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 아문센에게 배우는 경영 전략
프랑스 사상가 사르트르는 말했다. 삶은 B와 D 사이의 C다. Birth(출생)와 Death(죽음) 사이에서 Choice(선택)하는 것이 삶이라는 의미다. 회사에는 어떤 옷을 입고 갈까? 점심 식사는 어디에서? 회사를 계속 다닐까 아니면 나가서 내 사업을 할까? 등등….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곧바로 결정하지 못하면 외부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기업경영 역시 선택의 연속이다. 한 순간 그릇된 선택을 하면 끝없는 추락을 경험한다. 노키아는 스마트폰을 최초로 개발하고도 현실에 안주하다 10년 이상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던 휴대폰 사업부를 매각하고 말았다. 최고의 필름 회사 코닥은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외면하면서 파산에 이르렀다. 반면 후지 필름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기술을 활용해 첨단 디지털 산업과 바이오 사업에 진출해 최고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후지 필름이 2020년 3월에 발표한 지난 1년 매출은 2조 3151억 엔이다.
선택을 잘 하는 기업과 못하는 기업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특히 코로나 사태처럼 아무도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맞이했을 때 기업은 어떻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로 유명한 짐 콜린스가 2011년 11월 발표한 <위대한 기업의 선택(Great by Choice)>에 참고할만한 해법이 소개되어 있다.
그는 현대의 경영환경을 예측하기 힘들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극한 환경이라 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 역시 아무도 예측을 못했고 우리 생전 처음 겪어보는 극한 환경이다. 그는 현대의 경영 환경이 1911년 아문센이 최초로 남극점을 탐험할 때 겸험한 극한 환경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문센의 탐험 전략과 그가 ‘10X’라 명명한 초우량 기업들의 전략을 비교한 결과 3가지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원칙과 창의성 그리고 점검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평범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강조한 것은 그냥 원칙이 아니라 광적인 원칙이다. 그냥 창의성이 아니라 경험적 창의성이다. 그냥 점검이 아니라 편집증적 점검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내가 쉽게 통제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선 중요한 원칙 한 두 번 어겼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수습이 가능하다. 그러나 남극처럼 통제하기 힘든 극한 환경 속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키기로 했던 원칙을 순간의 방심이나 편의를 위해 한 두 번 미루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힘든 재앙으로 변할 수 있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좋은 상황이 될지 아니면 더 나쁜 상황이 될지 아무도 장담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문센은 탐험 도중 지켜야 할 원칙을 광적으로 지켰다. 대표적인 것이 20마일 행군이다. 알다시피 강추위에 변덕스럽기까지 한 남극의 날씨는 대원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극한 조건이다. 다행히 날씨가 좋은 날 하는 행군은 괜찮지만 혹한과 폭설 그리고 바람을 동반한 날씨일 때 대원들은 다른 선택을 기대한다. 오늘은 행군 하지 말고 쉬었다가 날씨가 좋아지면 더 많이 행군 하자는… 그러나 아문센은 예외 없이 20마일을 지켰다. 날씨가 나쁘다고 행군을 미루다 보면 기한 내에 남극점에 도착하기 힘들어 진다. 내일 날씨가 오늘 보다 더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 고비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장담을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처럼. 그러니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미루다간 극한 상황 속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미아 신세가 되기 쉽다.
실제로 같은 시기에 남극점 탐험을 두고 아문센과 경쟁을 하던 영국의 스콧 경은 날씨에 따라 행군 거리를 조정하는 합리성(?)을 보였다. 결과는 아문센이 먼저 남극점을 밟았다. 스콧 경은 한 달 이상 늦게 도착했을 뿐만 아니라 귀환도중 전 대원이 사망하였다.
“자신이 세워 놓은 원칙을 98%의 시간보다 100%의 시간 동안 지키기가 더 쉽다” 라는 말이 있다.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날씨가 조금만 나빠져도 오늘은 행군을 쉬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기 시작한다. 이미 지쳐있는 대원들에게 휴식의 유혹은 너무나 크다. 유감스럽게도 일정이 빠듯하니 오늘은 행군을 계속하겠다고 결정을 내린다면? 혹시나 하는 기대가 사라지면서 신경이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아직도 날짜가 많이 남았는데 왜 벌써부터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경영진에게 불만을 품게 된다. 그런 마음 상태에서의 행군은 크고 작은 사고의 원인이 된다.
반면 예외 없이 행군을 진행한다면? 날씨가 안 좋아도 어차피 행군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대원들 스스로가 철저히 대비를 하고 나온다. 오늘은 날씨가 안 좋으니 더 조심해야지, 장비도 꼼꼼히 챙겨야지, 막내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니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해야지 등과 같은 마음가짐이다. 원칙을 고수하는 데서 오는 선순환 효과다.
한국은 K 방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코로나 사태에 잘 대처한 모범국가다. 전면 봉쇄에 들어간 대부분의 국가들과 달리 사회적 거리 두기 정도로 감염 확산을 막아왔다. 신천지 사태가 났을 때 관련자들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더 이상의 확산이 일어나지 않게 노력했고 철저한 방역과 검사를 했기 때문이다. 이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확산을 막기 힘들다.
