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글쟁이 Jan 22. 2024

핏줄이 당겼다, 뜨겁게.

핏줄(이) 당기다_(사람이) 혈육의 정을 느끼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키듯,

어떤 일들은 생각지 못하게 엄청난 일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더 그러할 것이다.  

갑자기 사라진 혈액암 투병 중인 아들, 등교 후 다시 귀가하지 못한 딸,

집 앞 골목에서 깜쪽같이 사라져 버린 아이, 어쩔 수 없는 가정사로 헤어져야 했던 자매들.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 않은 사연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른 사연이지만, 그들의 남은 평생은 가족을 잃은 그날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는 딸을 찾고 있었다.

전국 팔도로 딸을 찾아다니느라 주름은 깊어지고

이가 다 빠졌을 고단하고 애달픈 그의 삶이 엿보였다.

주름과 틀니 때문에 자신의 나이보다

이십 년은 더 들어 보였다.

그는 딸을 찾기 위해 낡은 트럭을 몰고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다.

그 낡은 트럭의 적재함과 조수석엔 딸을 찾는 전단지가 차지하고 있었다.

열 평이 채 안 되는 공간 곳곳엔 딸의 물건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딸이 찾아올 까봐 이사도 못 가고 그 골목에 지키고 있다는 아버지.

그곳에 없는 건 그가 잃어버린 일곱 살 딸 뿐이었다.

"따님 어렸을 때 헤어진 거잖아요... 지금이면 성인인데 못 알아보실 수도 있겠..."


사전 인터뷰를 마치고 집을 나서며 건넨 말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죠. 몰라 볼 수가 없어. 핏줄이 땡기니까. 나는 알아요!"


핏줄이 당긴다... 라니.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은 왼손잡이 동이를 알아봤고,

'발가락이 닮았다'의 M은 아이의 가운데 발가락이 자기처럼 긴 것을 알아봤다.

유사과학 같지만 당시엔 그 말에 슬쩍 기대고 싶었다.

엄마를 못 알아보면 안 되니까.

가끔 아버지는 술에 곯아 윗입술이 엄마를 닮아 뒤집어 까(?) 졌다, 고 말하곤 했다.

정 안되면 내 입술을 닮은 사람을 찾자!라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한 예능 프로에 인물 사진을 보고 몇 초만에 이름 말하기 게임이 있는데,

조금이라도 늦거나 얼버무리면 피디가 가차 없이, 야속하게 땡! 을 외치고 게임 끝!

즐겁자고 한 게임인데 게임 후 대국민사과에 속고대죄를 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

그 정도의 상황까지는 아니겠지만,

내려야 할 역에 가까워질수록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괜찮아, 엄마 전화번호가 있으니까 서로 못 알아본다 해도

전화하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달랬다.


만나기로 한 역 입구에는 작은 우체국이 있었다.

평일 오후 1시인데도 우체국이 있고 역 근처여서인지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오른쪽일까? 왼쪽일까? 어느 쪽에서 걸어오실 줄 몰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눈동자를 굴려가며 거리의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확인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나를 지나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고 우체국 안으로 들어갔다.


휴대폰 액정을 터치해 시간을 확인하기로 했다.

[01:11]

고개를 든 그 순간.

건물 모퉁이를 꺾어 종종걸음으로 걷는 중년의 여성에게 내 시선이 꽂혔다.

엄마다!


빽빽하게 그려진 많은 사람들 틈에서 윌리를 찾은 것처럼

나와 눈이 마주친 엄마의 눈썹이 올라가고 눈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핏줄이 당긴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끈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엄마와 나는 그 끈을 서서히 좁혀 가며 서로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나는 엄마를 만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를 찾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