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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y 29. 2024

어르신의 창의성

결국은 호기심이다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20여 년간 기계과 대학생을 상대로 창의성을 가르친 나도 동의한다. 다양한 경험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다. 그렇지만 호기심이 있고 비판적 사고를 하는 상황에서 경험이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경험을 해도 호기심이 많은 사람과 호기심이 없는 사람은 경험이 주는 통찰력과 만족감에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능동적이고 비판적 생각을 하는 사람과 수동적이고 의존적 생각을 하는 사람은 경험이 주는 효과에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창의성이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능력이다.


존재하지 않던 것을 생각해 내는 능력이지만, 아이폰처럼 이미 있던 카메라, MP3, 무선전화기를 결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도 창의성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통찰과 안목을 필요로 한다. 통찰과 안목이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많은 경험이 창의적인 통찰과 신선한 안목을 만들어 낸다.


어르신에게 창의성이 필요할까?


남들과는 다른(진부하지 않은) 창의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면, 남들보다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인생은 주어진 시간인데, 근사한 인생을 살기 위해 경험하기 위한 시간(인생)을 투자해야 한다. 어르신의 시간은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는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어르신이 창의성이 무슨 필요란 말인가? 경험을 언제 쌓아서 창의성을 키운단 말인가? 건강수명도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데 무슨 경험을 쌓는단 말인가?


어르신에게 필요한 것은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이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는 능력이라기보다는 당면한 문제의 창의적 해결능력이 필요하다.


어르신은 온갖 문제에 봉착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뛰지 못하게 되어 배드민턴이나 테니스를 접어야 하고, 더 이상 운전하는 것이 위험하여 운전을 접으면 우울증이 온다. 어느 날 걷지 못하게 되어 산책조차 못하게 될 수도 있고, 점점 나빠지는 눈 때문에 어느 순간 혼자 생활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노인우울증이 심해져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언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들어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용기와 동기는 호기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어르신에게 필요한 것은 창의성이라기보다는 호기심이 맞는 것 같다.


호기심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다섯 살 손주 도민이는 호기심 덩어리다.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많아도 너어무 많다!!


도민이는 오후 다섯 시부터 태권도를 배운다. 딸의 부탁으로 가끔 여섯 시 태권도장에 도민이 픽업을 간다. 태권도 수업(?)이 끝나고 한꺼번에 아이들이 출구로 쏟아져 나온다. 도복을 입은 채로 태권도장 가방을 메고, 신발장에서 자신의 신발을 찾아 신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집으로 간다. 아수라장이 된 태권도장 출입문에서 픽업 온 할아버지를 도민이는 멀리서 확인한 순간 미소 짓는다. 소위 살인미소다. 나는 소란스러운 이 장소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 그렇지만 도민이는 천천히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왜? 할아버지는 안다. 도민이 마음을. 누가 누구를 데리러 왔는지 둘러보는 것이다. 세아는 항상 할머니가 데리러 오는데 역시 오늘도 할머니가 왔고, 지수는 오늘은 아빠가 데리러 왔구나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 도민이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느긋하게 신발장에서 자신의 신발을 꺼낸다.


산만한 아이라고 간주될 수도 있지만 같은 시간에 태권도장을 다니는 모든 아이에게 관심이 있고, 누가 데리러 오는지 도민이는 궁금하다. 호기심이 많다는 것은 어른들이 생각하기에는 쓸데없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도민이 엄마 지민이가 생각난다. 산만하고 설쳐댄다고 잔소리 엄청 듣고 큰 내 딸의 어린 모습이 도민이에게서 보인다. 그러고 보면 호기심은 선천적이란 생각이 든다.


호기심이 있어야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생긴다.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봤거나 했을 때 만족감이 생긴다. 그 만족감이 성취감이고 일종의 행복감이다.


‘절망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망이다.’란 말은 먹고 싶고,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어르신의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 호기심을 갖고 있나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

당신은 존재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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