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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ug 14. 2020

시골에서 소개하고 싶은 곳, 오일장

제가 살고 있는 곳 양평에서 에어비앤비 트립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즐겁게 보내기 바빴던 1년 동안의 특별했던 시간을 찬찬히 풀어 보려고 합니다.




살아 숨 쉬는 놀이공원 같은 오일장


배낭여행자로서 시장 덕후인 내게 시장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자 공간이면서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음식과 술을 사랑하는 친구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우리에게 전통 시장은 흥미로운 삶의 현장 그 자체였다. 사람과 음식, 지역의 생산물이   모이고,  지역의 기후와 자연까지 더불어 느낄  있는 매력적인 곳이니까. 


몇 백 년의 시간을 품고 가식 없는 ‘진짜 지금 이 곳’의 모습이 담겨있는 전통 시장은 늘 흥미진진하고 가장 사람 냄새나는 곳이었다. 국내 여행을 끝없이 하던 때 정선에서도, 영월에서도 가장 즐거운 공간은 늘 오일장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양평을 여행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계절에 따라 오일장에 내놓으신 산나물의 종류가 미세하게 바뀌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로 30분 좀 더 멀리 왔을 뿐인데, 이 곳의 음식이 강원도의 음식과 미세하게 섞여 가는 걸 알게 되었다. 거기다 한국의 술까지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도 보였다.


우리는 외국 친구들에게    그대로의 시골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 졌다. 지역의 특색을 담은 현지인이 사랑하는 일상적인 음식이 있고, 쌀이 펑펑 터지는 새로운 경험이 있는 곳을. 무엇보다 너무 정스러운, 물건을 파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곳을 알려주고 싶었다. 가장 한국적인 술과 음식도 당연히 함께!




트립 아이디어는 바로 이 곳에서,

오일장 뒷고기 집


사실 우리가 정말 소개하고 싶은 한 곳이 있었다. 언제든 맛있는 고기를 구워 먹고 싶은 날이면 곧바로 향하는 가장 아끼는 곳이었다. 바로 양평 오일장 안의 뒷고기 집! 어쩌면 이 곳을 소개하고 싶어서 트립을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오일장의 야외 공간 한복판에 있는 둥그런 스뎅 테이블에 앉아 불판을 앞에 두고 고기를 구워 먹는 곳이다. 이마저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이 시장 고깃집의 진정한 매력은 단연 친근하고 사람 좋은 주인아저씨라는 사실! 자리에 앉으면 아저씨가 몇십 년은 족히 되었을 옛날 가위로 고기를 숭덩숭덩 잘라서 구워 주신다.



“이 가위 진짜 오래돼 보여요! 얼마나 된 거예요?”

“이거, 우리 할머니가 포목점을 하실 때 쓰던 걸 발견하고 내가 갖고 온 거예요.”


가위 하나도 범상치 않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을 줄이야!


아저씨가 고기를 직접 뒤집으며 구우시다가 가장 맛있게 익은 순간 직접 만드신 깻잎 장아찌에 고기를 돌돌 말아 건네주신다. 한 입 먹어 보라고! 신선하게 떼어오는 고기 맛은 두 말하면 입 아픈 이야기다. 아저씨의 정스러운 마음이 더해져서 갈 때마다 배도 마음도 푸근해져서 돌아오는 사랑 해마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의 아날로그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해버린 이 고깃집을 드나든 지 어느새 몇 년 째였다.


 

“이런 경험은 서울에서 절대 못하지!”


“당연하지! 친구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세상에 이런 ‘Grilled Barbeque’가 있다고 생각해봤을까? 진짜 신기해하겠지? 이건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경험이잖아!”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친근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 졌다. 농촌에서까지 서울에서와 똑같은 경험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 이 곳에 가장 어울리는 시간을 외국 여행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우리의 들썩거림이 또 한가득 추가되었다.



시골의 음식이 주는 행복감


음식에 술이 빠질 수 있을까. 음식을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는 우리에게 맛과 멋, 흥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이 지역의 특성을 담은 음식과 술을 소개하자. 외국 친구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궁금해할 음식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알려주는 건 어때?”     


한국의 막걸리는 ‘농주’라고 리며 농촌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편안한 술이다. 맛 자체만으로도 요거트와 샴페인을 섞은 것처럼 독특하고 매력적이어서 친구들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지평 막걸리’는 양평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로 깔끔하고 맛있기로 유명했다. 마침 양조장은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었으니 우리가 생각하는 트립의 컨셉에 더욱 부합했다.     



당연히 길거리 음식도 준비 완료! 세계 어디에서 왔더라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랑에 빠지고 말 길거리 음식인 마성의 호떡까지 야심 차게 준비했다. 당연히 그냥 호떡이 아니다. 까다로운 입맛을 행복하게 해 줄 사랑하는 할머니 호떡집이 오일장 안에 있다. 이 곳의 호떡만큼 맛있는 호떡을 먹어본 적이 없다. 견과류를 아낌없이 듬뿍 넣고 노릇노릇 가장 맛있게 구워졌을 때 비로소 건네주시는 엄격함에서 장인정신마저 느껴지는 할머니의 호떡집.

