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엔 인터뷰
파리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하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파리의 명소를 비롯하여 구석구석까지,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은 물론이요, 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의 출입을 자의적으로 금한 곳이 있다. 물랑루즈-그 곳에서는 전라의 여성들이 춤을 춘다는 소문이 있어 나의 보수적 도덕성과 함께 빈약한 주머니 사정이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장애물들과는 별도로 오히려 더 그 금지구역(?)을 보고 싶은 호기심은 더욱 고조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니콜키드만이 주연한 영화 ‘물랑루즈’를 보게 되었다. 영화에서 니콜 키드만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의 표정, 몸짓, 목소리까지 전부 다! 물랑루즈의 화려함은 니콜키드만의 아름다움을 만나 더욱 찬란했다. 영화 ‘물랑루즈’의 강렬한 환상적 이미지들이 나로 하여금 현실의 물랑루즈로 달려가게 했다.
물랑루즈(Moulin Rouge)는 사업가였던 조세프 올레르 Joseph Oller가 1889년 10월 6일 개장했다. 그는 부자들의 본성을 자극하며 천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함으로써 그 품위를 떨어뜨리는 데에 사업의 초점을 맞추었다. 눈에 띄게 잘 보이도록 빨간색으로 풍차모양의 건물을 칠하고 밤에는 불을 켰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전깃불로 장식한 건물이었다. 그것은 ‘여자의 궁전’이었다. 당시 사회에서 여자의 몸은 베일에 싸여있어 남성들의 상상력과 판타지를 자극했다. 물랑루즈는 오늘날 ‘프렌치 캉캉’으로 불리는 춤을 공연하였다. 다리를 허공으로 번쩍 올리고 얼굴은 속치마에 파묻는 춤인 프렌치 캉캉으로 바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매일 밤 10시 화려한 쇼가 펼쳐졌지만 한편으로는 술, 마약, 매춘이 암암리에 성행했던 환락가였다. 그러나 1915년 건물 모두가 불탄 후, 새롭게 건물을 지으면서 물랑루즈는 사창가로서의 오명을 지워버리고 고급 관객을 겨냥한 화려한 카바레쇼의 무대로 변신하였다.
나는 물랑루즈 홍보 담당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홍보 담당자는 쾌히 나의 요청을 수락했고 인터뷰 대상자로 댄서인 소피Sophie를 소개하고 또 쇼관람을 위하여 두 개의 좌석을 마련해주었다. 이런 대박이라니!
몽마르뜨 언덕을 잠시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물랑루즈. 이 동네는 치안이 좋지 않다. 붉은 풍차는 세월의 무게가 힘겨운지 퇴색되고 낡았으며 주변 건물들은 칙칙하고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물랑루즈가 있는 클리시 대로(Boulevard de Clichy)는 정말 기상천외한(?) 성인용품샵이 즐비하고 섹시한 란제리를 파는 가게도 많다.
인터뷰를 위해 물랑루즈에 도착하니 쇼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서 멀리까지 빽빽하게 줄 세워져 있었다. 그들을 헤치며 덩치 큰 경호원에게 내 소개를 했더니 아무 말 없이 다른 직원에게 나를 데려다줬다. 그 직원은 내 이름을 확인한 후 물랑루즈 내부에 있는 바Bar로 안내해주었다. 온통 빨간색으로 치장된 실내에는 관련홍보 포스터들이 빼곡히 걸려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9시 공연의 캉캉을 반주하는 요란한 밴드 소리와 관객들의 대단한 소음이 귓전을 때렸다. 그곳에 웨이터 아저씨는 샴페인을 따라주며 나의 방문을 진작 알고 있었다며, 이 곳에서 자기가 모르는 것이 없다는 둥 기분 좋은 환영의 말들을 해주었다. 이윽고 지배인이 나타나 무용수가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어디가 벽이고 문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것을 밀어내니 떠들썩한 소리가 문 뒤로 사라졌다.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지나는데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복도 제일 끝이었다. 우월한 비율을 뽐내는 아름다운 무용수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다. 목으로부터 가슴까지 비즈로 장식된 상의와 가는 깃털에 바닥까지 내려간 빨강 플레어스커트는 열정과 유혹적인 이미지를 한껏 드러냈다. 9시 공연과 11시 공연 사이에 시간을 낸 것이라 정신없을 법도 한데 그녀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나의 질문에 착실하게 답변을 해나갔다.
