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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티영미 May 28. 2021

별이 되셨나요?

- 삼광이 된 아버지


    따끈따끈 만둣국 맛도 좋아라  

    설날의 만둣국 나의 만둣국

    은수전에 담아서 나이를 먹네  

    내 나이는 아홉 살, 하나만 먹자

    너무너무 먹다가 늙어질까봐     


  만둣국 하나만 있으면 행복했던 아버지는 이제 병상에 누워 계신다. 아홉 살 소년의 소박한 걱정을 여지없이 비웃으며 등이 휠 것 같은 고통만을 선사했던 인생이란 놈은 이제 아버지에게 남아있는 진액마저 빨아먹으려고 가만히 때를 기다리고 있다. 

  돈은 늘 한 박자 늦게 왔고 악머구리 같은 자식들의 주린 배는 늘 두 박자 빨리 도달했던 삶, 욕구와 어긋나기만 하는 생의 시간들을 끝내 한 번도 맞추지 못했던 아버지는 가끔 죽음의 바다에 가 닿고자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허나 아버지에게는 죽음조차 수월히 허락되지 않았으니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할머니가 아버지의 목숨 줄을 잡고 호락호락 놓아주지 않은 까닭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삶이라는 실타래를 풀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지하 수천 미터 갱도에서 십 수 년을 보내다 결국 한 번도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던 ‘농자천하지대본’의 세계로 다시 돌아 왔다. 그 고된 ‘막장’ 인생길에서 아버지를 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짐작해 본다. 고단한 농사를 견디게 한 것은 홀로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이었고 잠잠히 먹을 가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고. 아버지를 살아가게 한 그 집념 덕분에 우리 집엔 늘 아버지의 붓글씨가 도배지를 대신하곤 했다. 안방에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어마 무시한 십계명이, 건넌방에는 아버지의 자작시들이, 생뚱맞게도 삼광(三光)이라는 붉은 낙관이 찍혀진 채로 걸려있었다.

 어린 나는 예쁜 도배지 대신 검은 먹으로 쓴 글로 들어찬 그 방이 정말 싫었다. 아버지의 신념으로 검게 빛나는 그 글들은 오히려 나에게 답하기 힘든 질문만 쌓이게 했다. 

  나는 늘 궁금했다. ‘부모님이 믿는 신은 왜 우리에게만 이리 야박한가? 예수 믿으면 잘 산다 했는데 난 왜 수학여행 갈 돈이 없나? 나는 보고 싶은 만화도 안보고 매일 교회도 열심히 가는데 왜 교회 마당도 밟지 않는 쟤네 집이 더 잘 사는 걸까?’

 이해되지 않는 섭리였고 한없이 답답하기만 한 아버지였다. 힘들게 지은 농산물, 제 값 받고 팔지도 못하면서 붓글씨나 쓰고 있는 아버지가 어린 마음에도 대책 없어 보여 불안하였다. 

 더 황당한 것은 당신이 쓰신 붓글씨를 선생님들께 갖다 드리라는 명령을 하실 때였다. 그것도 표구도 하지 않고 그냥 한지를 둘둘 말아 가져가 드리라고 하실 때면 ‘촌지도 아니고 한지라니……’라는 생각에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난처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붓글씨 덕을 가장 크게 본 인간이 있으니 그게 바로 나였다. 삼십 중반을 코앞에 둔 시점, 우리 아버지 붓글씨가 풍류 좀 아시는 강 장로님 댁에까지 전해졌고 그분은 아버지 글에 감동하여 전화를 하셨다. 공손한 인사가 오간 후에 본론이 나왔다. 

  “우리 집 자식 중에 빨리 치워야 하는 아들이 있는데 혹 참한 신붓감 하나 없는가?” 

  평소 또 하나의 취미생활로 사랑의 작대기를 통해 결혼을 몇 건 성사시켰으나 정작 혼기가 꽉 찬 딸을 치우지 못해 재고로 쌓아두고 계신 아버지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어이구. 우리 집에도 아직 못 치운 딸이 하나 있네. 그런데 나이가 꽤 있어.”       

  “뭐. 그 정도면 괜찮네. 우리 애보다 그리 많지도 않네. 딱 좋아. 허허” 

 나중에 시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얘야, 난 이제껏 네가 셋째보다 한 살 많은 줄 알았다. 네 시아버지가 그렇게 말해서.” 아버님 왈. “나이 많은 게 대수야? 잘 살면 됐지.”  

 이렇게 아버지의 붓글씨 덕을 톡톡히 보았으니 나를 보실 때마다 ‘결혼의 일등 공신’이라며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공치사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 덕분에 평범한 아줌마로서의 세월이 쌓여가던 어느 날,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우리 가족은 난데없이 낙향을 하게 되었다. 금의환향이 아닌 초라한 낙향은 아버지를 꽤 속상하게 했으리라.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리 실망한 내색도 없이 우리를 돌봐주셨다. 쉬는 김에 아버지 인생을 이해해 보겠다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해대는 딸에게 그간 쓰신 글과 작품들을 보여주기도 하셨다.

