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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우 Dec 23. 2020

고양이 vs. 크리스마스 트리

승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사 후 첫 성탄절인데, 적어도 트리는 꾸미고 싶었다. 하지만 '고양이 가정의 트리 참사.jpg'를 보고는 생각을 접었다. 누군가처럼 트리를 징역형에 처하거나, 거꾸로 매달아버릴 용기는 없기에. 두 마리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로서는 너무 큰 모험이 아닌가.


구글에 '고양이 트리'를 쳐보시라. 엄청난(?) 사진들이 많이 나온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트리 없이 크리스마스를 보낸단 말인가?


맞다, 결국 질러버렸다. 마음속 네고를 거듭해 아주 작은 놈으로 장만했다. 와이프를 깜짝 놀래줄 요량도 있었다. 부디 요미(0.5세)가 새 장난감으로 여기지만 않길.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했던가. 트리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요미와의 대면식을 감행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첫 만남에 냥펀치는 아니겠지?


초면이라 부끄러운지 냄새만 맡는다


5252, 그건 먹는 게 아니라구...


꽃향기를 맡듯 트리를 조심스레 킁킁하던 요미는, 이내 장식품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더니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핵주먹을 날렸다. 이거 좀 만만하다 싶었던 건가. '냄새 맡기'는 추진력을 얻기 위한 사전작업에 불과했나. 찰나의 순간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트리는 살아남았다.


강펀치 날리는 순간을 포착했다. 이것은 무도인의 자세다


요미는 승리했다고 느꼈는지 패자(트리)를 남긴 채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물론 뒤처리는 집사의 몫. 짜증은 났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알게 됐다. 트리와 고양이는 제법 잘 어울린다는 사실. 가만히만 있다면 말이지.


간만에 건진 묘생샷. 사진 고자치고는 잘 찍었다


혹시 모를 '2차 트리 습격'을 막기 위해 사냥놀이로 요미의 HP(체력 포인트)를 깎아놓았다. 요미는 만족했는지 안방으로 가더니 침대 위에서 뻗어버렸다. 이미 한자리 차지하고 있던 까미도 큰 텃새 없이 동반 꿀잠을 허락했다. 왜인지 1차 세계대전 당시 크리스마스 단 하루만 휴전하기로 했다던 독일군과 영·프연합군이 떠올랐다.


뻗어버린 요미와 (미용 후) 민둥이가 된 까미. 묘하게 가까운 듯 멀어 보이지만 착각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차피 집콕일 것 같으니, 사고뭉치 두 녀석과 오붓하게 시간이나 보낼까 한다. 트리는 성탄절 끝나기 전까지만 사수하면 되겠지. 어차피 26일부터는 온갖 장난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요미의 최애 놀이터로 거듭나지 않겠는가. 안타깝지만 세상엔 거스를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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