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와 고흐의 유혹에 빠진 날

도도한 파리 2

by 리아

혼자 다니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 오롯이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외로움을 잘 타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을 싫어한다. 그런 성격의 내가 유일하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시간이 바로 ‘여행을 할 때’다. 어불성설이고 앞뒤가 맞지 않지만 정리하자면, 쓸쓸함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내가 혼자 여행을 떠날 때 만큼은 쓸쓸함을 ‘감내’하려 한다. 이런 내 자신이 조금은 우습기까지 하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근 한 달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한 것은 사실 매우 무모한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쉴 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이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곳과 이번이 아니면 어려울 것 같은 기간을 정했다. 그리고 나는 그 짧은 시간에 항공권을 끊고 숙소를 예약했다. 오로지 딱 두 가지만 했다. 어차피 갑자기 이루어진 일련의 일들이기에 세부적인 계획을 짤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겁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파리에서의 숙소는 단연 한인민박이어야만 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성공적이었다. 비록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많은 친구들이 나보다 어렸지만 다양한 그들만의 삶의 방식대로 충분히 성장한 아이들이었고 나는 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해외여행을 몇 번 다니면서 ‘진짜’ 한인민박은 처음이라 걱정을 했었는데 그런 걱정은 접어둔 지 오래였다.

언니, 우리 내일 같이 미술관 가요!

독일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다는, 무려 네 살이나 어린 친구가 내 팔을 꼭 잡으며 말했던 것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파리의 한인민박에 입실한 첫 날 저녁에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으며 말하는 이 친구 덕분에 어쩌면 외로운 시간을 갖자고 생각했던 나의 마음이 스르르 녹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첫 날 밤, 아니 실제로는 파리에서의 둘째 날 밤, 한국에서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슬슬 풀리던 나는 한인민박 친구들과 새벽 두 시까지 칵테일에 취하고 촉촉한 파리의 밤거리에 흠뻑 취했다.

늘 여행을 할 때면 일일 일정까지 다 짜서 다녔던 나였지만 이번 여행은 예외였다. 그래서인지 시차적응이라는 핑계를 대며 하루 이틀은 그냥 숙소 주변을 둘러 보려 했었다. 파리에서만 12일 가량 머물기로 했으므로 나에게는 매우 시간이 많았으니까. 나보다 어린 두 친구 손에 이끌려 아침부터 조금은 황량한 공원 길을 지나 오랑주리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 정말이지 그냥 쉴 걸 이라는 후회를 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갈 때에는 항상 유념해야 했는데 꼼꼼한 나조차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나서 불러 일으킨 결과였다. 오랑주리는 사진 찍기 좋다는 다른 친구의 말에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예쁘게 차려 입고 나갔건만, 화요일은 휴무였다. 몸을 녹이기 위해 아이들을 꼬셔서 카페에서 모닝 커피를 한 잔 씩 하고 다른 미술관으로 가자는 아이의 말에 바로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나는 고흐와 모네를 좋아했다. 고흐의 그림은어딘가 마음 한 구석을 찡하게 해서 좋았고 모네의 그림은 거칠어 보이지만 아름답게 그려낸 것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두 화가가 안쓰러워서 그 둘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나가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가 불쌍했고 눈이 점점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다리를 그려낸 모네가 안쓰러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지만 한국에서 오르세 미술관 전을 하는데 딸려갔는지 볼 수가 없었다. 고흐 그림 하면 떠오르는 해바라기 그림들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아쉬움이 컸다. 다행스럽게도 모네의 다리 그림은 있었다. 점점 다리의 형체가 망가져 보이는 그림을 그린 모네는 얼마나 답답하고 마음이 아팠을까. 다음 날 예약해둔 몽생미셸 투어에서 함께 볼 에트르타 그림도 미리 볼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그림에서조차도 에트르타 코끼리 절벽의 웅장함이 절로 느껴지는 듯 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은 모네와 고흐 외에도 많은 훌륭한 작품들로 가득하여 꼭 두 번은 가봐야 하는 곳으로 기억했다.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 즈음 미술관 구경을 마쳤다. 습관이기도 했고 워낙 미술관과 박물관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전시회를 보러 가면 늘 하루를 꼬박 새었지만 이제는 그럴 힘이 없었다. 그저 반나절 밖에 돌지 못하는 내 체력에 안타까울 뿐 이었다. 장기간의 여행에서 매 순간순간 느꼈던 거지만 앞으로 나는 더 멋진 여행을 위해 그리고 점점 줄어드는 내 시간을 위해 반드시 체력을 길러야만 하겠다. 내 멋대로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나서 먹은 스테이크는 사실 모네와 고흐에게 느꼈던 동정심마저도 너무 금새 잊게해주었다. 언제나 시장이 반찬임은 틀림없었다.

2017년 1월 3일 오르세 미술관의 촬영 핫 스팟, 시계 앞에서.

여전히 돌아보니 아쉬운 것은 열흘이 넘는 시간의 여유를 우습게 알고 오랑주리 미술관을 가지 않은 것. 언제나 여행하면서 가장 내가 미울 때는 다름 아닌 게을러 질 때, 그리고 체력이 딸릴 때였다. 분명 그저 사는 것과 진짜 여행을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 순간이 여행인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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