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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Sep 23. 2017

그 날이라서 하는 소리


남몰래 속을 앓았다. 생리를 안 해서.


별로 걱정할 일도 없었는데 왜 며칠 전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냐면 저번 주에 친구랑 야채곱창을 먹으면서 했던 얘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가볍게 생리대 논란으로 시작했다. 친구는 유해물질이 가장 높다고 드러난 브랜드를 사용 중이어서 걱정이 됐다. 대신 탐폰을 써볼까 했지만 패드도 찝찝한 마당에 유해물질이 있을지도 모르는 솜덩이를 몸안에 넣어야 한다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게다가 탐폰의 느낌은 최악이다. 넣을 때의 황당함은 그렇다 쳐도 뭔가를 몸안에 넣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영 불편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탐폰은 '코피가 나니까 휴지로 틀어막는다'는 발상에서 고상하게 발전한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몸속에서 혈액을 잔뜩 흡수해 부푼 탐폰을 꺼낼 때의 불쾌함은 참아줄 수가 없다. 빼낼 때의 압력차 때문에 몸 안에 든 게 다 빨려 나올 것 같은 건 나만 느끼는 걸까. 아무튼 탐폰의 불쾌함에는 왠지 화가 난다. 


내 친구는 탐폰을 쓸 용기도 없고, 면 생리대를 빨아 쓸 부지런함도 없기에 요즘 유행한다는 '생리컵'을 알아봤다. 이것도 나에게는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충격적인 물건이었다. 질 안에 생리컵을 끼워서 생리혈을 받는 것인데 아마도 '지붕에서 비가 새니까 양동이를 받친다'와 같은 개념인 것 같다. 무슨 느낌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지는데, 컵을 교체할 때는 변기에 혈액을 버리고 세면대에서 컵을 깨끗이 씻은 다음 다시 사용하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내 얼굴은 사색이 되었던 것 같다. 집에서는 문제없겠지만 공용화장실에서는 어떡하지. 내가 무지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자꾸만 생리컵을 세척하면서 피칠갑이 되는 세면대와,  그 옆에서 손을 씻으며 그런 나를 경악스럽게 바라보는 꼬마 아이를 상상하게 된다.  


근데 문제는 이게 아니고. 생리컵을 만드는 회사에서 나처럼 거부감을 가질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면서 마케팅을 했는데, 내 친구가 그 영상을 보고 내게 해 준 말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성교육 동영상의 요점은 완벽한 피임은 없다는 거였고, 그래서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거였는데 특히 질외사정은 피임을 안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었다. 

"산부인과에서 질외사정은 피임을 안 한 걸로 봐요. 관계 중에도 남성의 성기에서 분비물이 나오기 때문에 그걸로 임신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피임약을 먹는 것이라는, 왜 항상 여자만 조심해야 하냐는 분노의 레퍼토리가 이어질만한 그런 내용의 동영상이었다.


질외사정이 그렇게 위험하다니. 왜 갑자기 그 말이 그렇게 끔찍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 시점부터 나는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야채곱창이 징그러워 보이고 그걸 먹는 친구도 보기 싫고, 머리가 뜨거워지고 복잡해지면서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생각이 자꾸만 얼마 전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내가 왜 콘돔을 안 하냐고 묻지 않았던 밤. 왜 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그 요구가 부끄럽고 미안하게 느껴졌을까. 상대의 만족을 떨어뜨릴 것 같아서, 뭐 어쩌면 상대를 위해서 일부러 내는 소리들과 비슷한 배려겠지만. 상대는 왜 그 배려가 배려인 걸 모르고, 그 배려로 인한 뒷감당은 나 혼자 해야 하는 건지. 


