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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안 Oct 01. 2022

나쁜시도 좋은 결과

<arrow from cupid>




아기를 낳고 사흘 내내 잠은 거의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서 많이 움직여 몸을 회복해야 한다는 수선스러움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공황발작입니다.


결국 더 이상 수유실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수유실 앞에서 그대로 얼어붙어 버리는 것을 어찌할 바가 없습니다. 혹시 이러한 문제 때문에 아기를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큰 일입니다. 엄마가 찾아주지 않는 아기라니…


참담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수간호사는 수유실 앞에서 핏기없이 떨고 있는 나를 데려다, 생각보다 이러한 엄마들이 있으니 너무 죄책감 느끼지 말고 아기는 걱정말라 다독여주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의사는 남편에게 무엇보다 잠을 재워야 한다고 신신당부 했습니다. 나는 이제 약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아기를 갖기 위해 준비하면서부터 단약을 해야했으니 약 없이 버틴 것이 2년여입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은 할 수 없었던 것은 꽤 큰 부담이었습니다. 모유수유 때문에 약을 미룬다 하더라도 약이 손에 들어온 것만 해도 어쩐지 위안이 됩니다. 병원을 나서고 남편은 나에게 시원한 딸기음료를 하나 들려준 후 가벼운 드라이브를 위해 무등산 산장으로 향했습니다.


한 겨울이지만 무등산 산장으로 오르는 길은 신록입니다. 출산한지 얼마되지 않은 몸에 바람을 쐬는 것은 모험일지도 모르지만 옷과 모자를 단단히 여미고 썬루프를 열어 청명한 공기를 들였습니다. 그 숨을 쉬어보니 나의 삶이 새로운 국면에 들었음이 명징합니다.


아기는 숨을 쉬기 시작했고 그에 맞추어 저 또한 이전과는 달라져야만 한다는 인식을 단단히 합니다. 약 봉지를 보며 아마도 이게 그 시작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보니 딱 10년만입니다. 발병 이후 PTSD라는 병명 하에 제대로 된 치료를 하는 것 말입니다.




시작은 그저 치기어린 위악이었습니다. 나의 인생은 누군가의 완벽한 플랜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성적은 전교권에서 벗어나 본 일이 없었고, 건전한 생활태도로 늘 어른들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대학도 원하시는 곳으로 진학했고 3학년을 마친 후 휴학 1년만에 직장도 잡아두었습니다. 알아서 잘 하니 굳이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아이.


나는 아무래도 전단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에게 자랑하기에는 좋으나 쓸모는 그 뿐. 안으로는 창고 안에 얌전히 박혀있을 일이고 밖으로는 보고 말 것도 없이 버릴 뿐인 쓰레기거리. 그 전단지 노릇이 지겨워졌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것이 안전하게 쌓아 올린 아름다운 아치의 키스톤을 뽑아 내는 일인 것은 몰랐습니다. 말하면 듣는 이가 있을거라 여겼는데. 원한 것은 그 뿐이었는데.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나의 말소리는 허공에 부딪혀 갈 곳을 잃었습니다. 허망하고 또 허망합니다.


간절한 절망이 묻힌 곳. 그곳을 맨 손으로 파헤쳤습니다. 매일을 울부짖었고, 입은 옷은 찢겨져 나갔고,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부수었습니다. 몸에는 스스로 만든 생채기마저 돋아납니다. 목을 조르는 사자의 서.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발악.


기실 이렇게 되고보니 오히려 알 것 같습니다. 이대로는 살 수가 없었던 것을요. 언젠가는 터지고 말 일이었고, 때를 만났을 뿐이라는 것을요. 나는 이 파괴가 제멋대로 난동을 부리도록 차라리 판을 벌리자 했습니다. 될대로 되라지요.


그래요. 그것이 10년 전의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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