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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김작가 Dec 11. 2016

「링에 어서 오르십시오!」

#53.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당당한 고백


내가 할 말은
네가 원하는 대로 연주하면 된다는 거야.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건 생각할 것 없어. 연주하고 싶은 대로 연주해서
너를 세상에 이해시키면 돼. 설령 십오 년, 이십 년이 걸린다고 해도 말이야.



재즈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멍크>가 한 말이란다.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수 없다면, 나 혼자 즐길 수밖에 없지'



<리키 넬슨> '가든파티'라는 노랫말에 이런 말이 나온단다.



하루키는 고백한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쓰든 결국 어디선가는 나쁜 말을 듣는다. 그러니 뭐든 상관없어. 어차피 나쁜 말을 들을 거라면, 아무튼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자."


그리하여 하루키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다, 나 자신이 납득할 수 '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정기적으, 아무튼, 꾸준히 쓴다> 강조한다.

그리고 거듭, 외친다.



'실제로 나는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데 뭐, 이렇게 쓰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잖아. 그게 뭐가 나빠?



'기분 좋다는 게 뭐가 나빠?'






무라카미 하루키는 21세기 소설을 발명했다. _《뉴욕 타임스 북 리뷰》

                                              


1979년 등.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 한 업(業)'이 글쓰기라고 정의한 <하루키>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는지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하루키는,


1. 자신의 내면에서 '이제 슬슬 써도 될 것 같은데'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할 때

2. 뭔가가 차오르는 그 순간을 잘 포착하여

3. <머릿속 서랍>에 기억해 두었던 재료들을 끄집내어 잘 버무린 다음

4. 자신이 가장 잘 구사하는 언어를 무기로 삼아 자신의 눈에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것, 자신이 쓰기 쉬운 말로 써 나가는 것



이것이 자신의 '글쓰기 절차'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하루키는 책의 곳곳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모를 '분명하, 콕' 짚어다.



소설가는 어떻게 글을 쓸까?

그것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야 한다.

하루키는 말한다. 소설가로서 뭔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차오르는  '기다림'의 시간은 필수이며, 글을 쓰는 과정 중 '양생(일명, 재워두기)'의 단계도 필수임을 말이다.

소설을 한 번 다 쓴 후에는 그동안 쓴 글을 진득하게 재우는 <양생의 시간>을 가질 것! 그러고나서 어떤 문장이건 반드시 개량의 여지는 있으니, 자존심 이나 자부심 따위는 내던지고, 달아오른 머리를 적정하게 식힌 후 반드시 퇴고할 것! 그것만이 글을 잘 쓰는 비법 아닌 비법임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다.  

 



소설가로서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하루키는 고백한다.

글을 쓰는 자신의 고유한 시스템은, '35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의도적으로 마련되어 온 것임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인 자신은 거저 타고난 게 아니라, 늘 스스로를 꼼꼼하고 주의 깊게 정 소중히 유지 관리해 온 결정임을 말이다.  

소설가에게 있어서 완벽한 글쓰기란 '어느 한 순간도 게으름과 방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음' 경고한다.  



소설 쓴다는 것!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비록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될 그 무엇'이라고 에둘러 말하고 있지만, '하루키'라는 작가는 분명 치열하게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임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끼게 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도 남을, 강한 의지력과 힘 그리고 무엇보다 당당함이 책의 곳곳에 넘친다. 그래서 그가 내뱉는 이 독백은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전혀 기분 나쁘지가 않다.


'기분 좋다는 게 뭐가 나빠?'


한없이 매혹적인 울림, 그 자체다.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지만,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점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한 쌍의 눈만 갖고 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 입니다. 이런 멋진 직업, 이거 말고는 별로 없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하루키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누군가를 향해 유혹을 멈추지 않는다.  명망 높은 작가로서 경험한 '소설'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설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때때로 깊은 우물의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으로 고독한 작업을 일삼아야 하는 것이 소설가의 숙명임을 고백한다.



'인내심과 지속력을 지니고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수없이 되뇌이면서 달리고, 또 달린다는 하루키!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고, 아무도 '오늘 아주 잘했어'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지 않아도, 글을 써내는 작업 그 자체에 대어느 누구도 평가해 주지 않아도, 그 절대고독의 순간을

'on a day  at the time(하루씩 꾸준하게)'

이라는 모토 하나로 꾸준히 정하는 이면에는, 글을 쓰는 그 어떤 쾌감이 강하게 출렁임을 상상해볼 수 있다.

어쨌든 하루키가 제시하는 글을 잘 쓰는 비법. 그것은 오직 '하루씩 꾸준하게' 정해놓은 분량대로 써대는 것! 이것 이 외에는 글을 잘 쓰는 비법 따위는 애당초 없음을 거듭, 거듭 천명한다.


  



오리지낼리티란 무엇인가?
…… 만일 내가 쓰는 소설에 오리지낼리티라는 게 있다면,
그건 '자유로움'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정보 과다라고 할까, 짐이 너무 많다고 할까, 주어진 세세한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자기표현을 좀 해보려고 하면 그런 콘텐츠들이 자꾸 충돌을 일으키고 때로는 엔진의 작동 정지 같은 상태에 빠집니다.

