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배움을 목적으로 참여하게 된 모임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모두 낯설어 인사만 주고받다가 시간이 지나자 같이 커피 마시자, 밥을 먹자 등의 사교 활동이 더해졌고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오며 가며 하는 대화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누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던 초반이었는데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
"아침에 애 학교 바래다주고 정신없었어요."
옆에서 손을 씻던 분이었다.
"... 그랬겠네요. "
"애는 몇 살이에요?"
"... 애 없어요."
"... "
짧은 대화는 정적만 남기고 끝났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남편 갖다 주면 좋아하겠네. 00님도 하나 사서 남편 갖다 주세요."
"... 아. 근데 그게 뭐예요?"
나는 대답은 하는 둥 마는 둥 화제를 돌렸다.
새로운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건 좋다. 하지만 뚝뚝 끊기는 대화가 불편하다.
모두의 일상이 같을 수는 없다.
결혼해서 남편과 아이가 있든, 결혼했지만 아이는 없든, 결혼하지 않았든, 모두의 일상은 다르고저마다 의미가 있는 일상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또래로 보이니 결혼을 했을 테고 아이가 있을 거라 생각해 별 뜻 없이 한 말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데려오고 남편과 통화하고 늘 있는 일상이니 무의식적으로자주 하는 말이 흘러나온 게다.
사실 내 입장에서 보면 안물(안 물었다)이고 TMI(too much information)다. 물론 많이 친해지고 관심사가 비슷하면 TMI도 재밌는 얘깃거리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필요한 말만 하면서 살아?"
우리 엄마의 말씀이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위해 쓸데없는 말도 하면서 살아간다.
미국의 문화 중에 '스몰 토크'라고 있다. 초면인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심각한 얘기를 꺼내기 전에 가볍게 나누는 잡담을 일컫는다. 스몰 토크도 요령이 필요한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가 기분 좋게 말할 수 있는 주제로 시작해야 한다. 즉 '상대가 기분 좋게 말할 수 있는 주제'를 질문으로 던지는 것이다.
다시 앞의 대화를 살펴보자!
"아침에 애 학교 바래다주고 정신없었어요."
사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몇 초간 침묵했다.
나름의 공감을 표현하려고 "그랬겠네요"라고 했는데내 말만 했나 싶었던지"애는 몇 살이에요?"라고물어서애가 없다고 했다.
나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게 돼서, 상대는 원했던 공감 반응이 아니라서 대화는 끊겼고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사실 개인적인 얘기를 한다는 건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일 수 있다. 안물안궁이라도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는데 듣고 나서 올 질문과 어색함이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필요한 말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친해지려고 TMI를 말하는 대신 너도 나도 편한 대화 주제로 상대에게 천천히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