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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Feb 25. 2020

인도 히말라야, 키노르

쉼라에서 칼파까지

쉼라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델리에서 8시간을 걸려 올라온 쉼라.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의 여름 휴양지였던 도시. 히말라야의 흰 설산이 멀리 보이고, 온화한 봄가을의 날씨를 지닌 이상적인 고산 휴양지에 도착했다.



드디어 내일이면 내가 그렇게 궁금해하고 그리던 곳으로 가게 된다. 히말라야 스피티! 많이 기다린 시간인 만큼 충분히 잘 보내고 마음에 많이 담고 오는 시간이길 바라는 해 질 녘.



이번에 유난히 내가 왜 여행을 계속하는가, 이 여행의 목적이 무엇일까에 대해 수많이 질문해 보게 된다.

내가 얻고 싶고 원하는 것은 과연 뭘까?

모든 것이 안정되고 갖춰진 곳에서 굳이 험하고 어지러운 혼돈의 장소와 시간으로 몸을 굳이 끌고 오는 이유는 뭘까?

무엇을 찾고 느끼고 싶은 걸까?


그만큼 일상이 많이 소중해진 것도 있을 테고, 일상과 여행의 균형이 맞아지는 것도 있을 테다.

어쩌면 오히려 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자, 가장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질문.


키노르 칼파 마을에서 지낼 숙소로 부러 허름한 곳을 정했다. 딱 떨어지게 깔끔한 호텔도 많겠지만, 이 곳 사람들처럼 히말라야의 마을을 누려 보고 싶었다. 괜찮아 보이는 홈스테이에 전화를 걸었다. 사람 좋을 것 같은 시골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격을 듣고서, 한 명인데 좀 깎아줄 수 있냐고 물으니 선뜻 오케이라고 하신다. 내가 거듭 고맙다고 하니, 아저씨도 Thank you, Thank you! 그저 고맙다 하신다.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이미 칼파는 내게 몇 발짝은 훅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칼파로 가는 길

나의 첫 마을로 가는 버스 안에서 칼파 바로 아랫마을 레콩 피오가 고향인 키노르 아가씨 뿌자(Pooja) 만났다!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와 제스처를 지닌 예쁘고 아름다운 아가씨다. 차분하면서도 쾌활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10시간 가까운 이 길을 수백 번도 더 드나들었다는 사람. 작년에 쉼라에서 대학을 졸업했단다. 그는 어쩌다 보니 이 버스 안에서 나의 완벽한 로컬 가이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하나 모두 설명해 주면서 10시간을 함께 여행한다.


뿌자는 키노르와 자신들의 전통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준다. 키노르는 엄밀히, 스피티 직전의 또 다른 히말라야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그녀는 키노르 사람들의 90 퍼센트가 불자라고 했다. 그중 절반은 오로지 불교만 믿는 사람들, 나머지 절반은 불교와 힌두교를 함께 믿는 사람들이라고. 키노르 밸리로 접어들수록 위험하지만 더없이 아름다운 절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뿌자는 내가 가장 좋은 풍경을 볼 수 있도록 계속해서 자리를 바꾸자고 한다. 너무 따스한 사람.



그녀 덕에 앞으로 일주일은 거뜬히 먹을 히말라야의 체리 일 키로를 한국 돈 천오백 원에 구입한다. 이 체리 덕분에 나는 아주 오랫동안 뿌자를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었다.

 


따스한 키노르 사람들

아름다운 키노르 밸리의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도록 자리를 요리조리 옮겨준 건 뿌자만이 아니었다. 버스 차장 아저씨도 그와 함께였다! 계속해서 나를 챙겨 주며 씽긋 웃어주던 아저씨!

마지막에 “Thank you so much!”라는 나의 말에 “Most Welcome!"이라고 웃어 주신다.

모스트 웰컴!! 나는 그 말이 괜히 너무 좋았다. 마치 나의 여정이 최고로 환영받고 있는 것 같은 마음에 몇 번을 혼자 기분 좋게 읊조려 본다.


푸근하고 서글서글한 키노르 사람들, 키노리.

