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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Feb 08. 2020

보드가야 이야기

붓다가 태어난 곳 인도

보드가야.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 앉아 정진을 하신 지 7일째 되던 새벽, 샛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신 곳이다. 부처님이 얻은 깨달음은 ‘나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위대한 진리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씀하셨던 그 순간, 부처님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고통과 번뇌를 스스로 끊을 수 있음을 알게 되고 무한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육신을 가진 상태에서 모든 번뇌와 틀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룬 그 순간, 불성을 가진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최초로 증명해 낸 그 순간을 상상해 본다.


값싼 침대칸 기차를 타고 찾은 보드가야

사르나트에서의 벅찬 감동을 간직한 채 아주 싼 가격에 잠을 자면서 이동도 할 수 있는 인도 기차, 슬리퍼 클래스(sleeper class)를 타고 보드가야로 향했다. 기차에 앉아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그 속도에 맞게 마을과 사람들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는 시간. 산들산들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 내가 인도 여행 중 정말 사랑하는 시간이다. 단순히 인도를 바라보는 외국인 여행객이 아니라, 아주 조금은 그 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가격과 청결도 면에서 모두 적절한 버마 사찰의 숙소에 머물기 위해 가던 길 위에서 나는 비하르 주의 실상을 조금은 접할 수 있었다. 비하르 주는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축에 드는 곳이다. 지나왔던 델리, 바라나시와는 또 달리 옷차림에서부터 풍족하지 않은 경제적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보드가야는 개발이 전혀 되지 않은 허허벌판의 시골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느껴지는 사람들의 밝음, 환한 미소는 다른 곳에서 쉽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처음에 3일을 계획하고 방문했지만, 이내 기간은 일주일로 늘어났다.  



보드가야에서 ‘지금, 이 순간 Present’을 느끼며 보낸 무위 無爲의 일주일
보드가야에 머문 기간은 일주일로 늘어났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룬 이곳에서 넉넉하게 정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동안 맑은 기운을 완벽하게 느끼기에는 나의 수행이 아직 한없이 부족하다 생각해왔지만 이곳만큼은 달랐다. 순간순간 정신이 서늘하리만치 깨끗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곳의 오롯이 맑은 힘 덕분이었다. 가끔 어떤 계기로 이렇게 온전히 내가 내 정신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있다. 모든 순간을 이렇게 명징하고 정확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드가야에 머문 일주일 동안 나의 일상은 간단했다. 아침에 버마 사원의 숙소에서 일어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샌들을 신고 여유를 즐기며 산책을 나선다. 허름한 시장같이 이것저것 좌판에 내놓고 팔고 있는 작은 상점들이 늘어선 길이 이어지고 마른 모래 먼지가 이는 길을 지나 유적지로 향한다. 중고 서점에서 발견한 헤르만 헤세의 책  『싯다르타』를 집어 들고 다시 길을 향한다. 중심 사원인 마하보디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참배길을 합장을 한 채 여러 번 돌며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그 후, 잔디가 깔린 정원의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참선을 하거나 순례객들을 바라본다.



내가 앉은 곳 위로 드리우고 있는 큰 보리수 나무는 부처님 당시에 있었던 보리수의 몇 대를 뛰어 넘은 손자 나무라고 했다. 보리수 앞에는 스리랑카, 중국 등 다양한 나라의 신도들이 앉아서 함께 경을 읽거나 명상을 하고 있다. 나 또한 넓은 잔디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감을 열고 내 주위의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낀다. 가장 맑고 명징한 시간. 서릿발처럼 맑고 깨끗한 느낌 덕분에 하루 내내 무엇을 하지 않은 듯 있으면서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이 곳에 있는 것만으로 이미 가득차고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곳에서는 하루가 그렇게 쉬이 흘러갔다. 모든 것이 조용하게 잦아드는 해질녘이 되면 차분해진 마음으로 사원을 나선다.