그러나 이태원 사태 관련자들 중 일부는 원칙을 지키지 않고 거리를 활보했다. 일부 물류 센터에선 작업자 간의 간격 두기 등과 같은 기본 원칙을 무시한 근무환경 속에서 일하다 확진자가 대폭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누구든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처벌을 강화한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그런 사람들을 적발하고도 구상권 청구 등의 구체적 조치를 취하는데 소극적이다. 은폐자들은 이 허점을 기대(?)하고 자발적 협조를 피하고 있다. 그 사이에 코로나는 우리가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무섭게 퍼져 나갈 것이다. 우리의 경제활동과 사회활동도 멈추게 될 것이다.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원칙 준수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화학물질과 같은 위험물을 취급하는 사업장에서의 작업은 조그만 실수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지는 극한 직업이다. 지난 5월 7일 LG화학이 14년만에 발표하는 새로운 비젼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도 공장에서 사고가 났다. 12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피해를 입은 대형사고다. 그 후 2주도 안된 19일 서산 공장에서도 사고가 났다. 이번에도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전에도 LG화학 공장에선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었다.
경영진은 재발 방지를 다짐 하고 있다. 전세계 4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달간 긴급진단에 착수한다고 한다. 쉽게 해결하기 힘든 작업장은 당분간 가동을 중단시키겠다고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안전사고는 시설과 관련된 물리적인 결함이기 보다는 안전을 바라 보는 조직문화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안전 시설이 좋아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기본 원칙을 무시하면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LG화학은 시설 점검도 필요하지만 안전 원칙을 제대로 지켰는지부터 조사하기 바란다.
LG 화학과 비슷한 극한 작업 환경의 알미늄 공장에선 원칙을 광적으로 지킴으로써 사고도 막고 성장도 이뤄냈다. 미국 최대 알미늄 회사 알코아의 CEO였던 폴 오닐이 그 주인공이다. 그가 회장으로 취임하던 1987년 알코아는 잇단 투자 실패와 노조의 반발 등으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 때 투자자들 앞에 선 폴 오닐은 다른 대책 대신에 알코아를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회사로 만들겠다는 발표를 해 참석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하지만 그는 안전만 제대로 지키면 연쇄적으로 선순환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내세운 광신적 원칙은 회사에서 산재가 발생되면 공장 책임자가 24시간 내에 사고 원인 및 재발 방지책을 CEO에게 보고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산재 발생시 24시간 내에 보고서를 작성하려면 책임자는 평소 회사의 안전 시스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 두고 있어야 했다. 그러려면 책임자가 현장을 수시로 방문해서 여러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 책임자가 나서서 움직이는데 그 밑의 중간간부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들도 수시로 현장을 점검하고 직원들과 문제를 토의하다 보니 노사관계도 개선되는 선순환 효과가 생겼다. 이 때 멕시코 공장에서 배기관에 문제가 생겨 일부 직원들이 호흡 곤란을 겪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이는 한나절 만에 바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회사 감사에서 이 사실이 드러났고 제 때 보고를 안 했던 부사장급 책임자는 즉시 해고 되었다. 폴 오닐이 취임했던 1987년 알코아의 매출은 15억 달러였으나 그가 퇴직하던 2000년 매출은 230억 달러였다.
17년간 애플의 광고와 마케팅을 이끌었던 켄 시걸은 스티브 잡스의 경영과 제품철학을 ‘미친듯이 심플(simple)’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심플함에 집착했다는 이야기다. 심플함이 think different의 원동력이었다. 그런 제품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애플의 팬들은 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실물 한 번 안보고 제품을 사려는 긴 대기 행렬 속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아마존을 거대 공룡으로 만든 원동력은 고객은 더 낮은 가격, 더 빠른 배송, 더 다양한 선택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10년 후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제프 베조스의 강력한 신념과 실행 전략들이었다.
고 신격호 롯데 그룹 회장 역시 제프 베조스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롯데 백화점의 3대 장점 -넓은 매장, 다양한 상품, 주차장도 넓지만 지하철로 오시면 더욱 편리하다 –을 매우 많이 강조했었다. 광고 담당자들은 이를 빅 쓰리(big 3) 라고 불렀다. 광고를 만들 때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는 가이드라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장점은 오프라인 유통 시대에 국한된 것이었다. 온라인 유통에선 편리한 지하철 보다 더 편리한 배달을 위해 물류 시스템을 개선시켜야 했다. 오프라인 백화점에선 아무리 매장이 넓어도 다양한 상품 진열에 한계가 있다. 상품 진열에 제한이 없는 온라인 전문 롯데 닷컴의 역할을 더 체계적으로 고민했어야 했다. 아쉽게도 롯데 백화점은 기본 원칙이 있었으되 그 의미에 맞는 변신을 못했다. 유통업계 최고 강자 이미지도 약해지고 있다.
각 기업마다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들이 있다. 낙관적인 환경 속에선 원칙을 일부 외면해도 큰 문제 없이 지나간다. 그러나 남극 탐험처럼 극한 환경 속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의미 있는 원칙이라면 광적이라 할 만큼 집요하게 지켜 나가야 한다. 내일이리고 해서 갑자기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해법이 생긴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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