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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글쟁이 Feb 03. 2024

32년 만에, 엄마가 내게 제일 먼저 준 것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나는, 엄마는 서로를 한 번에 알아봤다.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거리가 좁혀지자 엄마는 먼저 두 손을 뻗어 손을 잡았다.

엄마 손.

살집이 적어 손가락 마디뼈가 그대로 느껴졌고,

그동안의 고생과 애달픔이 굵게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따뜻하고 포근했다.


혼잡한 거리에서 아이를 놓쳤다가 다시 찾은 사람처럼 엄마는 내 손을 꼬~옥 잡고당신 집으로 향했다.

마치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엄마는 준공된 지 십여 년이 지난 아파트에 살고 계셨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아파트에서 엄마가 살고 있어 기뻤다.

주거환경이 좋지 않고 형편이 어려웠다면 많이 절망했을 것이다.

그건 어른들의 선택과 결정이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릴 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불행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엄만 엄마이기 전에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고

'엄마'의 삶만큼이나 '자신'의 삶도 소중하니까.


리모델링 없이 지나온 세월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내부를 보니 평생을 이렇게 검소하고 알뜰하게 사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집 안 곳곳 엄마의 손길과 눈길을 받았을 살림살이 역시

엄마와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을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널 만나면 이거 꼭 먹이고 싶었다. 이거 먼저 먹어라."


버건디 바탕에 커다란 꽃무늬가 그려진 냉장고에서 요쿠르트를 꺼내

빨대를 꽂아 내게 건넸다.

(요구르트??)

32년 만에 만난 딸에게 제일 먼저 먹이고 싶었던 게 요구르트였다고 했다.


"니들(오빠랑 나) 어렸을 때, 사글세 단칸방에서 살았어.

그 집주인 아들내미가 니 오빠랑 같은 나이였을 거야.

그 집이 요구르트를 하루에 두 개씩 대서 먹였어.

엄마도 니들 먹이고 싶었는데 돈이 있어야 먹이지, 돈이.

월세 오천 원 내기도 힘들었을 땐데...

시장에서 종일 당근 닦으면 하루 일당 칠 백 원 받았어.

언젠가 그 집 아들내미가 요구르트 먹고 마당에 툭! 던지더라.

근데 니가 그걸 냅다 주워서 쪽쪽 빨았어.

그걸 본 주인집 여편네가 요구르트 병을 휙~ 낚아채가는 거야! 망할 여편네!!

그날 니 아비가 세상에서 제일 미웠다.

애들한테 요구르트 하나 못 대서 먹이는 세상 쓸모없는 인간!

그럼, 때리지나 말아야지. 성이 다 나더라!"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엄마의 눈에 차오른 눈물이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엄마가 울자 내 마음에도 비가 내렸다.

아버지 말대로 내 입술은 엄마를 닮았다.

윗입술이 뒤집어져 아랫입술보다 두꺼워

립스틱을 바르면 바를수록 어색해져 나에게 콤플렉스로 남은 입술.

나는 그 입술을 오므려 빨대를 쪽쪽 빨아 요구르트를 마셨다.


내 모습을 지긋히 보고 있던 엄마가 희미하게 웃었다.

엄마가 웃자 내 마음의 비가 멈추고 해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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