대책 없는 불안이었다. 불안에서 시작한 무서운 생각들은 끝도 없이 펼쳐졌다. 지난달 생리일로 가임기간을 계산해보면서 이 정도면 안전할 거라고 나를 달래보고, 이번 달 생리일이 다가와서 내가 예민해진 거라고 웃어넘기려고 했지만. 몸이 붓고 가슴이 부풀어 통증이 느껴지고 소화가 잘 안 되면서 아랫배가 나오는 증상들은 몸이 생리를 준비하는 건지 다를 걸 준비하는 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내 몸인데, 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내 몸이 얼마나 멀고 낯설게 느껴졌는가. 남자들의 단순하고 개방적인 몸이 부럽기도 하고 증오스럽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밤잠도 설쳐가며 불안해하는 걸 상대는 모를 테니까.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줘도 남자들은 모를 거다. 여자들이 왜 불안하고 그것 때문에 일상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몇 년 전 내 친구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그다음 달 생리가 나오지 않아서 끔찍한 일주일을 보냈다. 전남친을 말끔하게 잊었는데, 몸안에 그의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다시 어떤 식으로든 그 자식을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전남친에게 연락해서 사정을 설명하면서 왠지 부주의하고 질척하게 매달리는 여자로 비칠 것 같아 괴로웠기 때문에, 그리고 그 전남친이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비정한 말을 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끔찍한 남자와 평생을 얽히든가 아니면 몸을 망쳐야 하는 최악의 상황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내 친구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비난받을 게 뻔한 일이라 아무한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임신테스트기를 사서 변기에 앉아 결과를 기다렸을 내 친구. 결과를 확인하려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한다. 그 시간 내 친구의 전남친은 뭘 하고 있었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왜 뒷감당은 공평하지 못한 지.


나도 내 친구와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생리일을 확인하면서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고, 예정된 생리일이 지났을 때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곧잘 미뤄지기도 했던 예전 일들을 떠올리며 침착하려고 애썼다. 나는 내 친구처럼 테스트기로 결과를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 그걸 해낼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만일 끔찍한 결과라면 최대한 나중에 알고 싶은 어리석은 마음이 본심이었다. 


가슴이 아프고 소화가 잘 안돼. 설마? 자꾸 피곤하고 예민해져. 설마 아니겠지. 끝없는 의심과 불안이 이어졌지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배가 아프다고 느껴질 때마다 기대와 걱정을 가지고 화장실에 갔지만, 언제나 무섭도록 깨끗한 팬티. 벌써 예정 생리일보다 이틀이 지나있었다. 일도 제대로 안 되고 상상 속에서 내 미래는 자꾸만 우울해져 갔다. 억지로 기분 전환을 하려고 엄마를 따라 백화점 푸드코트에 갔을 때, 내가 냉면이나 막국수가 먹고 싶다고 하자 엄마는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는 걸 찾냐며 나를 돌아봤다.

"몰라. 왜 오늘따라 매콤하고 새콤한 게 먹고 싶.."

하다가 엄마한텐 티도 못 내고 무너져내리는 나. 설마 아닐 거야.



며칠의 끔찍한 날을 보내고 어쨌든 생리를 하게 되었다. 나는 기뻤나? 한 1초쯤은 그랬다. 

그 후에는 허무함과 허탈함, 자책과 우울함이 몰려왔다. 생리 기간이라 예민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기분은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누군가 관자놀이에 총부리를 갖다 대서 극한의 공포에 빠졌다가 갑자기 그 권총에서 허무한 팡파레가 울리며 '장난이야!' 하는 플래카드가 터져 나온 기분. 나는 도대체 뭘 잘못한 걸까? 뭘 잘못했길래 이런 걸 반성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불안의 밤을 보내면서 나는 누군가를 향해 잘못했다고, 다신 안 그럴 테니까 봐달라고 빌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다시는 남자와 관계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꼭 콘돔을 사용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가 돼야 할까.

아니면 미리미리 피임약을 챙겨 먹는 똑똑한 여자가 돼야 하는 걸까.

이 뭣 같은 일을 겪고 나서 도대체 무슨 교훈을 얻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다. 




왜 상대에게 털어놓지 못했느냐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을 굉장히 단순하게 사는 사람이거나 남자일 거다. 한 번도 이런 불안에 빠져보지 못 한 사람. 세상엔 설명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끔찍한 일과 멍청이들은 모두 텔레비전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는 멍청이라서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미리 사두었던 생리대를 쓴다. 그리고 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당당하게 말도 못 하고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겠지. 내가 멍청인 건 알겠는데 뭐를 잘못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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