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초등교사가 쓰는 퇴사기입니다. 흔히 교사는 사직, 퇴직 또는 의원면직이라고 하지만, 그만둔 게 단지 교직만은 아니기에 여러 직장에서의 퇴사기를 이어나가려 합니다. 순서는 들쭉날쭉. 재미는 없어요.
임용시험에 합격한 공립학교 교사들은 보통 매달 1월과 15일에 발령이 난다. 시험 성적순으로 줄을 세운 다음 차례대로 발령을 낸다. 3월 1일이 그 시작이다.
보름마다 발령 인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합격생들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자기 등수가 조금 앞이다 싶으면 몇 주 안에 곧 발령이 날 거라 짐작하고 준비해야 한다. 요즘은 발령 대기가 다소 길어져서 그 해 3월 1일 자 발령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 내가 합격한 해에는 유난히 3월 발령이 많아서 500명쯤 됐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나 빨리 교사가 될 줄은 몰랐다. 교대를 다니면서도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제대로 알기 힘들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생이 되듯, (우리 때만 해도 티오가 꽤 넉넉하게 나왔으므로) 교대를 졸업하고 시험에만 붙으면 그냥 교사가 되는 거였다. 순식간에 담임이 되고 한 무리의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 교육청에서 발령일자를 알리는 연락을 받고 나서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제 나는 꼼짝없이 교사가 되었구나.
2월 마지막 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발령일은 3월 1일이었고, 한 주전에 교육청에서 신규교사 임명장 수여식이 있었다. 몸에 잘 맞지도 않는 양복에 몸을 밀어 넣고는 교육청에 갔다. 강당 좌석에 신규교사들이 앉았고 뒤 편에는 우리가 곧 가게 될 학교의 교감선생님 또는 부장선생님들이 서있었다. 임명장 수여식이 끝나고 바로 우리를 붙들고 데려갈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제 어디 도망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행정절차에 의해 인계되고 인수되어 생애 첫 직장으로 이끌려 갈 예정이었다.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사회생활이 처음인 데다가 유난히도 어렸다. 사회 초년생 치고도 신규 초등교사들은 무척 어린 편이다. 보통 2월에 졸업하고 빠르면 3월에 바로 교사가 되니, 대부분 24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멋모르고 시작하게 되어서 차라리 다행인 걸까? 그게 다행이라 해도 너무 어리다. 비교적 싹싹하고 눈치 빠르다는 소리를 귀에 피가 나도록 들은 편이었지만 초짜의 어리버리함은 어쩔 수 없었다. 저 뒤에 나를 데리러 온 교감선생님은 어떤 사람일까? 꼰대일까? 잠깐 그때도 꼰대라는 말을 썼던가? 아무렴 어때. 어쨌든 걱정이 되는 걸.
수여식이 끝나고 날 찾아온 교감선생님은 남자분이셨고 인상 좋으신 분이었다. 서로 정중하게 인사를 주고받고는 같이 학교로 들어가기 위해 교육청 정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내 손을 붙잡더니, "신규 선생님이 오셔서 너무 반가워서 손을 잡고 이 문을 나서야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글로 쓰니 무척 이상하고 변태적인 상황인데, 실제는 전혀 그러지 않았고, 나는 조금 부담스러웠을 뿐 교감 선생님이 나를 진짜로 환영해주는 기분이 들었다(나중에 안 사실인데, 학교에서 신규교사에게 보내는 격한 환영은 불길한 징조 중 하나다).
그렇게 나는 서울 모처에 있는 아주 한 초등학교에서 첫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만둘 생각은 없었던 바로 그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