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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안 Dec 01. 2022

실락원

<Eve's picnic>




복숭아 한 조각을 우물거리다 이 곳에는 없는 열매 하나를 상상합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한다는 그 열매의 형태, 질감, 향기, 맛 따위를. 금단의 그것을 입에 넣은 심정이 되어볼까 하니 복숭아 맛 혀 끝이 아릿합니다. 복숭아 향내는 또 어떻구요. 뱀의 머리가 발등으로 얹어 오는 아찔한 기분에 온 발가락이 움츠러듭니다.


이후로 낙원은 이 곳에 없습니다. 구원과 천국은 저 너머에 있다고 합니다. 한번은 그런 의문을 품은 일이 있습니다. 태어나지 않으면 될 일 아닌가. 태어나지 않고 태어나지 않아서 이 세계를 서서히 끝내버리면 구원받을 자도 구원 할 자도 없을 텐데. 대체 왜 생을 지속하고 또 지속해야한다고, 대체 왜 생은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는 건가.


임신테스터기는 한 줄입니다. 이번 숙제도 실패입니다. 숙제라니 참 건조하고도 부담스러운 별칭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준비하는 부부에게는 그러한 의미입니다. 기회는 한달 중 단 몇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리가 있던 날로부터 15일 언저리. 셈을 하고 날을 정합니다.


감추었던 몸을 다시 서로 걷어냅니다. 부끄러움은 겨를이 없습니다. 이것은 과연 선인가요, 악인가요, 주어진 신의 형벌을 수행할 따름인가요. 에덴의 복락을 마저 꿈꾸지는 않습니다만, 이 벗은 몸이 온전히 기쁨이어야 할 일은 아니었는가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몸이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목적이 있다면 이미 놀이가 아닌 것을요. 역시 낙원은 잃어버린 듯 합니다.


하와는 다달이 다리 사이로 피를 흘리면서도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그 열매의 맛을 그리워 했을까요. 주인을 얻지 못한 자궁의 집이 또 허물어집니다. 임신을 하지 못했다는 확실한 확인사살. 이전에는 매달의 귀찮은 일상일 뿐이더니, 숙제를 얻고보니 이젠 숙제를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까지 얹었습니다.


두 세포가 만나보기는 하였을까. 누가 까다롭게도 거부 했을까. 만났지만 세포분열 상에 문제가 생겼나. 난소에서 자궁으로 움직이는 여행은 해 보았을까. 집에 자리를 못 잡았을까.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흘러 나가버렸을까. 머릿 속은 실패에 대한 온갖 경우의 수들로 가득합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에 한편으로는 다행으로 여기고 있으면서.




복숭아는 단물넘치는 속살을 다 베어 먹히고, 단호한 씨앗만이 남았습니다. 씨앗이 틔우려면 발아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부지런한 농부를 만났다면 좋았을 것을 하필 나를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씨앗이 까끌합니다.


까끌한 너는 어떤 의지를 가졌나. 너에게도 으레 생은 소중한 것인가. 그래서 흙에 뭍히려나. 싹을 틔우려나. 꽃을 피우려나. 꽃가루를 날리고 또 다시 열매를 맺으려 할까. 그리고 또다시 먹히고 씨앗을 남기고. 그리고 또다시. 또다시.


아담과 이브 이래로 이어진 끊임없던 생의 서사. 살아있음에서 살아있음으로 유전하는 순환의 연결고리. 이중나선의 그 끝단에서 나는 잠시 비껴 서 봅니다. 한숨 돌리며 생각해보노라니 돌연히 미시감이 올라옵니다. 나, 왜 아이를 낳겠다고 하고 있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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