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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경 Apr 20. 2024

초현실주의 글

공부의 끝(7)

수업 오고가며, 지하철안에서 앙드레 브르통의 ‘나자’를 읽었다. 이 책에 대한 유일한 정보는 ‘초현실주의’ 글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어떠한 작품이든 사전지식 없이 ‘사건’처럼, 맞닥뜨리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소설인지, 사실에 기반을 둔 에세이인지, 장르의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미리 정해 놓은 순서 없이, 떠오르는 것을 떠오르게 내버려두고 시간의 우연성에 따라 이야기하는 글 전개로 인해,  조금만 딴 생각하고 읽으면 눈은 눈대로 글귀를 따라 가지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붙잡지 못하고 생각은 딴 데가 있기 일쑤였다.

흡사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을때 느꼈던 신변 잡기적인 인물 묘사는  평소 만연체를 싫어하던 나에에 극한 인내를 요하게 했다.

중간 중간 상황을 보충 설명하기 위해, 삽입된 사진과 그림들도 오히려 나의 상상력을 방해하는 거추장 스러운 도구였다.

’왜 이 책이 초현실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뿐 아니라, 초현실주의 문학의 큰 성과로 평가될 수 있었을까?‘

나는 이 글의 저자, 부르통이 신경 정신과 의사였던 점. 그리고 그가  ‘초현실주의 그룹’을 결성한 주축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때로 글의 가치는 글의 내용보다 그 글을 쓴 사람의 배경에 의해 상향조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의 첫 시작은 나의 심장을 두드리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누구인가? 예외적으로 이번에만 격언을 끌어들여 말하자면, 사실상 이런 질문은 모두 왜 내가 어떤 영혼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아는 것으로 귀착되는  문제가 아닐까?”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때 나의 차별성이 무엇이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나는 부단히 노력하겠다. 내가 이 차별성을 인식하는 정도가 얼마나 분명하냐에 따라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엇을 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세계의 운명에 대해 나만이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가 무엇인가의 문제가 밝혀질 수 있을까?”

바로 내가 현재 고민하고 궁금해 하는 문제가 아닌가!

그가 방황하는 여자, 나자를 우연히 만나고 그녀가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그가 그녀와 헤어지는 줄거리 스토리 라인보다는 그 속에서 그가 고뇌하고 의문하고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다.

글을 다 읽고, 그 글의 여운을 머금은 채, 천천히 작품해설집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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