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불교 잡지에 불교 국가 여행기를 주제로 1년 간 연재한 글을 올립니다.
방문지마다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들을 품고 있을 만큼 스리랑카는 그 자체로 완벽한 불교국가였다. 나는 수도 콜롬보에 도착해서 북쪽에 있는 고대 도시 폴로나루와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가는 여정을 택했다.
스리랑카의 고대 도시를 만나다
폴로나루와 유적들
폴로나루와(Polonnaruwa)는 12, 13세기에 융성했던 스리랑카의 두 번째 수도였다. 이 곳은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희귀한 형태를 갖춘 미스터리 한 고대 도시이면서 정원 도시(garden city)이다. 특히 폴로나루와에 있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는 신할리즈 왕국의 수호물이자 부적으로 여겨졌는데, 이후 부바나이카바후 2세(Bhuvanaikabahu 2)가 이를 제거하자 폴로나루와가 쇠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지름이 무려 175m, 높이가 55m에 달하는 거대한 사리탑인 랑코트 비하라였다. 폴로나루와 유적에 처음 들어섰을 때 이 곳은 늦은 오후의 마지막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정글을 헤치고 고대 유적을 남몰래 처음으로 대면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할 만큼 압도적이면서도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신비롭고 고귀한 느낌은 큰 와불 유적인 갈 비하라에서 정점에 달했다. 신할리즈족 예술의 걸작으로 꼽히는 갈 비하라는 자연석에서 직접 파낸 3구의 대불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열반 불상은 무려 13m가 넘으니, 곳곳이 그저 부처님 향기로 가득한 도시였다.
폴로나루와가 왕족의 수도라고 하지만 오히려 불교 유적들이 중심이 된 다음 나머지 부분을 채워 나간 느낌이 들 만큼 불교 유적의 군락 그 자체였다. 어쩌면 12, 13세기의 신할리즈족은 그들이 염원했던 불교의 도시를 이 곳에 구현하고 국민들을 치세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에서 봉오리를 맺고 한때 꽃을 피웠던 불교는 스리랑카에서 본토에서보다 더욱 순수하고 정통으로 믿어져 온 듯했다. 무엇보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간직해 준 곳이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오늘날 부처님의 가르침을 길잡이 삼아서 각자의 삶을 바르게 이끌어 갈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그런 마음이 들자, 이 곳 사람들의 순수한 눈망울 마저 감사와 존경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시기리야
세계 8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여겨지는 시기리야(Sigirya)는 4세기까지 불교 수도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후 광기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왕이 자신을 이 곳에 자발적으로 가두었던 믿지 못할 역사가 얽힌 곳이기도 하다. 시기리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대한 바위 밑에 그려져 있는 불교 벽화였다. 부드러운 곡선과 우아하고 온화한 자태, 안에서부터 번지는 듯한 부드러운 색감은 중인도에 위치한 아잔타 석굴의 걸작인 전성기 때 벽화와 매우 유사한 모습이었다. 스리랑카에서 불교문화가 인도 못지않게 찬란하게 발전했었다는 사실이 여실히 다가왔다.
담불라
시기리야에서 탄 로컬 버스가 담불라(Dambula)에 도착했을 때, 길을 모르는 초행 여행자인 나를 위해 버스 기사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경로를 벗어나 황금 사원 바로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셨다. 그렇게 나는 담불라의 황금 사원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 곳은 바위산 중턱에 조성된 석굴 사원으로 2200년이 넘는 시기 동안 160여 기의 불입상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유적지이다. 담불라 유적은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인도에서 발생한 초기 불교가 스리랑카로 곧바로 전해져 이렇게 대규모의 융성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는 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캔디 불치사
스리랑카의 마지막 신할라 왕조 최후의 수도인 캔디(Kandy)에는 여전히 왕조의 품위가 깊게 사무쳐 있다. 한 시절의 영광이 지금도 손에 닿을 듯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과거의 운치가 온 거리에 남아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넘치면서도 활발한 생기가 도시 전체에 역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옛 수도 캔디는 스리랑카가 지닌 특유의 느낌을 가장 잘 반영하는 곳인 것 같았다.
오랜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에는 불교 신자들이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는 3대 보물이 있다. 하나는 인도에서 부처가 처음 깨달음을 얻은 곳의 보리수 가지를 꺾어와 고대 도시 아누라다푸라에 심어 키운 보리수이고, 둘째는 스리바다라는 산 정상에 남겨진 부처의 발자국, 마지막은 부처의 치아 사리인 불치다. 이 불치가 모셔진 곳이 캔디의 불치사이니, 스리랑카에서 이 곳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불치사는 나의 기대를 가벼이 넘어서는 압도적 규모로 거대하면서도 너무나 단정했다. 캔디 호수를 벗 삼아 위치한 이 곳은 각국의 신실한 불교도들이 와서 경배를 드리는 스리랑카의 가장 신성한 곳이다. 사원에 가까이 다가가면 화려한 불교기가 눈에 들어온다. 부처님의 검푸른 머리카락 색을 상징하는 파란색, 금빛 찬란한 부처의 몸인 노란색, 부처의 피를 뜻하는 빨간색, 치아 빛깔의 하얀색, 부처님이 몸에 두르는 가사의 주황색까지 다섯 빛깔로 빛나는 깃발이 이 곳을 너무나 경건한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바로 여기가 스리랑카 최고의 불교 성지라는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내뿜고 있었다.
불치사에는 유난히 순수하게 맨발로 방문하는 신자들이 많았는데, 나 역시 신발을 가지런히 두고 발을 내디디니 발걸음이 얌전히 가라앉는 듯했다. 하얀 옷을 입고 하얀 꽃을 손에 든 신자들 덕분인지 나의 마음도 너무 경건해진다. 이들은 사원을 방문할 때 가장 몸을 단정히 하는 색이 하얀색이라고 믿는다. 외관은 새하얗지만, 안은 붉은색과 노란빛 등으로 더없이 화려하게 빛나는 이 곳은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곳임에도, 신도들이 치아 사리 곁에서 자유롭게 앉아서 명상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쉬기도 하면서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여기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불치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시기는 일 년에 단 한 번이라고 한다. 예외적으로 나라에 큰 재앙이 닥치거나 많은 사람들이 실의에 잠길 만한 힘든 시기가 찾아오면 불치를 공개해 신자들에게 희망과 염원을 안겨준다고도 한다. 스리랑카를 지탱하는 불교의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스리랑카의 많은 아름다운 유적지들을 방문했고 더없이 감동받는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스리랑카가 오래도록 간직해온 아름다움은 내 곁을 스쳐갔던 스리랑카 사람들의 순수한 미소와 눈망울, 이들이 풍기는 선한 분위기에 온전히 배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사의 나라’의 사람들로부터 스리랑카 불교의 향기를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