나는 아직도 삶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모든 오감은 열리고 정신은 빛나며, 마음은 차분해질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책의 제목처럼 ‘지금 이 순간Present’은 우리가 매 순간 가질 수 있는 ‘선물Present’이기도 하니까. 보드가야에서는 잔디 위에 앉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지금의 이 순간만을 느끼고 살아가는 시간이었다. 여행하면서 가장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무위(無爲)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충만했던 시간들이었다.


룸비니에서 태어난 싯다르타는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고, 사르나트에서 첫 설법을 한 후 쿠쉬나가르에서 열반하였다. 인도는 이 4대 성지 중 세 곳이 모여 있는 불교의 발상지이다. 낯선 힌두교의 나라, 인도를 여행하며 부처님의 흔적을 따라 자유롭게 다녔던 시간은 나를 다시금 돌아보고 정갈하게 할 수 있는 벅찬 시간이었다. 마치 마음에 한 줄기 큰 바람이 지나간 듯한 특별한 시간이었다. 이 모든 기회에 감사하며, 조금 더 부처님을 닮기를, 그리고 점점 더 맑은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아쇼카 왕의 손에서 꽃핀 불교

 

▲ 산치 대탑


종교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힘인 정치와 결합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할 때가 있다. 특히 아쇼카 왕은 석가모니 한 개인과 그를 따르는 소수의 제자들을 통해 성립된 불교가 지금처럼 이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기여한 인물이다. 인도 최초의 왕조인 마우리아(Maurya) 왕조의 3대 왕이자 전륜성왕(轉輪聖王) 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인도의 영토를 대규모로 확장시켰던 만큼 호전적인 왕이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지 8년이 되던 해, 그는 불교의 정법인 다르마(Dharma)를 통치 이념으로 삼고 자비와 존중을 바탕으로 35년 동안 평화의 치세를 이어갔다. 한 사람의 진정한 깨달음과 내면의 변화가 수 억 명의 삶을 평화롭게 바꾸어 놓은 것을 떠올리며 새삼 불교의 위대함을 실감한다. 정치적으로도 타 국가와 민족을 흡수하면서 다스리기에 불교는 매우 적절하고 현명한 통치 이념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아쇼카 왕은 불법을 알리기 위해 사절단이자 파견승들을 국내외 곳곳에 보냈다. 그 결과 중국으로 불교가 이어지는 기반이 마련되었고, 헬레니즘과 인도 북부의 미술이 결합하여 성립된 간다라 양식은 중국으로 전해진 후 신라 석굴암 본존 불상의 조각에서 정점을 찍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넓디넓은 세계가 얼마나 친숙하게 좁혀지는지, 머나먼 역사가 우리와 얼마나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시공을 초월하여 세계와 역사를 하나로 묶어주는 틀이 부처님의 향기를 담은 위대한 문화라는 점이 새삼 놀랍다.  

        

▲ 산치 대탑의 탑문에 새겨진 부처님의 전생담


아쇼카 왕은 부처님의 사리를 나눠 담은 수 천의 스투파(Stupa.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탑)를 세웠다. 전설에 따르면 아쇼카 왕의 자문이자 스승이었던 야샤 존자가 일식을 일으킨 사이에 8만 4천 개의 스투파를 한 순간에 세웠다고도 한다. 오늘날까지 가장 아름다운 조각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산치 스투파는 불교 초기의 탑 양식인 대규모의 둥그런 대탑으로, 이를 둘러싼 동서남북의 탑문 토라나(Torrana)에는 부처님의 전생담, 본생담 등이 조각되어 있다. 세계 여행 전인 2005년, '인도의 초기 불교유적 연구'를 위해 미술사 대학원 교수님을 따라서 인도를 답사한 적이 있었다. 산치 스투파를 방문했을 때, 원형 그대로 보존된 대탑과 조각의 아름다운 유산을 보며 인도의 문화적인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에 감탄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처님의 흔적이 유형으로 무형으로 곳곳에 남아 있는 인도는 여전히 불교의 탄생지로서의 위엄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언젠가 불교의 흔적이 스민 곳곳을 따라서 모두 발걸음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일지 헤아려 본다. 그 전에 나는 내가 발딛고 있는 이 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행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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