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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레 Aug 28. 2022

여름 일기



올봄, 아무것도 모른  처음 시작했던 텃밭. 파종한 씨앗들에서 새싹이 나더니 어느덧 농작물들이 가득 자라났다. 호박잎들과 참외  오크라들이 만발하였고 상추는  몫을 다하고 꽃대를 피워냈다. 채종을 하기 위해 그냥 두었더니 아이의 키만큼 높이 자랐다. 흐뭇한 웃음이 가슴에서 피어난다. 작은 텃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나에게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 다른  마법이 아니라, 작은 씨앗에서 피어난  모든 것들이 마법이고 선물이고 경이롭게 느껴진다. 씨앗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정보와 힘과 에너지가 함축되어 있는 것일까. 보면 볼수록 씨앗은  신비하다.



집 입구에는 꽃씨를 심었다. 사포나리아, 채송화, 캐모마일, 수레국화- 집 주변에는 지네가 들어오지 못하게 약을 쳤다.


매일 아침 마당에 나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고양이 밥을 주는 것이다. 시골에서 고양이는 귀한 존재다. 뱀들과 쥐를 방지해주기 때문에 기꺼이 모시고 있다.


이사 온 후로 계절의 변화가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오감으로 작고 미묘한 변화들이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만 하더라도 밤공기가 미묘하게 어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계절의 변화들이 내 몸처럼 와닿는다. 이런 경험이 참 좋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정리하다가 문득 거실을 바라본다. 거실에서 보이는 산 능선과 닿아있는 하늘의 구름들- 문득 이 풍경을 보고 살고 있는 지금이 너무 귀한 시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행복하다고 마음이 말했다.






<자연 멍>


자연 멍을 때리는 시간.


남편이 둘째를 데리고 일을 보러 간사이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무엇을 할까 하다가 테라스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작정하고 자연 멍을 때려보기로 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능선과  위에 가득 펼쳐진 하늘 이것만으로도 너무 충분해서 굳이 어디론가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바람이 먼 곳의 흔적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이곳에 있어도 먼 지구가 느껴진다.


눈을 감으면 계곡에  흐르는 소리, 벌이 웅웅대며 날아다니는 소리, 풀벌레 소리, 새들의 소리가 들린다. 확실한 여름의 소리다.


집에서 이것들을 전부 누릴 수 있다니 지금에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바로 앞에 흐르는 청정계곡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아이는 창에 붙어서 오늘 해가 떴는지를 바라보고 해가 드러나면 어김없이 계곡에 가자는 말을 한다. 계속 졸라대다가 그래 계곡에 가자! 하면 어느새 수영복으로 재빨리 갈아입고 수영모와 구명조끼 물안경까지 입고서 신이  있다. 나는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옷이 축축해지는 느낌도 싫어하지만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대충 척척 꺼내 담고  앞에서 계곡에 발을 담그고 간식을 까먹는 시간을 나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계곡이 가까우니 틈나는 대로 계곡에 갔다. 물의 시원하고 깨끗한 에너지가 느껴지고 발을 담그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물놀이가 끝나면 수건을 두르고 차에 타서 금방 집으로 와서 바로 씻을  있으니 번거로움도 덜하다. 올여름은 계곡을 정말 실컷 즐겼다.



첫째 아이가 방학을 맞이하고 일상이 많이 바빴다.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분주한 와중에 친한 언니가 놀러 왔고, 엄마와 동생도 휴가차 방문했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도 찾아왔다. 멀리서 찾아온 반가운 사람들과 나눈 무성한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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