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다른 삶을 꿈꾼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그린다.
비정규직일 때는 정규직을 꿈꿨다. 그러나 사실 그건 정규직을 꿈꿨다기보다, 구직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삶을 꿈 꾼 것이다. 아마 내가 진정 바랐던 건 수입이 아주 조금은 불안정해도 좋으니 내킬 때 일하고 내킬 때 쉬면서 적당히 먹고 사는 삶이었을 것이다. 정규직은 이와는 거리가 좀 멀다.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추동하며 돈과 성공을 쫓는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돈에 대한 욕심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적당히 먹고 살기만 하면 되었다.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나이가 들면서 적당히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돈이란 도무지 추산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아간다. 충분한 돈이 필요하다. 그래야 걱정이 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 돈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고 악착 같이 벌고 모으는 데까지 이르진 못했다. 그럴 능력도 없다. 돈 냄새를 맡고 돈의 흐름을 쫓아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이 내겐 전혀 없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 나는 불로소득을 원한다.
나의 생각이 불로소득이라는 금단의 열매에 이를 때마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구제목: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떠올린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오해하지 말자는 대목이다. 쾌락을 쫓는 방탕한 삶이 에피쿠로스의 철학이 말하는 바가 아니다. 오히려 고통이 부재한, 최소한의 쾌락으로 얻는 만족이 진정한 행복이다.
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주장하련다. 아주 최소한의 불로소득으로 최대의 만족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