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un 26. 2024

키르기스스탄 5

비슈케크에서 카라콜

서두르지 않았다. 안 가도 그만이고 못가도 그만이다. 카라콜을 가야 알틴 아라샨을 갈 수 있지만 애인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니 어디에 있건 방랑은 마찬가지다.


비슈케크에서 카라콜을 얀덱스 택시로 갈 수 있나 앱으로 확인해 보니 가능하다. 무려 10,000 솜이다. 16만 원이 넘는다. 비슈케크 서부 버스터미널에서 미니버스를 타면 500 솜이다. 7시간 정도 소요되고 에어컨도 없다. 만석이 되어야 버스는 출발한다. 생각만 해도 좀 끔찍하다. Shared Taxi를 타면 좋을 것 같은데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 호스텔 리셉션니스트 타냐도 shared taxi를 추천한다.


겨울침낭을 포함해 엉성하게 싼 배낭무게가 15kg이고, 양압기와 맥북을 넣은 작은 가방도 5kg은 넘는다. 최악의 경우 배낭 두 개를 앞뒤로 메고 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젊을 때 얘기다. 큰 배낭을 메고 내리는 것도 힘에 부친다. 얀덱스 택시로 서부터미널에 도착하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인다. 내가 카라콜 간다는 것을 알고 있던 얀덱스 택시 기사가 카라콜이라고 소리치자 그렇게 관심 있던 많은 사람들이 카라콜 카라콜을 외치며 내게서 다 떨어져 나갔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나 12시간 이상 걸리는 오쉬로 가는 택시손님들이 환영받는 것 같다. 카라콜 가는 shared taxi는 찾을 수 없다.


할 수 없이 에어컨 없는 미니버스표를 샀다. 짐칸에 큰 배낭을 실으며 운전사가 100 솜을 요구한다. 예상했던 것이라 당황하지 않았다. 오래된 벤츠의 19인승 스프린터에 올랐다. 빈자리는 세 개뿐이다. 그나마 편할 것 같은 좌석에 앉았다. 맨 뒷줄 네 자리는 엄마와 어린이 셋이 차지하고 있고, 바로 앞줄 독립된 한자리는 무난하게 생긴 작은 백인 여인이 차지하고 있고, 붙어 있는 두 자리 중에 통로 쪽 자리를 잡았다. 좋은 점이라고는 시트 포지션이 좀 높아서 뒤에 있지만, 전방 시야가 있어 답답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머지 두 자리가 차는데 십여분이 걸렸다.


비슈케크를 벗어나는데 30분 이상 걸렸다. 어디나 늘어나는 자동차 때문에 길이 막힌다. 답답한 차 안은 점점 짜증이 늘어나는 중이다. 엔트로피가 빨리 증가하고 있다.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고속도로는 카자흐스탄과의 국경을 이루는 Chu river를 따라서 4차선이다. 교통량도 많지 않아 스프린터는 스프린터답게 아주 잘 달린다. 지붕의 환풍구로 바람도 시원하게 들어와 이 정도면 탈만하다고 안도했다. 두 시간 반을 달려 운전사의 점심을 겸한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 부근은 촌민 국립공원 근처라 경치가 좋다. 미국 서부의 사막지대 경치와 비슷하다.


통로 옆 자리의 백인 여인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왔다고 했다. 왜 혼자 여행하는지 궁금하지만 차마 물을 수는 없다. 휴게소에서 삼사로 점심을 때우며 우연히 경치를 함께 보는 상황이 됐다. 학생이냐고? 이번 가을에 대학교 입학한단다. 그러면 지금 19살이겠네. 대학에서는 무엇을 전공할 계획이냐고? 기계공학을 생각 중이란다. 나는 막 은퇴한 기계공학과 교수인데. Really? What's your name? Hanna. J.K. 서로 통성명을 하고 자연스럽게 악수를 했다. 우즈베키스탄을 2주 여행하고 키르기스스탄을 1주 여행하고 스위스로 돌아간단다. 혼자 여행이 처음은 아니란다. 작년에 남자친구와 베트남을 한 달 여행하고, 친구는 돌아가고 혼자 일본을 2주 여행했단다. 남자친구는 어디 갔냐고? 지금 군복무 중이란다. 6개월 복무하고 매년 4주씩 복무해야 한단다.


발릭치에서부터 이식쿨 호수가 보인다. 유명한 휴양지인 촐폰아타까지는 도로가 좋았다. 그다음 150여 km는 최악이다. 곳곳에 도로공사 중이라 상태도 엉망이고 먼지도 장난 아니고 기온도 점점 올라가는 중이다. 다행이라면 스위스 처녀와 말문을 트는 바람에 덜 심심하다는 것이다. 여행계획을 서로 확인하고 카라콜 숙소를 확인하니 마침 나와 같은 호스텔 Duet이다. 6시간 40분의 끔찍한 이동 끝에 카라콜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서로 짐을 봐주며 화장실부터 번갈아 해결했다. 참고로 키르기스스탄의 공중화장실은 어디나 이용요금이 10 솜이다. 항상 주머니에 동전을 갖고 있어야 편하다.


함께 택시 타고 Duet hostel에 함께 체크인했다. 65살의 큰 배낭 멘 한국 노인과 19살의 8kg 배낭 멘 스위스 처녀가 함께 다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호스텔 식당 겸 바 라운지에서 혼자 맥주 마시고 있는데 호스텔 주인과 한국 어르신이 내게 왔다. 어르신이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데 통역 좀 해달란다. 73살의 어르신은 내일 아침 알틴 아라샨에 타고 갈 차를 예약하려는데 서로 확인이 안 된단다. 결국 아침 여섯 시에 차가 준비되고 알틴 아라샨 도착 후에 기사한테 100달러나 9000 솜을 지불하는 것을 통역해 줬다. 웬만하면 나도 함께 가면 서로 돈도 절약하고 좋겠는데, 난 내일은 쉴 생각이고, 아침 여섯 시에 출발할 마음은 1도 없다.


구글번역기에 의존하여 혼자 여행하는 어르신을 보니 도와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키르기스스탄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