 그 폐해를 일찍 경험한 나라들은 선진국의 문턱에서 이러한 산업을 자연스럽게 산업화를 갈망하는 타 지역으로 외부화시켜왔습니다. 그래서 그런 국제적인 가치사슬로 재편성된 오늘의 상황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산업의 구조적인 해석, 그 구조 시스템을 통해 우리의 역량을 극대화한 현재 새로운 시각과 잣대를 가지고 새 질서를 재촉하는 서구의 시각을 그저 종속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인류 역사와 흐름 가운데에서 상호 호혜적인 대응을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주도 역시 필요합니다. 탈 석탄의 방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석탄으로 축약된 화석연료의 사용과 효과를 역사적 배경을 동반해서 정리하면서 현재의 잣대로 평가하기에는 아쉬운 다소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극단적인 탈 탄소에 대상 재인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 자체는 문제의 원인이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의 통제되지 않은 오용, 남용 등의 과도한 욕망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탈 탄소전략은 인간의 지혜로운 해결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발생시킨 주체도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대상도 우리 인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지구적 환경문제의 중심 주제가 되어버린 이 오래된 그렇지만 현재와 미래에도 여전한 가치로서 석탄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 기술적 해석과 개발을 통해 얻은 근대 기술의 영향으로 현재 상황이 발생되었다는 의식보다는, 어쩌면 물질과 기술 그런 모든 것들은 ‘가치중립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기술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욕망으로 과다하게 활용되었기에 단순히 버려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지나친 단선적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대상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재 인식하여 바라보면서 문제의 근원이 되는 과도한 욕망의 플러그를 찾아 조금씩 제거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왜 제철(製鐵)을 나무와 석탄으로 시작하게 되었으며, 원유(原油)를 발견한 이후 인류가 열망하게 된 근원적인 해석을 동반하지 않고 단순한 버려할 대상으로서 석탄으로 표현된 화석연료에 대한 인식은 또 다른 오용의 역사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를 담아다소 어색하지만 ‘석탄 중립(coal neutral)’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