본인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소피 에스코피에 Sophie Escoffier입니다. 34세죠. 물랑루즈에 들어온 지 곧 10년이 되네요.
물랑루즈에서 무용수로 일하게 된 계기는?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프랑스 사람이라면 물랑루즈가 얼마나 유명한지 알고 있죠. 4살 때부터 춤을 시작해서 14살에 칸에있는 무용전문학교에 들어갔어요. 오전에는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춤을 배우는 시간표였죠. 발레를 기본으로 각종 무용을 섭렵했어요.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물랑루즈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예술적으로 그리고 신체적 특징이 물랑루즈 댄서의 조건에 부합하는지 스스로 확신이 가지 않아서 유럽 여러 곳에서 경험을 쌓았죠. 그리고 물랑루즈에 지원했을 때 무용선생님께서 바로 계약을 제안하셨죠. 큰 기쁨인 동시에 스트레스이기도 했어요.
물랑루즈의 오디션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175cm이상의 조화로운 신체를 가져야해요. 무조건 마른 것을 선호하지 않고 건장한 체격이면서 여성스러운 몸매의 선을 갖춰야 하죠. 평가 항목은 기술, 예술성 그리고 유연성이에요.
선발과정이나 트레이닝과정이 무척 까다로워요. 5주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서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환상적 몸매를 갖고 계신데 오디션 때 심사위원들 앞에서 나체로 서시나요?
일반적으로 몸에 꼭 붙는 탑과 팬티를 입고 오디션을 보는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슴을 드러낼 수도 있어요.
물랑루즈 댄서의 하루 일과는?
삶의 리듬이 일정한 작업의 연속이에요. 7일 중 6일을 일하고 매일 저녁 두 차례 공연에 서요. 집에서 19시에 나와 19시30에 물랑루즈 도착.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 점검을 한 후 45분 준비운동을 하고 쇼를 다 마친 후 새벽 2시에 귀가하죠. 낮에는 리허설을 해요. 또 몸매와 기술을 꾸준히 유지해야 되기 때문에 개인의 일정과 시간표에 따라 필라테스, 요가, 춤 등을 연마해요.
물랑루즈를 정의하는 3가지 단어는?
파리, 깃털 그리고 요정극이요.
진짜 노출을 하나요?
수족관에서 뱀과 수영하는 올가Olga를 제외하고 댄서 모두가 스타킹 소재의 바디슈트를 입고 있어요.
노출이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랑루즈를 보셨나요?”라는 질문을 먼저 하고 싶네요. 선입관을 가진 사람들도 공연을 보고 놀라는 것이 온 가족이 즐기기 좋은 공연이라는 점이에요. 아이들도 올 수 있어요. 물론 우리는 벌거벗었고 스트링을 입고 상의 탈의를 했지만 빛, 의상, 깃털, 장식이 있기 때문에 노출이 보이지 않고 선정적인 것이 없는 멋진 프랑스 전통 공연이에요.
공연 끝나고 당신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뭇 남자들의 추파를 받지는 않나요?
전혀요. 관중과의 만남은 없어요. 초콜렛이나 꽃을 받기도 하지만 관중과 따로 연락하지 않아요.
특별히 당신을 보기 위해 매일 공연을 보러오는 남자가 있나요?
아니요. 60명의 댄서가 진한 메이크업을 한 상태이므로 우리를 알아보기란 힘들죠. 대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연인들이 있어요. 물랑루즈는 프랑스인들에게 에펠탑과도 같은 상징성을 갖고 있어요. 항상 곁에 있기에 굳이 찾아가지 않는. 하지만 드디어 발견했을 때의 그 놀라움이란!
만약에 댄서가 아니었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요?
그래도 무대 위에 있을 것 같아요. 연극이나 뮤지컬 배우나 어쩌면 스포츠 선수일수도 있겠죠. 몸을 항상 움직여왔고 작업의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무대에 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시나요?
우리를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오는 관객들을 볼 때 가슴이 벅차오르고 아드레날린이 샘솟으며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러한 감정은 변하지 않고 온전히 유지되죠.
물랑루즈 춤의 특징은?
프렌치 캉캉이죠. 신화적인 춤이고 오직 파리의 물랑루즈에서만 배울 수 있는 춤이에요.
당신에게 춤이란?
제 인생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해왔고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는 행운을 얻었어요. 저는 아기 엄마에요. 아이를 낳고 4개월 만에 물랑루즈로 돌아올 정도로 춤은 제 몸이 늘 기억하고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에요.
