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은 언제나 옳다

도도한 파리 3

by 리아

첫 날 마지막 배를 놓쳐 실패했던 세느 강에서의 유람선, 바토무슈를 생각보다 빨리 탔다. 함께 간 친구들은 나 포함 총 다섯명. 이제와 아쉬워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 다섯 명이 함께 아름답게 나온 사진이 없음이제일 안타깝다. 그래도 마음이 너무 예쁜 어린 친구들 셋과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장난꾸러기인 오빠 한명과의 세느 강 위에서의 하룻밤은 잊을 수가 없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어느 도시의 어느 공간을 가든지 야경은 진리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야경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밝은 불빛들이다. 야경이진리이고 또 때론 눈물 나게 아름다운 이유는 너무나도 극명한 서로 반대의 것이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둠이 있기에불빛이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꽁꽁 싸매고 탔음에도 불구하고 강 위의 칼바람 때문에 너무 추웠지만 언제 다시 돌아와탈 지 모르는 세느 강의 유람선이기에 사진을 찍는 데 빠져 있었다. 아마 여름이었더라면 유람선 위에서보는 파리의 밤은 이토록 화려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야경을 좋아한다면 단연 겨울 여행을 추천하는바이다.

너무 추워 당시에는 머릿속까지 하얗게 어는 듯 했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서 깊은 울림이있었다. 다른 게 아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것에 마음 한켠이 찡한 이유는 살아오길 잘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살면서 힘든 순간은 매우 많았고 다양했지만 작년내게 닥친 시련은 나를 충분히 피폐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슬픈 생각이 든다는 것이 조금은씁쓸했지만 내 뒤로 스쳐 지나가는 밤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에펠탑은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 바토무슈를타기 바로 직전에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이 반짝이었던 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매 정시에 오분 가량반짝인다는 에펠탑은 너무 빛이 나 혹 비행기 위에서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터무니 없는우스운 생각이었다.

사진을 찍겠다며 한참 동안 2층에서 강바람을맞다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몇 장 건지고 나서야 1층으로 내려갔다. 갑자기훅 따듯한 기운이 느껴져 아찔했다. 세느 강을 한 바퀴 돌고 거의 도착할 때 즈음이었으니 꽤나 오랜시간 매서운 강바람을 맞고 서 있었던 것이었다. 이 때만 해도 몰랐다.지독한 감기가 여행 한 달 내내 지속될 줄은 말이다. 파리만 버티면 포근한 지중해 날씨를맞을 수 있는 바르셀로나와 로마가 기다리고 있기에 두툼한 겨울 옷을 챙기지 않은 탓이었다. 다시 돌아올수 없다는 생각에 아름다운 사진을 꼭 건져가겠다는 다짐에, 패딩 점퍼는 한국에 두고 온 판단 오류가여행 내내 나를 괴롭힐 줄은 정말 몰랐다.

볼이 차가웠다. 안면 근육이 얼어 어색하게미소 지을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에펠탑 앞을 지날 때 하트를 그리며 실루엣을 남긴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사진은 언제나 연출하기 나름이었다. 한 시간 동안 얼어버린 내 볼을따스하게 녹여줄 손길이 간절했지만 타지에서 그런 감동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삼일 째였지만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유럽 여행에서의 로맨스를 포기했다.너무 늦게 혹은 너무 빨리 깨달아 슬픈, 기대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나의생각이었다. 함께 구경을 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는 이 친구들과도 여행이 끝나면 당연하게 이별할 테고꼭 이성이 아니더라도 그들과의 이별을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원래 그런 것이었다. 그런 게 어쩌면 여행의 이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그래서 나는 더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어주기 쉽지 않았는가 보다.

우리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위해 유람선에서 내리자마자 열심히 달렸다. 전날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먹었지만 여행하는 동안 하루의 마지막은 언제나 술 한 잔이 최고였기에 오늘의 삼겹살파티를 놓칠 수 없었다. 마트에 들러 싼 가격을 뽐내며 일렬로 자리하고 있는 와인들 중 아무거나 손에잡히는 대로 두 병을 골랐고 혹시나 하여 맥주도 두 어 병 집어 들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늦었지만술을 잔뜩 사 들고 온 우리를 반기는 것은 구수한 삼겹살 냄새였다. 그 날 밤도 우리는 즐거이 술을마시고 여전히 취기가 부족함에 다음 날 아침 일찍 투어를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잔을 위해 밤거리를 나섰다.

SAM_6422.JPG 2017년 1월 3일 바토무슈 위에서, 사랑해요 에펠탑 사랑해요 파리!



술자리는 언제나 옳다.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누군가를 온전히 알기 쉬운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 아닌 '술'이다. 충분히 그대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던 파리에서의 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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