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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라의 어른이 Mar 05. 2022

AI 엔지니어가 운전하는 고로를 기다리며

과거의 고로 전문가가 전하는 오래된 고민들.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점진적인 응용 적용사례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수년 전 구글 딥마인드의 AI로 학습한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일전을 통해 전 세계가 인공지능의 학습능력의 위력을 재 인식시켰다. 이후 학습을 추가로 진행한 알파고는 '알파고 마스터'로  더 한번 진화한 후 마지막으로 '알파고 제로'라는 최종 버전을 끝으로 바둑계를 떠났다고 한다.  최근에는 의료, 바이오, 에너지 분야로 옮겨 좀 더 실용적인 응응을 학습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전문가로서 활동하고 있단다.


 용광로(이하에서는 공식 명칭인 ‘고로’로 표현)에 관해서는 수 천년의 활용 역사 이면에 근대에 급속한 대형화, 효율화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blackbox라는 인식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만큼 명확하게 설명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공정이 24시간, 365일 연속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운전자의 교대근무를 통해 감시와 운전을 해야 하지만 여전히 취약 시간대가 존재하고 계절적 특성을 포함한 외부 환경적 영향을 늘 고려해야 한다.  여전히 많은 부분의 개선을 이루었지만 늘 긴장 속에서 공정운영을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수 십 년간의 경험과 전문성을 축적해야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다는 이 까다로운 공정은 최근 삶의 질?을 추구하고 심야에 설비의 안녕을 확인하기 위해 부지런히 둘러봐야 하는 직업환경을 기꺼이 감내하는 젊은 지원자가 눈에 띄게 줄고 있고 동시에 경험 많은 세대의 퇴역을 앞두고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  근대 철강업을 주도하여 선진기술을 이끌어 왔던 일본 철강사의 경우 십여 년 전부터 신규인력의 지원이 현저히 감소하여 고도의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한 쇳물 배출 등을 담당하는 현장 작업반장을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기에 여러 번의 대형 사고를 경험한 바 있다.  


 현재의 필요성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수 십 년 전에도 불었던  인공지능 열풍에 따라 당시에도 고로 운전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때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라는 분야로 명명되어 개발을 추진하였다.  기계가 판단하는 시스템을 구성할 때 제한된 정보 내에서 판단하는 전문가 시스템보다 인간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일상적인 판단이 더 어렵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특정 도메인의 전문지식을 데이터베이스 화해서 그 범위 안에서 최적의 설루션을 찾아내는 이른바 최적화의 한 유형으로 전문가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일반적인 최적화와 다른 점은 컴퓨터 자원의 한계를 고려하여 인간의 경험적인 지식(heuristic)을 이용해 무작정 탐색하지 않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효율적인 검색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당시 철강기술개발의 선두에 있던 일본 철강업에서 먼저 이 응용사례에 대한 계획을 발표한 후 fast follower입장에 있었던 한국 철강업은 빠르게 모방 연구를 착수했다.  당시 고로를 연구하는 연구원이었지만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컴퓨터 활용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내게 그 업무가 부과되었다. 인공지능 탐색 머신에 관한 전문영역 개발이 아닌 도메인 적용이 목적이었으므로 전용 컴퓨터와 툴을 도입한 후,  그 시스템을 이용한 전문가 시스템 개발을 위해 내게 맡겨진 업무는 고로 전문가의 지식을 다수의 규칙(rule)으로 전환하는 일이었다.  기술 표준에 나와 있는 정형적인 지식을 기계가 쓸 수 있는 규칙으로 바꿔주고, 고로를 직접 운전하고 있는 교대 반장, 주임 그리고 공장장과 경험 많은 권위적인? 부장 등의 제각기 주장하는 다양한 자신만의 판단을 정리하여 역시 규칙으로 가공하는 지루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당시 첫 번째 닥친 어려움은 '누가 고로 전문가인가?'라는 이슈였다.  당시는 고로가 가동된 지 20년이 채 안되었던 시기로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충분한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 수준이었다. 그런 한계 속에서도 공장별로, 교대조별 선임 운전자와, 운전경험은 많지 않지만 판단 결정권을 가진 공장 관리자, 그리고 이론에 밝은 연구자들 중에서 최종적인 규칙(rule)에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를 선택해야 했는데 기준이 모호했다.   우선은 2,3 배수로 선정된 전문가의 공정운영원칙을 기술하여 운영해 보니 서로 충돌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자신만의 판단기준이 어쩌면 거대한 고로를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과 판단기준 간격이 예상보다 컸기에 가장 무리 없는 수준으로 공통적인 규칙으로 정리해 보니 굳이 전문가가 해결할 수준이 아닌 일반상식에 가까웠다.  당시에 어느 교대 주임은 오로지 고로 노체의 온도 추이만을 고집하는 반면, 다른 주임은 노체의 압력 값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곤 하였다. 그 결과 8시간마다 직전 교대조가 취한 조치를 다음 교대조가 무의미한 것으로 거두어들이는 기이한 풍경이 흔하던 시기였다. 두 번째 문제는 고로에서 직접 획득되는 데이터인 온도, 압력, 형상 등의 계측 값을 판단 규칙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가공, 변환시켜야 하는데, 예를 들어, 높다, 낮다, 상승 혹은 저하 추세이다.. 등등..,  이런 전처리 작업이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별도로 구현되어야 했다.  마지막 이슈로는 고로로 장입 되는  철광석(소결광 및 정립 광등)과 석탄(코크스, 미분탄 등)의 불규칙한 성상이 가져오는 수많은 변화를 담을 수 없었다.  정성적으로 조업자가 컨베이어 벨트로 지나가는 장입 연원료를 감성적?으로 확인한 결과를 주관적으로 판단해서 감안하는 수준이었다.


