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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예 Mar 25. 2016

파리의 인형 의사

인형도 아프면 병원을 찾아요

어린 시절 인형을 너무 좋아했다. 미미의 집을 갖고 싶어 엄마에게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징징 거려보고, 길가에 파는 커다란 곰인형이 탐나 아빠에게 대롱대롱 매달려도 보고. 그것들을 받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했다. 동물 모양에서부터 인간을 꼭 빼닮은, 말 그대로의 인형에게 누구나 한번쯤 마음을 온통 쏟아 붓던 때가 있다. 이 신기한 장난감과 만들어내던 이야기는 얼마나 많고 재미있었는지! 인형과 함께 했던 그 시간만큼은 온 우주가 내 마음대로 되던 놀라운 기적이 가능했다.     



인형, 그것은 이제 어른이 된 나에겐 재미있게 놀 대상도 아니고, 사실 이제 내가 아끼는 귀중품에 끼지도 않는다. 언제 갖고 놀았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꼬마 아가씨(?)들이 갖고 논다면 피식 하고 웃을지도 모르는, 그렇게 난 동화보단 현실에 더욱 익숙해져 버린 덩치 큰 인간이 되어버렸다.    



파리의 낯선 길을 걷다가 우연히 이상한 ‘인형의 집’을 발견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인형을 수리(Réparation poupée)하는 ‘인형 병원’이었다. 그것은 내게 묘하게 다가왔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병원을 들어봤는가? 인형 병원은 기존 병원과 마찬가지로 부상당한 환자들을 치료한다. 환자들은 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오기도 하고, 속이 망가진 상태로 도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환자들은 아무 말이 없다. 이 병원의 원장이자 의사인 앙리 로네 Henri Launay씨는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채 진찰도 하고 진지하게 수술을 감행한다.     





파르멍티에가(街) Avenue Parmentier에 있는 그의 노란색 병원에는 각양각색의 인형들이 무질서하게 배치되어있다. 멀쩡한 인형은 물론 고칠만한 인형도 없지만, 나는 마치 환자를 문병하는 심정으로 화분을 들고 그의 병원을 노크했다. 사람들의 동심을 수리하는 인형 의사와 그들의 추억이 깃든 인형 속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기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89살이에요. 제가 인형 병원을 만든 장본인인이죠. 벌써 52년이나 됐네요. 저는 인형을 고쳐요. 그 동안 세보니 3만개의 인형에게 새 생명을 줬죠. 남자들은 곰인형(ours en peluche)을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비닐봉지 안에 담아 오는 반면 어떤 여자는 인형을 ‘아이’라고 칭하며 담요에 감싸 안고 와서 헤어질 땐 귀에 속삭이고 키스를 하며 작별인사를 고하기도 하죠.    

 

어떻게 이 인형 병원을 차리게 되셨나요?

원래는 가죽 제품 수리점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누군가 와서 인형을 고쳐줄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하지만 저희 집은 아들만 넷이어서 집에 인형이 없었답니다. 인형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 손님을 위해 인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고 스스로 그 원리를 터득했죠. 이 직업을 하기 위한 학교는 따로 없거든요. 그 일이 계기가 돼서 지금의 일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인형 병원이 탄생했군요. 필요한 물품은 어떻게 구하시나요?

이 새로운 일을 위해 적합한 도구를 개발하기도 하고, 제조업자한테서 분리된 부품들을 샀죠. 그 때부터 반짝거리는 눈알과 금발의 인모, 인형의 몸 부위를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어떤 수술이 이루어지나요?

눈 수술을 예로 들죠. 촛불로 밀랍을 녹이고 액체화된 밀랍을 신중하게 빈 눈에 부어요. 그리고 두 개의 작은 눈동자를 밀랍에 넣어 고정시키죠. 이렇게 시력을 회복하게 합니다. 테디베어(teddy bear)의 코를 이식하기도 하고 탈구된 팔다리는 고무줄과 제작한 도구를 사용해 맞춰 고정해줘요. 보통 수술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형태가 변하지 않도록 견고하게 해야 하죠. 머리카락은 자연모를 심어줘서 자연스럽게 한답니다. 가능한 한 자연적인 재료를 사용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죠. 옷과 신발 등 액세서리 역시 손수 제작해요.  

   

꼬마 아가씨들에게는 로네씨가 산타의사님이 되시겠네요.

