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상'어떤 기다림'(바른 북스)
"어떤 기다림"은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자라며 얻은 기억들, 부모와 가족과의 관계에서 배운 삶의 지혜, 그리고 나이 듦 속에서 체화된 후회와 용서의 시간을 담담한 산문으로 엮은 책이다.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삶, 농촌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품앗이를 하며 내일과 오늘을 가리지 않고 살았던 이해타산 없는 협력의 관계, 치유하기 어려운 개인의 일상이 모두의 아픔으로 느껴졌던 큰 사건들이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요즘 세대와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지만, 그 이질감 속에서 모든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여운을 남긴다. 자연의 이미지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하며, 요즘 세대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알게 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저자는 농업고등학교와 임학과를 거쳐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이력 덕분에, 풍경을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 머물지 않고 삶의 질감으로 옮겨 적는 데 능숙하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기다림’은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 앞에서 인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탐색하게 한다. 손에 잡을 수도, 데려올 수도 없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 서로 다른 이들의 엇갈린 기다림 등 다양한 형태의 기다림을 보여주면서도, 이를 단지 고통이나 인내로만 보지 않는다.
기다림의 시간은 오히려 자신의 상처와 잊었던 감정, 고향과 가족에 대한 애착을 마주하게 하는 내면의 여정으로 그려진다. 문체는 어렵지 않고 담백하며, 중장년층 독자도 편히 읽을 수 있도록 큰 글씨와 정겨운 그림을 곁들였다. 계절, 농촌, 가족, 일상 같은 소재를 짧은 산문들로 나누어 담아 한 편씩 천천히 음미하기 좋다. 화려한 표현보다 진솔함과 정직한 고백에 중심이 있어, 독자는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비춰보게 된다.
특히 ‘은행나무’ 편은 인상 깊다. 나의 어린 시절 추억 속 은행잎비 내리는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공간에서 겪은 아픔이 노란 눈물로 남아 있다. 반면 작가는 인정을 바라지 않고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은행나무의 평정심을 통해, 인간관계 또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예의를 지키는 태도 속에서 존경과 지속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은행나무처럼 담담하게 세월과 변화를 견디는 삶의 자세를 닮고 싶다는 고백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어떤 기다림"은 조급한 일상 속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내 편으로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책이다. 쉽게 행복을 약속하거나 상처를 봉합하기보다, 오랜 세월 눌러두었던 감정을 조용히 깨워 스스로를 어루만지게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치유의 에세이’라 할 수 있다. 가족, 나이 듦, 고향, 그리고 시간과의 화해라는 주제를 통해 독자는 자신만의 “어떤 기다림”을 다시 바라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