그러면, 무엇이 꼭 필요하고 무엇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지 어떻게 판별해 나가면 되는가.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루키는 소설을 쓰는 밑바탕으로 '머릿속에 없어도 되는 콘텐츠'를 모조리 지워, 사안을 '뺄셈'적으로 단순화한 후 <자유롭고 내추럴한 감각으로 쓴다>고 말한다.

오리지낼리티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 제약 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생생하게 전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충동이 몰고 온 결과적 형체임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그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사람들의 마음의 벽에 새로운 창을 내고 그곳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고 싶다.' 그것이 소설을 쓰면서 항상 내가 생각하고 희망하는 것입니다. 이론 따위는 빼고, 그냥 단순하!



글쓰기에 대한 철학이 엿보인다. 문득 나도,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즐거운가?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종인가?


소설가라는 인종은 수많은 결함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에 관해서는 대체적으로 대범하고 포용적인 것 같습니다.  그건 어째서 일까요?

내가 생각건대 그 답은 아주 확실합니다. 소설 따위 -'소설 따위'라는 말투는 약간 난폭하긴 합니다만-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소설이라면 문장을 쓸 줄 알고 볼펜과 노트가 손 맡에 있다면, 그리고 그 나름의 작화 능력만 있다면,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아도 일단 써져 버립니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프로레슬링 같은 것입니다. 로프는 틈새가 넓고 편리한 발판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링도 상당히 널찍합니다.…… '좋아요, 누구라도 다 올라오십시오'라는 기풍이 있습니다.



이렇게 '소설라는 직업은 다른 전문 분야에 비해 손쉬우며, 개방적이고, 융통성마저 있다'고 하루키는 소개한다. 하지만,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그래서 하루키는 다른 전문 영역의 사람이 로프를 넘어 소설가로 등단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포용적이고 대범한 게 아니겠냐고 결론내린다.

'자, 올 테면 얼마든지 오시죠' 와 같이 여유를 부리면서 말이다.



끝으로, 하루키는 경고한다.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면서 <오로지 문장을 주물럭거리는 둔해빠진 업을 해야하는 소설가>는 인내끝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래도 그 세계에 들어가 한 판 게임을 해 보고 싶은 그 누군가에게 이렇게  휘익, 던진다.  



'링에, 어서 오십시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다음 달이면 일 년이  간다.


처음에는 책을 읽고 정리삼아 글을 써서 직접 찍은 사진들과 함께 웹상에 올려 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글을 쓰는 일은 무척 재미있었고, 한 편 두 편 계속 글을 쓰다보니 지금 까지 전해왔다.


사실,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면서 글까지 쓴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충분히 바쁘고 힘든 나날들인데 또 이리, 없는 시간을 내서 굳이 공개적인 글을 쓰다니……. 글을 써서 도대체 내가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한동안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던 적이 있다. 모든 게 뚜렷하진 않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는 분명했다.바로 그것은, 즐거!



글쓰기에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글을 써내려 가다 보면 어떤 날은 글이 휙휙 쉽게 써질 때가 있고, 어떤 날은 잘 풀리지 않아 표현에 애를 먹을 때도 있다. 또 가끔은 나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글이 흘러가, 처음 생각했을 때와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주제가 나쁘지 않아 오히려 완성 후 회심의 미소를 짓곤 했었다. 이렇게 어떻게든 한 편의 글이 완성될 때마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감이 뒤따른다. 대단한 마력!

이 마력 때문에 이제는 글쓰기를 그만 둘 수가  없다. 이제 글쓰기는 내게도,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내 필명은 '달리는 김 작가'다.

이 필명을 처음 지을 때도 그랬고 시간이 좀 흐른 지금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달리고 싶다. 그저 달리고 싶을 뿐.'


어떻게보면 갑작스러웠지만 글쓰기로 달리는 것을 시작했으니,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도중에 걸을지언정 계속 달릴 것을 다짐 본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엔가는 하루키의 권유대로 소설을 한 편 써보는, 링에 오르는, 그 벅찬 경험도 한 번쯤은 할 수도 있으리라는 기분 좋은 상상까지도 해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보면, 내 지식의 미약함에 부끄러워 어둠 속으로 숨고 싶을 때도 있고, 무수히 넘쳐나는 잘 쓴 글들을 볼 때마다 상대적으로 미약한 나의 글솜씨에 주눅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하루키의 말대로, 내 글들이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도 없는 일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이나 위로를 줄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쓰든 결국 누군가는, 어디선가는, 이것도 글이냐며 나쁜 말을 해 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두 눈을 딱, 감을 일이다. 하루키의 조언대로,

'그저 꾸준히, 아무튼 내가 쓰고 싶은 , 내 맘 대로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

그것만이 정답임 명심, 또 명심할 일이다.





우리의 삶은 뭔가를 망설이기에, 뭔가를 주저하기너무 빨리 흘러가버린다.

그러니 어느 분야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자신이 즐거울 일에 오늘도 앞을 향해 내 흥에 겨워 달리고 달릴 것! 그것만 아무튼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의 외침을 다시 한번 따라해 본다.



'기분 좋다는 게 뭐가 나빠?'



이 외침은 정녕,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마법 같은 주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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