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육아 단상 2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두고 겪은 일이다. 아이는 만 19개월에 접어들었다.
오후 네시 반, 대학원 수업이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다. 보통 퇴교할 때 선생님은 아이가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말로 설명해준다. 오전에는 어떤 활동을 했고, 점심은 어떤 음식을 몇 그릇 먹었는지, 낮잠은 몇 시간 잤는지, 오후 간식으로는 뭘 먹었는지, 그리고 오후 활동은 뭘 했는지, 응가는 몇 번 쌌는지 등.
아이는 오전에 반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캐럴을 배웠고, 산책을 하며 기차가 지나가는 걸 구경했다. 가는 동안 짝꿍 손을 잘 잡고 갔고, 신나서 달리기도 했다. 점심에는 애피타이저로 오이 샐러드, 메인 요리로 생선, 으깬 감자, 익힌 강낭콩을 두 번씩 먹었다. 디저트로 서양배를 먹었고 낮잠은 두 시간 반을 잤으며, 오후에는 자동차를 갖고 놀다가 간식 시간에 초코빵과 우유를 먹었다.
요즘 유치원에서는 크리스마스 advent 캘린더를 하루에 한 칸씩 열어보고 스티커나 캔디를 받는다고 한다. 오늘은 아이가 대표로 열어보는 순서라 한 칸을 열고 스티커를 보고 놀라워하고, 미소 지으며 즐거워했다고. 여기까지는 평소에 들려주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 선생님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은 친구에게 장난감을 안 뺏기려고
손에 꽉 쥐고 거절했어요.
그래서 브라보! 하고 칭찬해줬지요.
아이는 등원할 때 미니카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멍멍이 애착 인형을 안고 가는데, 유치원에 도착하자 같은 반 친구(형아)가 자연스럽게 다가와 아이 손에 있던 자동차를 낚아채 가는 걸 본 적 있다. 순한 편인 아이는 친구가 장난감을 가져가도 울지 않고 내어주곤 했는데 (그리고 아쉬워서 근처에 서성거릴지라도) 선생님이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던 모양이었다. 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그냥 가져가려는 친구한테 장난감을 뺏기지 않으려고 꽉 쥐고 거부하는 모습을 잘했다고 칭찬하고 응원했다니, 뭔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보통 친구와 장난감을 나눠 갖고 노는 아이를 착하다고 칭찬하지 않던가?
속상하지? 친구한테 다시 달라고 할까?
괜찮아. 여기 다른 자동차 있잖아.
친구랑 같이 가지고 놀자.
아이가 장난감을 빼앗긴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면 이렇게 반응하며 아이를 달랬을 것 같다. 하지만 스위스 유치원 선생님은 장난감을 뺏은 아이에게는 말로 (또는 행동으로) 달라고 요청하는 방법을, 우리 아이에게는 이런 상황에서 빼앗기지 않고 좋든 싫든 자기 의사를 표현하도록 가르친다.
집에서는 맘에 안 들면 고개를 젓고 짜증을 내는 아이가 유치원에서는 자기 장난감을 친구에게 주고 수동적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아직 말도 안 트인 아이들에게 에티켓과 자기표현 방법을 중요하게 가르친다는 사실도 재밌었다. 그 후 아이는 "아니"라는 한국말보다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no no" 하는 제스처와 말을 먼저 보여줬다.
내 것을 무조건 내어주는 선함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다. 우리도 유치원 때부터 제대로 배웠다면 어땠을까. 싫으면 싫다고 내 기분과 의사를 상대방에게 표현하라고. 때로는 상대가 억지로 빼앗으려거든 움켜쥐고 저항하라고. 상대방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래도 된다고. 착한 아이가 되려고 너무 노력할 필요도, 권력에 압도돼 애써 미소 짓고 있을 필요도 없다고. 그렇다면 면전에서 거절 못해 yes 하고 집에 와서 이불 킥하는 일도, 무례한 사람들에게 끌려다니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