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가는 길
보세요,
당신이 보여주신 '첫눈'과 제가 밤새 쓴 '반성'을 함께 들고 우체국을 찾습니다 쌀쌀해진 바람과 그래도 눈이 부신 햇살을 안고 문 앞에 다다르면 혹여라도 당신의 모습이 비칠까 해 설레곤 했습니다
기다림은 갈수록 낙엽빛으로 물들고 그 환한 노을빛도 금세 저물면 우리는 새로운 저녁을 맞고 낙엽처럼 그리운 나날들이 또 하루 저문다는 일이 매번 서럽겠습니다 서럽다는 말이 쌓이면 저절로 아름다울 수 있는지도 항상 궁금했습니다
보세요,
가슴 벅찬 일들은 때때로 생겨나는 법이어서 당신이 찾아주신 제 이름이 단번에 형광빛을 되찾고 긴 긴 밤을 뒤척인 열망도 이내 숨을 고르면 어느새 다정한 공기가 폐부로 스며듭니다 스민다는 일이 스친다는 일보다는 언제고 반가운 법입니다
형광펜 대신에 네임펜으로 글자들을 꾹꾹 눌러 적으며 당신의 이름을 기억했습니다 약속을 지켰다는 기쁨이 앞서 또다시 인증샷 한 장을 찍어봅니다 메신저로 당신에게 사진을 전송하는 동안 어쩌면 제게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찾아왔나 봅니다
보세요,
알 수 없는 말들은 비밀스런 사연만 가득한 채 허공을 맴돌고 기억이 겹칠 적에는 가끔 우리가 그 단어들을 조합해 남몰래 속삭일 수도 있겠습니다
운명이 비밀스런 치장을 한 채 알 수 없는 순간들을 향하면 이윽고 나란히 선 두 눈길로 가만히 맞는 저녁입니다
알 수 없는 계절이 당신의 이름을 또다시 불러낸다면
제가 가만히 앉아 당신의 노래들을 내내 듣겠습니다
# 단정,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