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속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다'를 패러디해봤다.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도록 살아있는 동안 훌륭한 업적을 쌓아야 한다는 뜻의 속담이다.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는 게 중요할까.
과거 가문을 중시하던 시대에 선대 조상의 업적은 가문의 자랑이자 후손에게는 모범이 되었다. 가문의 누가 되지 않게 후손들도 조상을 본받아 입신양명하기 위해 노력했을 테다.
'입신양명(立身揚名)' 몸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도의 마침이다라는 효경에서 온 말이다. 지금도 입신양명은 중요하다. 자신의 자리를 찾고 출세해 부모의 자랑이 된다는 건 뿌듯한 일이다. 자아실현도 하고 효도도 하고. 그렇다고 후세까지 전해질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평범한 사람은 죽으면 이름조차 남지 않는다. 사망신고를 하는 동시에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름은 못 남겨도 기록은 남는다. 거창한 기록이 아니어서 모두가 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를 기억하는 이들은 내가 남긴 기록을 보며 나를 추억할 수 있다. 다수에게 의미가 없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해마다 쓴 다이어리를 모두 갖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가족과 주고받았던 편지, 심지어 한 때 연인이었던 사람과의 연애편지까지 버리지 않았다.
이사 갈 때마다 가져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내가 지나온 세월까지 통째로 버려지는 것 같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그 안에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역사가 담겨 있다.
요즘은 sns에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올리는 사람이 많다. 기록이 나를 알리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인데 얼마 전 네이버 블로그는 20주년 캠페인에서 '기록이 쌓이면 뭐든 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실제로 쌓은 기록을 통해 수익을 만드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 기록을 남기는 행위가 기회를 가져온 셈이다.
나에게 있어 sns에 남기는 기록은 '복기'의 의미도 있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올해 읽은 책을 세어보니 70권 정도 되는데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해 보라고 하면 대략적인 메시지만 기억나지 세부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록을 남기면서 책을 다시 읽게 되고 전에 지나쳤던 내용이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읽었으니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르는 쪽에 더 가까웠다.
타이틀도 명성도 없이 희미해져 가는 내 존재를 붙잡기 위해 오늘도 나는 부지런히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