물랑루즈 이후의 삶을 어떻게 그리고 있나요?
춤과 무대와 관계되지 않을까요? 이곳에서 경험한 많은 것들을 이어가지 못한다면 아쉬울 것 같아요. 저는 물랑루즈라는 곳에 굉장한 애착을 갖고 있어요. 무대가 아니더라도 물랑루즈에 소속되어 일하고 싶어요.
영화 물랑루즈에서 니콜 키드만이 주연을 맡은 주인공 샤틴은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어 해요.
물랑루즈에는 한 명의 스타만 있는 게 아니에요. 특별히 한 명의 인물이 아닌 쇼를 즐기는 것이죠. 스타는 없고 열정과 기량을 펼치는 예술가만 있을 뿐이에요.
같은 여자였지만 소피의 미모에 반해 인터뷰내내 질문에 제대로 집중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나와는 달리 소피는 상당히 프로답게 인터뷰에 임했다. 인터뷰내용에도 나와 있듯이 그녀의 머리는 온통 춤으로 가득했고 자기의 삶과 직업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제 공연을 볼 시간. 공연장에 들어서니 100년 전 과거로 회귀한 것 같다. 100년 전은 프랑스가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풍요를 누리던 시절, 이른바 벨에포크(belle époque)라 불리었는데, 이를 본 떠 물랑루즈의 공연장 이름 또한 벨에포크, 우리말로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불린다.
고풍스러운 공연장은 내부 좌석들이 층층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형 레스토랑 및 연회장 같았다. 객석은 객석대로 먹고 마시면서 즐기고, 공연은 공연대로 감상하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리고 드디어 레드 벨벳 소재 커튼이 걷히고... 인도, 이집트, 미국 등 다양한 나라를 배경으로 멋진 노래와 춤, 묘기와 복화술, 개그까지 총망라한 클럽 공연이 눈앞에 펼쳐지고 나는 그 색채감에 짓눌려 압도당해 버렸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캉캉치마와 빨리 돌리기를 하는 듯 스쳐지나가는 댄서들 속에서 소피의 얼굴도 보였다. 공연 내내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구름을 발판 삼아 손을 뻗어 별을 잡고 싶었다. 공연에 심취해있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토플리스 공연은 나에게 낯설었다. 처음엔 여성들의 적나라한 노출이 생소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많은 화려한 의상들보다 무용수들의 신체적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무용수들은 전라에 가까운 모습으로 칼군무를 선보이고, 여성의 신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동작들을 선보인다. 무용수들을 덮는 건 오색찬란한 빛과 깃털 뿐. 인체는 세상 그 어떤 옷보다 아름답다... 완벽한 비율의 여체가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졌던 순간, 문화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노출 자체만을 논하는 우리 문화가 떠올랐다. 내 스스로도 얼마나 갇혀 있고 경직되어 있었던가.
물랑루즈와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앙리 마리 레이몽 드 로트렉. 귀족물이 뚝뚝 떨어지는 이름에서 보듯 그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키가 자라지 않는 장애로 성장이 152센티에서 멈춰버렸다. 평범한 생활이 어려웠던 로트렉은 가문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그 때부터 그림에 몰두했다. 그는 매일 밤 물랑루즈 한편에 앉아 무희, 웨이터, 배우, 서커스 단원들을 관찰하고, 술 마시고 그림을 그리면서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무대 위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무대 뒤에 숨겨진 일상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사랑을 얻기 어려웠던 로트렉에게 매춘부와 무희들은 그의 친구이자 여자이자 모델이었다. 삶의 주체로서의 그녀들을 표현하고 단순한 이미지나 소비적인 가치를 넘어 삶과 내면의 세계, 애수를 그렸다.
로트렉은 따뜻한 시선으로 물랑루즈의 여자들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면서 ‘그들도 한 여자고 한 인간일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는 직업이나 신분에 대한 선입견 없이 그들의 삶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과감하면서도 정확하게 화폭에 담았다.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진실되게 그렸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에로틱하거나 퇴폐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다리만 조금 길었더라면 그림 따위는 그리지 않았을 거야.”라고 로트렉은 말했다. 결과적으로 장애는 그에게 좌절을 맛보게 했지만 예술혼의 축복을 안겨다 주었다. 이제 그는 물랑루즈를 떠났지만 그의 그림들은 오늘도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물랑루즈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Photo by 황채영
instagram: @almostharml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