얼굴의 생김도 태도도 인도인들보다는 동아시아 계통의 우리와 더 닮은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산을 닮은 산사람들. 모두들 나를 어떻게든 더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 다들 왜 이렇게 선한 거지?

가는 길목마다 만나진 사람들 모두 앞으로의 내 여정이 어떨지 암시하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의 길 위에서 오고 가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가고 함께 하다 보면 나는 늘 목적지에 있었다.



칼파의 숙소에 도착했다. 15kg는 될 것 같은 배낭을 메고서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곳이라 묻고 물어 마을의 가장 꼭대기까지 15분쯤 올라가니 드디어 숙소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처럼 정말 Best View가 훤히 보이는 가장 꼭대기에 있다. 역시 좋은 것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보다 더 서글서글하고 겸손하신, 너무 선해 보이시는 중년의 아저씨가 나를 반겨 주신다. 이 곳의 강한 햇살을 받아 얼굴에 주름이 꽤 많지만, 푸근한 표정 주름이 얼굴에 가득하다. 내게는 세련된 인도의 도시에서 벗어나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푸근한 산사람의 느낌이 아주 반갑다.  체크인을 하고 짜이를 한 잔 마실 겸 아래층으로 내려가자고 하신다. 작은 길을 따라 내려가니 아저씨 가족이 사는 공간이 보인다.



사실, 그전에 알아차린 건 외양간 냄새! 얼마 만에 이렇게 진하게 맡아보는 소똥의 냄새인가! 그것도 집 안에서! 아주 어릴 적, 외할머니 집 안에 이런 외양간이 있었다. 그때는 다 그랬으니까. 엄마는 늘 외양간에 있던 소가 할머니 집의 가장 큰 재산이었다고 하셨다. 자식들을 먹이고 공부시킬 수 있었던. 그 오래전 풍경을 오랜만에 접하니, 이건 너무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러운 일이라 나도 헛웃음이 나와 버렸다. 너무 반갑고 정겨워서! 그러니까 내 기대를 한껏 넘어섰다는 이야기.


짜이 한 잔 끓여 주시는 동안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본다. 키노르인들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키노르 카일라쉬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 풍경을 평생 동안 보아 왔겠다 싶었다. 평생을 같은 마을에서 산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저녁 식사를 예약했다. 그저 오늘 집에서 먹을 건지, 아닌지만 얘기하면 된다. 8시에 먹기로 하고 나는 마을을 거닐러 나선다.


히말라야의 가장 아름다운 정원

그동안 많은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들을 거닐어 보았다. 이 곳만큼 잘 차려진 신들의 정원이 있었나? 고작 3000m 남짓의 고도에서 이렇게 압도적인 풍광이 펼쳐질 수 있다니!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풍경이다. 네팔의 에베레스트 트레킹 구간 중 남체 마을 정도가 비슷했을까? 편하게 와서 이런 풍경을 눈앞에 둘 수 있다는 건 결코 작은 행복이 아니다. 관광객도 몇 없는 조용한 산마을의 느낌을 가득 누린다.




유난히 봄기운이 가득할 것 같은 아늑한 곳을 찾아 얼떨결에 오래 머물기도 했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히말라야를 곁에 두고 끝없이 걷기도 했다.

이 곳에 닿기까지 내 안을 시끄럽게 했던 그 모든 질문들이 한 번에 상쇄된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 히말라야의 풍경.

그 어떤 것도 아닌, 항상 사랑해 마지않는 이 풍경과 느낌을 나는 오래도록 그리워했었나 보다.

다른 곳이 아닌,  곳만이   있는 맑음과 차분함. 그리고 사람들의 따스함.

내가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들여 올 만한 그런 귀한 것들.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저녁을 먹고 내 방으로 올라와 테라스에 앉는다.

그곳에 별과 달이 그려져 있었다.

설산 뒤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를 만났다.

산의 능선과 별이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을 떨구며 한 시간 여를 꼼짝없이 바라본다.

눈물이 날 만큼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비현실적인 풍경.


복잡했던 내 마음은 이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풍광 앞에서 비로소 고요해졌다.

나는 이제 앞으로의 여정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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