 헌데 미련하기도 하지. 그제야 아버지 호인 ‘삼광’이 궁금해졌으니. 난 늘 아버지 호가 왠지 촌스럽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삼광이란 호는 내겐 정말 과분하지. 내가 18세 때 만난 스승님께서 친히 하사하신 거지.”라는 아버지 말씀은 그간의 짐작을 무색케 하는 내용이었다. 

 “그 스승님은 영특하고 언변 좋은 나를 보시고 ‘햇빛, 달빛, 별빛처럼 빛나라’는 뜻으로 삼광이란 호를 붙여주셨어. 이 호를 쓸 때마다 너무 거창하단 생각에, 또 스승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 들지만 스승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쓰고 있다.”

 순간, ‘아, 아버지에게도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이 있었구나. 아버지에게도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구나.’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이렇게나 빛나던 그의 날개를 꺾어댄 미련한 자식은 원망만 가득 안고 아비 됨의 책무만을 강요했구나. 대학생이 된 딸에게 “이제 너는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해라. 이만큼 키웠으니 앞길을 알아서 도모하거라”고 말했던 아버지를 오래도록 미워하기만 했구나. 아버지 잘못 만나 비루한 청춘을 보내게 됐다고.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인생의 매 순간이 하나도 만만하지 않은 이 나이가 되니 아버지의 가능성과 아버지의 한계와 아버지의 회한과 아버지의 늙은 꿈이 조금씩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하여 언젠가 아버지가 멀건 죽 대신 그렇게나 좋아하시는 만둣국 한 모금이라도 드실 수 있는 날이 오면 도란도란 둘러앉아 낮은 목소리로 전하고 싶다. 

 “아버지, 지난 시절 저는 늘, 내 아버지는 왜 ‘키다리 아저씨’가 아닌지, 원망만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오늘, 삼광이란 멋진 호를 선물 받을 정도로 큰 기대를 받았던 소년 시절 아버지를 알게 되니 아버지 역시 그런 ‘키다리 아저씨’를 아버지 삼고 싶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뒤늦게 애잔함이 몰려옵니다. 

 이 간단치 않은 생을 무거운 짐까지 매달고 살아오신 아버지, 그 어두운 밤들을 지도도 없이 어떻게 지나오셨나요? 촛불 빛조차 넉넉히 허락되지 않은 그 삶에서 별빛, 달빛, 햇빛이 길동무 해주었으리라 말하는 건 너무 포장된 말들이겠지요? 하지만 이 헛된 위로라도 드려야 아버지 인생이 덜 쓸쓸할 것만 같아 ‘삼광’이란 호에 애써 기대어 아버지 인생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고, 그 어두움도 기어이 인생길 벗이 되어 아버지의 영혼을 인생의 신비로 채워주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아버지, 낡아진다고 다 버려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버지가 쓸 인생의 촛불은 점점 낡아지지만 아버지 안에 있는 빛은 점점 별처럼 빛날 거라 믿어봅니다. 이제, 아버지에게서 어둠만을 보았던 낡은 눈을 씻어버리며 아버지께 고백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내 아버지여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기력도 쇠잔하여 뼈밖에 남지 않은 내 가엾은 아버지는 이 늦은 고백을 들으시며 무어라 하실까? 입을 벌려 말씀은 못 해도 눈빛으로나마 이런 말씀을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딸아, 내게 있어 너희들은 소금 같은 존재들이었다. 지하 수천 미터 막장의 후끈한 지열 때문에 쉴 새 없이 땀이 흘러 탈진하기 직전 찍어 먹었던 그 소금 같은 아이들이 바로 너희들이었다. 너희 육남매야말로 내 인생을 단단히 딛게 해준 힘이었고 살아가는 이유였단다. 막장이라고 부르는 그 갱도에서도 나는 너희들만 생각하면 웃을 수 있었지. 오래도록 내게 큰 기쁨이고 자랑이었던 딸아. 지금 나의 가난한 몸 때문에 울지 말아라. 우린 모두 한 번도 살지 못한 시간을 사느라 이미 충분히 수고했으니 더는 애틋해 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도 결국 지나가지 않겠니? 언젠가 내 발로 땅을 다시 밟을 그 날이 오면 우리, 눈물 없인 먹을 수 없는 만둣국 한 대접 뜨뜻하게 먹자꾸나.”

     

아, 아버지. 늘 빛났던 아버지, 이미 삼광이 되신 아버지. 


--------2020년 11월 7일에 소천하신 아버지께 생전에 썼던 글을 올립니다. 아버지, 별이 되셨지요? 밤마다 문득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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