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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ug 19. 2020

숨겨진 보석 같은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 1

몇 년 전, 불교 잡지에 불교 국가 여행기를 주제로 1년 간 연재한 글을 올립니다.




홍차의 나라 실론, 스리랑카는 명실상부 남방 최고의 굳건한 불교 국가다. 특히 인도에서 불교 성지를 순례할 때면, 어디에서든지 흰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스리랑카 불교 신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태초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물방울 모양의 섬, 스리랑카. 인도양의 진주 혹은 눈물이라고 불리는 신비의 나라.

 

남인도의 동쪽에 위치한 대도시 첸나이에서 2시간 남짓을 비행해서 콜롬보라는 아주 낯선 도시에 도착했다. 인도와 달리 너무 깨끗하고 정갈한 모습에 전혀 다른 곳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왠지 인도와는 또 다른 정신세계를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처럼 느껴졌다. 왜 사람들이 스리랑카를 일컬어 ‘천사의 나라’라고 하는지 단번에 공감할 만큼,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선량하고 밝은 미소로 나를 맞아준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의 전경과 시마 말라카 사원


베삭(Vesak)을 맞은 콜롬보


스리랑카에 도착하기 전, 지인으로부터 현지 친구를 소개받았다. 수도 콜롬보에서 처음 만난 그는 마침 가이드로 일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이 아주 충만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같은 불교도라는 공통점으로 처음부터 기분 좋은 유대감을 갖게 되었다. 그는 고맙게도 콜롬보 시내를 포함하여 유명한 불교 사원들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베이라 호수 위에 지어진 시마 말라카 사원


특히 내가 방문했던 음력 5월은 ‘베삭(Vesak)’이라고 불리는 시기 중의 하나였다. 정확히 우리나라의 ‘부처님 오신 날’에 해당하는 기간이었다.  매달 음력 보름은 ‘포야 데이’라고 불리는데, 특히 5월의 베삭 포야 데이(Vesak Poya Day)는 부처의 탄생, 득도, 열반이라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일생일대의 사건을 한 번에 기념하는 날이라서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부처님은 베삭 포야 날에 룸비니에서 탄생하셨고 35세의 베삭 포야 날 득도의 깨달음을 이루셨으며, 45년 뒤 베삭 포야 날 열반에 이르셨다고 한다. 그러니 이 시기는 가장 복이 넘치는 중요한 기간임이 분명한 듯하다.


일주일에 걸친 베삭 축제 기간 동안 콜롬보 시내 곳곳은 반짝이는 전등과 길을 밝히는 전시물들로 장식된다. 이 기간 중에는 길가의 방이나 공터가 행인들에게 휴식의 공간으로 제공된다. 시내의 모든 집과 건물들에서는 랜턴으로 거리를 비추고 학교는 베삭을 기념하는 행사를 정성스레 준비한다        


우리는 도심의 불교 중심지 강가라마 사원에 들어섰다.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친구는 흰 실을 여러 번 꼬아서 팔찌를 만들어 내게 주었다. 이렇게 팔찌를 지니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끊어지면 자신이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진 거라고 했다. 웃으면서 내게 소원을 빌라고 얘기했다. 늘 그렇듯 나는 아주 큰 소원을 빈다. 나와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 글을 쓰는 지금 새삼 돌이켜 보니, 팔찌는 반년 뒤에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늘 그랬듯 지금도 주변이 모두 편안하고 행복하니 이러한 전통은 효력이 있는 것으로 믿어 보련다.


수도 콜롬보의 강가라마 사원


스리랑카는 오랜 기간 동안 불교가 융성한 나라다. 또한 중국과 인도 등 주변 불교 국가와의 문화 교류가 아주 빈번했었던 덕분에, 강가라마 사원 안에는 별도의 박물관을 만들어 찬란한 불교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후원으로 나가니 수 십 기에 달하는 중형의 스리랑카식 불상들이 층층이 늘어서 있는 인상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불교의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는 것이 기분 좋게 실감 났다.