 당시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주제였기에 부담을 가지고 열심을 다했으나 결국 가동 중인 고로가 알리고 싶은 자신의 상황을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의 충분한 확보와 전환 과정이 턱없이 부족함을 인정해야 했다. (포상은 받았지만..). 혹여 가능했다 하더라도 그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연산할 수 있는 컴퓨터의 능력이 현재 기준으로 보면 걸음마 수준이었다.  그때 당시의 컴퓨터는 피시급으로 16비트 수준이었으므로 전용 워크스테이션을 사용하였지만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먼저 개발을 시작했던 일본 철강업계도 이후 더 이상 개발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우리와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개발에 참여하면서 인공지능을 포함한 ICT 관련된 세계를 알게 되자 고민이 생겼다. 과연 지금까지 배워왔던 나의 본래 전문분야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계를 찾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같이 연구하던 대학교수도  몇 차례의 동업 제안 이유로, 자신도 매일 새롭게 배워야 생존할 수 있는 여건이기에 배경과 상관없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그때 이후 난 인공지능개발업무를 떠나 본래의 전문분야로 돌아와 수 십 년의 세월을 보냈다.


  몇 년 전 알파고와의 바둑 대국 일전이 종료된 다음 날, 동료 연구담당 임원은 CEO에게 철강공정에 인공지능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그 이후 아직 경험과 전문성이 일천한 주변의 여건을 모아 고로의 AI 공정운영을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 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도메인 전문가(domain expert)의 AI 학습, 외부 전문가의 tool운용지원, 그리고 디지털로 표현하지 않았던 수많은 아날로그적 정보와 비정형 데이터를 컴퓨터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할 수 있도록 투자와 개선을 통해 어느 정도  효과를 얻게 되었다.  현재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원을 통해 확인해 보니 과거 내가 고민했던 부분의 대부분이 개선되었고 ,  고로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정보들을 딥러닝 기법으로 가동된 정보를 이제는 50년에 가까운 경험을 가진 전문가의 판단 규칙을 통해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동시에 데이터 처리능력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정형 데이터는 물론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도 상당 수준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나름 이분야의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내 시각으로도 이 거대한 블랙박스를 온전히 AI에게 맡기기에는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사람만이 해야 한다고 여겨진 영역을 조금씩 기계에게 넘겨줄 수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특정 도메인과 AI machine 간의 연결을 온전히 이해하는 전문가가 늘어나는 것은 부수적인 성과이기에 어쩌면 예상보다 빠르게 AI 엔지니어가 고로를 운전하는 시대를 생전에 볼 수 있을 것 같다.


 급속한 기술발전의 시기를 살았던 경험을 통해 몇 가지 생각이 떠 올라왔다.   오랜 기간 인간이 판단의 중심에서 필요했던 데이터의 관점에서 이제는 기계가 요구하는 형태의 데이터는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날로그 플랫폼으로 구축된 과거의 시스템에서 성능개선을 위해 추가해왔던 디지털 데이터 형태와는 다른, 기계가 주체적으로 사용할 또 다른 모습의 데이터가 어떤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생겼다.  더 나아가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할 때 이제는 AI 시스템 구현을 전제로 설계하면서 필요한 데이터의 종류와 위치 등에 대한 선제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날로그 시스템에 디지털을 입힌 어설픈 모습이 아닌 디지털 중심의 시스템의 온전한 구현 모습은 어떠한가.

 미래의 고로 전문가에게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나 자신을  과거의 전문가였다고 소개한 후 주고받을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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