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의 시기는 단연코 온다. 누구 말마따나 '아프니까 청춘'식의 허울 좋은 말이 아니다. 좌절은 나이나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권력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갑작스레 들이닥친다. 예측 불가며 불가항력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단 한 순간도 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인간'이라면, 그럴 거다.
나 역시 고통의 순간이 있었다. 이십 대 초반 버텨내기 힘든 일을 겪었다. 사람이 무서워졌고, 대화가 두려웠다. 인간관계는 조각났다. 인생에서 황금기와도 같은 시절을 체념하며 보냈다. '멀쩡한 척'을 위해 무던히 노력했기에, 살아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당시 나는집 안에 틀어박힌 채 최대한 침대와 한 몸이 됐다. 말 그대로 '이불 밖'은 무서웠다. 스마트폰도 대중화되지 않은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읽는 거였다. 책에서 뭔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까, 이 책 저 책을 떠돌았다. 그런데 읽을수록 깨닫는 게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좌절을 겪으며, 그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 이었다.
동화 <미운 오리 새끼>의 작가 '한스 안데르센'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세일즈계의 전설로 불렸던 빌 포터는 난산 과정에서 의사의 실수로 뇌성마비를 얻었으며, 이케아의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난독증으로 고통받았다. 유명배우 '짐 캐리'도 한때 노숙자 신세로 할리우드 밤거리를 떠돌았고, '스티브 잡스'조차 애플에서 쫓겨나 실업자가 된 적이 있다.
물론 현재 진행형으로 좌절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결국 '성공해버린' 유명인의 이야기는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처음엔 나도 그랬다. 그러다 이내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오기로억지를 부려 본 거다.
어떤 사람이건 좌절은 한 번쯤 겪게 마련이니, 나 역시 아주 단순한 자연의 섭리 중 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 겪지 않더라도 언젠가 겪게 된다면, 차라리 (매를) 빨리 맞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우습지만 그게 나의 탈출구였다. '누구나 겪는 걸 나도 겪을 뿐, 나중에 혹시 성공하면 자서전에 문구 하나라도 더 보탤 수 있겠지'라는 말도 안 되는 허세 혹은 자기 합리화.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중 일부는 현실이 됐다. 성공인지는 몰라도 원하던 일을 하며, '좌절담'을 수줍게 풀어놓기도 하는 걸 보면.
시간이 지나 나의 '이론'은 사실로 밝혀졌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아픔을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힘들었고, 좌절했고, 심히 괴로웠다. 실패한 적이 없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기껏 수십 년밖에 살지 않아 아직 '검은 백조'를 발견못한 건지는모르겠지만.
'누구나 겪는 거니까 견뎌라'는 쌍팔년도식꼰댓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어쭙잖은 위로도, 네 심정을 다안다는 텔레파시적 충고도내뱉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 좌절을 겪는 이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아픔은 훗날 너의 이야기를 빛내줄 향신료가 될 거라고. 나중에 브런치에 쓸 문장 하나는 더 생기는 거 아니겠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