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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Apr 30. 2024

나무를 샀다

오늘 오후 내내 나는 통창 안팎으로 서성이며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는다. 나무를 사다가 테라스 심었는데 하루종일 흥분이 되며 기분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내 맘 속의 나는 흰 스커트 자락을 휘날리며 나무들 주위를 돌며 춤을 추고 있다. 벽에 커다란 나비를 그릴까? 진짜 춤을 추어야 하는데, 내 몸이 창밖으로만 향해있다. 화분, 그거 얼마 안 한다. 그런데, 그게 뭐라고 하루 종일 신이 난다.


작년에 베란다 위로 커다란 늙은 호박이 덩굴마다 열리는 상상을 하며 호박이와 고추를 심었다가 질세라 자라나는 잡풀과 엉겨 붙는 진드기들 때문에 힘들어서 뽑아 버리고, 매일 아침 열심히 물만 주면 새로운 꽃을 끊임없이 피어내던 사피니아와 겨울 초입의 이별이 힘들어서, 올해는 나무들을 친구로 데려오기로 했다. 나는 꽃이 피지 않는 식물을 좋아하지 않는데, 원래 있던 세 개의 편백나무 화분 중 하나가 배수가 안되어 죽어버려 베란다 가운데가 휑하니 비어버린 게 못내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셋 중 가장 싱싱한 나무였는데, 화분에 물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그만 죽어버렸다.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물이 많이 고여있으면 마르지 않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에 잠긴 화분에 살던 나무가 버티다 못해 누렇게 잎이 말라버렸을 때에도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다시 잎이 초록색으로 변할 줄 알았는데 한번 집 나간 초록색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지만, 친구 나무가 죽으니 옆에서 초라하게 있던 두 개의 나무가 더 싱싱하게 자라는 듯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풀밭 위를 뒹굴어 다니기도 한 비실거리던 편백나무들이 말이다.


둥그런 편백나무는 꽃이 피지 않기는 하지만, 나름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외국에 잘 정돈된 정원이나 깨끗한 건물 벽 앞에 동그랗고 단정하게 자리를 잡고 있던 게 편백나무였다. 그 나무가 유독 이 상가 건물 앞에 놓여 있던 게 무척이나 고급지고 이국적으로 보였다. 똑같은 나무를 사려고 했는데, 대부분 묘목이 작고 길쭉하거나 다듬지 않아 맘대로 자란 아이의 머리처럼 모양이 제멋대로여서 고급진 느낌이 나지 않았다.


하나만 필요했던 건데, 그 넓은 농원에서는 나무들이 다 작아 보여서 이거 저거 고르다 보니 여덟 그루를 사게 되었다. 생각보다 가격도 저렴했다. 배나무도 감나무도 죄다 가져오고 싶었는데, 내 땅도 없고, 내가 허세를 부릴 수 있는 곳은 고작 내 테라스 가장자리 뿐이다.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


나무를 심어 놓고 신이 나서, 길 건너 육교 위에서도 내 작업실을 바라보고 동네 어귀에서도 바라보고, 도로 건너편에서도 바라보고, 뒷짐 지고 바라보고 한도 끝도 없이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예쁜 돌도 골라서 화분 위로 던져 넣고 (돌들도 모두 내가 키우던 돌들이다. 그간 번식은 하지 않았다. 물론 덩치도 하나도 자라지 않았다. 그나마 살은 빠지지 않은 채, 다들 그 모습 그대로이다) 머리카락처럼 수북한 이파리들을 손으로 빗어 넘긴 듯 어루만지며 분주하게 나무들에게 말을 거느라 정신이 없다. 나무들의 이름이 없는데, 문득 이전부터 있던 나무들에게 조금 미안하다. 내가 들인 나무라 그런지, 전에 없던 애착이 간다. 나무들도 그럴진대, 사람들도 그럴 것 같긴 하다. 아이들의 주인은 한 부모여야 하는 이유이다. 주어진 것, 원래 있던 것보다, 나의 동기에 의해 처음부터 그 과정을 함께 한 것에 대한 마음의 크기와 질감은 다르다. 그렇다고 기존에 있던 나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르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그간 기존의 나무에게 이렇게 즐거운 감정을 주지 않아 미안하고, 덩달아 그 나무들도 내 마음에 깊게 들어오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무들 때문에 신이 난 하루였다.  


나의 작은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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