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예 Jan 24. 2016

어느 마임아티스트로부터 온 편지

안녕하세요,


당신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다음달에는 시간이 없을뿐더러 화려한 도시 이미지의 파리에 대해 저는 긍정적이지 않거든요. 파리는 관광객에게 비싸고 질적으로 매우 낮은 대접을 하고 있어요. 파리는 점점 세계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고 있고 그래도 마땅하죠. 저와 같은 거리의 예술가들은 오늘의 파리에서 더 이상 자리를 잡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거리의 예술가들에 대한 점점 악화되는 절도와 폭행을 경찰이 제대로 막지 못해 우리의 예술 활동이 위협받고 있거든요. 당신과 같은 외국인들이 파리에 대해 꿈꾸게 하기 위한 인터뷰에 도움을 주기에 저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씁쓸하답니다. 오늘날의 파리는 부유한 관광객들을 위해 존재할 뿐이에요.     

-폴 길라베르-    





파리에서 나는 길거리 예술가를 많이 만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만난 것이 아니라 먼발치에서 넘볼 뿐이다. 무심하게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도 그들은 공연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덧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사람 벽에 둘러싸이면 오롯이 그들만의 작은 무대가 만들어진다. 이 무대는 여행자의 지친 발걸음에 흥을 돋워 주기도하고 마른 눈에 물기를 감돌게 하기도 한다. 걷는 거리마다 훌륭한 무대가 되는 파리...     


폴의 메일은 뜻밖의 답변이었다. 그의 공연을 특별히 좋아하는 나는 쉽게 즐거운 마음으로 그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말이다.


현실이라고 하는 삶의 모습은 우리에게 얼마나 힘든 것인가. 삶의 질곡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이렇게 화려하고 예쁜 파리마저도 ... 그래서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고 자신을 다독였나보다. 삶의 단면을 맛보게 하고 삶에 대한 진지함을 새삼 깨닫게 해준 폴의 짧은 거절의 편지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낀다.


왠지 모르게 마임은 인생의 짙은 페이소스를 풍긴다. 폴의 글에서 마임의 한 슬픈 동작을 보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랑루즈의 요정과 이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