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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Jan 18. 2022

최초의 영웅은 왜 이 모양인가

김산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최초의 영웅은 왜 이 모양인가.

    

그 유명한 영웅 오디세우스의 이야기 <오디세이아>보다 2000년은 더 전에 쓰인 <길가메쉬 서사시>는 말그대로 알려진 한 ‘최초의 영웅 서사시’다. ‘최초’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부른다. 간혹 최초는 ‘가장 순수한’ 또는 ‘원형’이라는 의미로 오용된다. 그러나 최초는 말 그대로 가장 앞선 것일 뿐이다. 최초의 영웅이라고 가장 영웅다울 필요도 없다. 길가메쉬가 직접 보여주는 것처럼.     


길가메쉬를 가리켜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인류 최초의 초야권을 행사한 자가 길가메쉬다(p.333). 영웅다운가? 무시무시한 산지기 후와와를 죽이러 떠나자고 친구 엔키두를 부추겨  정작 후와와 앞에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기 누이를 넘기려고 했던 자가 길가메쉬다(p.173). 영웅다운가? 우트나피쉬팀이 영생을 으려면 6 낮과 7일밤을 잠들지 말라고 충고하자마자 잠들어버린 자가 길가메쉬다(p.307). 보다 못한 우트나피쉬팀의 아내가 아쉬운대로 만지기만 해도 젊음을 가져다주는 식물을 선물했지만 결국 뱀에게 뺏겨버려 주저앉아 울기만 했던 자가 길가메쉬다(p.313). 도대체 누가 영웅인가?   

  

그러나 고대의 점토판은 노래한다. “길가메쉬, 쿨아바의 주님. 당신을 칭송하는 일은 즐겁습니다!” 도대체 ?     


길가메쉬는 결코 정의롭지 않다. 비겁하다. 모든 적을 단숨에 물리칠만강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 영웅다운 점이 있다면 죽음과의 처절한 전투에서 패했다는 것이다!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지켜보고 어떻게든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으려 세상의 끝까지 달려간 그였지만 결국 죽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초의 영웅담은 영웅에게 죽음을 허락했다. 죽지 않는 영웅을 만들기 위해 편리하게 영생의 마법을 쓰지도 않았고, 편리하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스톤 쓰지도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비겁해진 적은 있어도 세상의 이치를 외면하진 않았다.     


길가메쉬는 신들에게서 죽음을 배정 받은 필멸자이면서도 거기에 처절히 저항했다. 여기서 인생의 진실을 깨닫는다. 이제 누구나 알게 되었다. 태어난 자는 죽는 자임을. 어쩌면 인류 최초의 영웅 서사시는 결국 최초의 통과의례서였을지 모른다.      


“너는 이것이 너의 탯줄이 잘린 순간부터 품고 있던 일임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날이 이제 너를 기다린다. 인간의 가장 고독한 장소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 멈추지 않는 밀물의 파도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 피할 수 없는 전투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 그로 인한 작은 접전이 이제 너를 기다린다. 그러나 너는 분노로 얽힌 마음을 갖고 저승에 가서는 안된다(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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