사실 아이들은 제 가게에 오지 않아요. 대부분의 고객은 어른들이죠. 그것도 50, 60 아니면 80대. 시계나 반지를 대대손손 물려주듯이 어린 시절에 갖고 논 인형을 다음세대에 물려주기를 원해요. 가족의 일부이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오지 않는 이유는 저는 현대 인형을 고치지 못해서예요. 기계장치가 복잡하고 어떻게 고치는지도 몰라요. 현대의술에 뒤떨어진 의사죠.(웃음)   

 

어떤 인형을 제일 좋아하시나요?

19세기의 인형이요. 가마에 두 번 구은 자기 인형인데 눈을 감았다 떴다 하고 장미꽃 봉오리 같은 입매를 갖고 있어요. 이건 더 이상 제작을 하지도 않죠. 그래서 수집가나 박물관에서도 찾는 인형이에요. 이런 것들은 15,000유로까지 가격이 올라가요. 거의 차 한 대 값이죠.    

 

사람들은 왜 인형 수리를 맡길까요?

세상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하잖아요. 인형 하나하나에도 각자만의 이야기가 들어있어요. 사람들은 인형을 선물 받을 때, 인형이라는 물건 만이 아니라, 하나의 소중한 감정과 기억을 받는 거나 다름없어요. 인형이 다치면 그러한 감정과 기억도 다치게 되고,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거예요. 인형을 통해 그 인형을 갖고 있던 아이의 성품과 상황을 알 수 있어요. 인형은 그냥 놀잇감이 아니라 그 아이의 모든 것을 대변하기도 하죠.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저를 따라오세요. 가게 쇼윈도우에 편지들이 붙어있어요. 여기 이 편지를 읽어드리죠. “제 인형 아를레트는 1936년 크리스마스에 태어났어요. 제 남동생 프란시스랑 같은 날이에요. 1940년 6월 독일군 침공때 아를레트도 우리와 함께 프랑스 북동쪽 두아이 Douai에서 북서쪽 솜므 Somme까지 피난을 떠났어요. 폭격과 총탄 사이를 뚫으며 걸어가던 중 전차를 끌고 오고 있는 독일군과 딱 마주쳤어요. 그 순간 어머니가 놀라 재빨리 저의 손을 잡는 바람에 아를레트를 놓치고 아를레트는 머리와 팔을 잃었죠. 전차는 멈춰 섰고 독일군 한 명이 전차에서 내렸어요. 그 독일군은 떨어진 인형 조각을 주어 저에게 건네줬어요. 남동생은 울고 있었고 어머니는 겁에 질려 있었죠. 로네씨는 방금 그 아르레트를 완벽하게 소생시키고 새롭게 만들어줬어요. 뜻밖의 큰 자비로운 손길이었죠. -니콜 람베르, 2011년 3월 1일”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감동적이어서 직접 써달라고 제가 특별히 부탁한 거랍니다.     





인형 의사의 임무는 무엇일가요? 

망가진 인형을 고치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세월에 잊히고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기억을 지키는 일이죠.    


인터뷰를 통해 인형들을 친자식처럼 대하는 로네씨의 마음이 느껴진다. 흐트러진 머리를 다듬어주고,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겨주고, 그 손길마다 따스함이 묻어난다.     



익살스러운 표정, 통통한 몸통과 팔다리가 귀여운 인형들을 보고 있으니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인형 때문에 힘들거나 즐거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을 잃어가지만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은 마음속 어딘가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가보다, 그런 의미에서 인형의 존재는 어른들의 숨겨진 꿈이었고 사랑이었다.     



나는 변덕스러운 주인이었다. 새로운 인형이 생기는 날이면 그동안 함께 했던 인형을 팽개치고 새 인형이랑만 놀았다. 그러다가 가끔 “내가 그동안 뜸했지. 너랑도 놀아줄게.”라고 말했었다. 그 녀석들은 내가 미웠을 것이다. 아니 그래도 나를 사랑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자신을 봐주길 바라면서. 인형 병원이 있었다면 로네 선생님으로부터, 그리고 이곳의 손님들로부터 인형을 위하고, 배려하고 손때 타도록 오래 간직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을 텐데.    



어릴 적 늘 함께 했던 손때 묻은 인형들은 지금 어디로 버려졌을까. 내가 필요할 때는 귀하게만 여기다가 컸다는 이유로 어른이 된다는 이유로 무심결에 던져 버려졌을 인형들.. 내 어릴 적 늘 함께 했던 인형들과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지? 헤어진 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내 어린 시절이 묻어있는 빛바랜 인형이 오늘따라 많이 보고 싶다.



*Répare Service

114 Avenue Parmentier, 75001 Paris

Tel +33 01 43 57 09 02





Photo by 황채영

instagram: @almostharm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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