이 호떡집은 예상했지만, 나중에 친구들에게 훨씬 더 큰 사랑을 받으며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활짝 피어오르게 한 비장의 무기가 되었다.


이 모든 경험의 맥락을 함께 얘기하고 싶었다. 양평의 아름다운 곳곳을 배경 지식과 함께 잘 전해주고 싶었다. 친구들이 표면이 아니라 조금 더 깊게 한국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미술사를 전공한 나는 역사 덕후다. 역사, 예술, 아름다움, 전통, 아날로그 이런 부분은 내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요소다. 그건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예술가답게 멋과 운치를 사랑했고, 특히 전통과 아날로그 덕후였다. 예를 들어 절을 방문해서도 이 곳이 언제 어떻게 설립되었고, 지금은 어떻게 사랑받고 있는지 한국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마침내, 트립의 이름을 정했다.


“Mindful Time in Seoul Suburb"

 (서울 근교에서의 마인드풀 한 시간)     


키워드는 ‘mindful'!

마음 챙김, 마음 치유!


지금까지 언급한 경험과 시간을 누릴 때면 늘 마음이 충분하며 행복하다고 느꼈으니, 'mindful'은 우리의 트립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였다. 그 마음의 여유를 이제 친구들과 함께 느끼고 싶었다.



“이 코스를 다 소화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최소 5시간이겠는데?”     


지금까지의 에어비앤비 트립의 평균 시간은 2-3시간 남짓이었다.

사진도 잘 찍어줘서 기념으로 간직하게 하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그 정도는 선물해주고 싶었다.


"진짜 알차다 같으면 바로 오고 싶겠다! “


애정을 듬뿍 담아, 외국 여행자가 충분히 좋아할 만한 여행을 만든 것 같았다. 이들이 양평으로 오고 싶다는 생각이 기꺼이 들 만큼! 꽤 기대치가 높은 여행자면서 까다로운 소비자이기도 한 나 역시 이 정도의 여행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이건 절대로 외국인이 직접 찾아낼  없는 경험이니까!




트립 페이지를 작성하다


우리는 매일 카페에서 트립 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골몰했다. 작성해야 할 목록과 질문지가 생각보다 아주 자세했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몇 시간 내내 정말 집중해서 일하다가, 더 이상 머리가 꿈쩍하지 않게 된 순간에 맛있는 고기를 먹으러 갔던 시간들.


준비 과정 동안의 집중과 몰입의 시간은 생각보다 아주 즐거워서 우리를 들썩들썩 춤추게 했다. 여행을 만들면서, 이미 넘치게 설렜고 즐거웠다. 우리가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고 있는 것 마냥 머릿속에서 수많은 시뮬레이션이 오고 가고 있었다.



드디어 트립을 승인받다


트립의 상세 페이지를 작성한 후 트립 승인을 받는 건 심리적으로 느끼기에 다섯 개 정도의 허들을 통과하는 것 같은 큰일이었다. 초기의 마켓 컬리 같다고 해야 할까? 가장 엄선된 트립만이 승인을 받은 것 같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에어비앤비는 사진 트립, 음식 트립과 같이 한 분야에 뾰족한 전문가가 자신의 분야를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를 권했다.


하지만 우리 트립은 자연역사음식  양평의 모든 것이 어우러져있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였다. 전화 인터뷰를 통해 H 담당자님이 이 부분을 언급하고 승인을 잠시 보류했다. 하지만 본인이 시간을 내어 꼭 참여해보고 싶을 만큼 정말 매력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얘기하셨다. (H님은 앞으로도 종종 등장할, 우리와 트립을 정말 좋아하고 응원해준 분이다)





이후의 통화에서 트립이 승인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원래의 기준과는 조금 다르지만, 양평의 트립은 에어비앤비 내부 회의를 통해 최초로 '지역의 전문가'가 트립을 만든 사례로 승인을 받았다. 그렇게 에어비앤비 최초로 서울이 아닌 지역에 분야가 아닌 지역의 전문가가 만든최장 시간의 트립이 되었다. 우리 이후로 수많은 트립 호스트분들이 지역 전문가로 활동하시는 걸로 알고 있다.



다음 날, 에어비앤비 앱을 열었다.

트립 섹션에 정말 우리 트립이 올라와 있었다.     

“와아! 진짜 런칭됐다!!!”     

너무 기뻤다. 하지만 이내 긴장되기 시작했다.


정말 누군가가 이 트립을 신청하려고 할까?

여행자 중에 트립 리스트를 보고 / (정성과 애정이 한껏 들어간) 우리의 트립에 흥미를 느껴 클릭해서 /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 편도 한 시간이 넘는 수고로운 여정을 감수하며 / 양평으로 오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취향과 결이 맞는 친구들이  찾아와 주었으면 하고 바라며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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