남방 불교의 중심지, 스리랑카


스리랑카는 불교의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리적, 문화적 거리감으로 인해 유독 스리랑카의 불교에 대해서는 낯선 느낌이 강하다. 사실 스리랑카는 기원전 3세기경, 인도로부터 상좌부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오늘날까지 가장 확실하게 남방불교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오고 있는 중요한 불교 국가다. 상좌부 불교의 종주국인 스리랑카는 11세기에 버마, 13세기에 태국, 14세기에 캄보디아에 불교를 전파했을 만큼 불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축을 차지하는 곳이다.


폴로누와라의 대탑, 랑코트 비하라


전설에 의하면 부처님은 생전에 스리랑카를 세 차례나 방문하셨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곳은 불교의 기원과 함께하는 막역한 인연의 나라가 맞다. 실제로 인도에서 불교를 널리 전파한 아쇼카 왕은 자신의 아들인 마힌다(Mahinda)를 스리랑카에 파견해 불교를 전하도록 했다. 이때 마힌다가 부처님의 성도지인 보드가야 보리수 나뭇가지를 지니고 와서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의 마하보디 사원에 옮겨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지금까지 이 나무는 살아남아서 스리랑카 불자들이 부처님의 상징으로 여기며 신실하게 숭배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정작 인도에서 사라진 불교의 흔적과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스리랑카는 완연한 불교의 나라다. 스리랑카에서 불교가 이토록 융성할 수 있었던 것은 왕권과 귀족들의 휘호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스리랑카의 티사 왕은 아쇼카 왕이 보낸 마힌다의 설법에 크게 감화되었다. 또한 기원전 2세기, 힌두교를 신봉하는 남인도의 타밀족이 침입하자 스리랑카의 두타가마니 왕은 전쟁을 선언하며 이렇게 선포했다고 한다. “나의 전쟁은 왕국의 지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불타의 교법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불교의 수호를 위해 타 종교 이민족의 침입에 대항한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위해 기꺼이 이교도와의 전쟁을 감수하다니 이처럼 단단한 불교 국가가 또 있을까 싶다. 이후 스리랑카 불교는 확실히 민중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서, 종교나 신앙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삶의 의의와 생활 원리, 도덕과 가치관, 공덕 관념에 근거한 선행 등을 가르치고 있다. 그 예로, 스리랑카에는 매월 음력 보름날 행해지는 중요한 불교 의식의 하나인 포야 데이(Poya Day)가 있다. 금욕과 참회의 행사 기간 동안 모든 불교 신도는 육식을 금하고 흰 옷을 입으며 독경과 정진, 설법을 듣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또한 대중 공양을 보시하는 날을 집안의 경사로 여기며 집안 식구는 물론 친척까지 동원된다고 하니 이들의 신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스리랑카 최고의 연등축제를 즐기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나는 불교사원 주위를 장식한 각종 전등과 연등 장식의 장관을 보기 위해 상상 이상의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축제의 현장 속으로 들어섰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콜롬보로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가족 단위와 친구들이 삼삼오오 길거리를 가득 메우며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길거리 연등 축제가 매우 유명한데 꽃, 나무, 각종 동물, 불상 등의 형태로 제작한 초대형 정교한 연등들이 몇 백 미터 가량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이어지고 있었다.



콜롬보 거리의 베삭 풍경들



내 키만큼 큰 연등들이 은은한 색과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건 외국인인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수많은 현지인들도 연등의 규모와 정교한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오랜 기간 만든 그 정성은 어떤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스리랑카에서 불교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화려하게 등을 밝힌 시마말라카 사원


축제 속 연등길을 빠져나오니 베이라 호수 위에 떠있는 시마말라카 사원 역시 푸른빛 전등 덕분에 유난히 우아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호수 위 불빛을 밝힌 배에서 합창을 하는 청명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아름다운 밤이 그려지고 있었다. 잊지 못할 스리랑카의 첫 번째 밤이 부처님의 향기 속에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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