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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26. 2024

키르기스스탄 6

알틴 아라샨 트레킹 준비

카라콜에서 2박 하고 내일은 알틴 아라샨으로 올라갈 생각이다. 알틴 아라샨(해발 2600 m)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다. 해발고도가 3532m인 알라쿨 호수를 보기 위한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라서 유명한 것 아닌가 싶다. 많은 한국 유튜브 영상이 카라콜에서 카라콜 밸리, 알라쿨 호수, 알라쿨 패스를 거쳐 알틴 아라샨에서 온천하고 카라콜로 귀환한다. 역으로도 가능하다. 보통 1박 2일 내지 2박 3일 일정이다. 알라쿨 패스가 해발 3900미터라 알라쿨 호수와 알라쿨 패스를 고산병 때문에 포기하고, 카라콜에서 알틴 아라샨까지만 트레킹 하는 영상도 많다. 알틴 아라샨에서 눈으로 덮인 독특한 텐트 모양의 팔랏트카봉을 가깝게 볼 수 있다.


나는 알틴 아라샨에서 2박 하면서 중간의 온전한 하루 알라쿨 패스를 말 타고 가보던지 아니면 숙소 근처를 배회하다 카라콜로 귀환할 생각이다. 일반 택시를 포함한 대중교통이 갈 수 있는 악수라는 지명의 등산로 입구에서 알틴 아라샨까지는 편도 15 km이다. 경사가 심하진 않아 걸어서 대여섯 시간이 소요된다. 문제는 체력이고 메고 가는 배낭의 무게다. 나도 배낭이 없다면 하루에 15 km 정도는 아직 걸을 수 있다. 이 길을 아주 튼튼한 사륜구동 자동차는 다닐 수 있다.


알틴 아라샨 지역에는 산장 같은 숙소가 몇 개 있고, 키르기스스탄의 전통 텐트인 유르트가 제법 있다. 텐트를 들고 가는 백패커들도 많다. 숙소에서 인터넷과 전화는 안 터진단다. 다행히 전기는 있어 나는 양압기를 갖고 갈 생각이다. 건물 안에서 자면 좋지만 방이 없어 최악의 경우 유르트에서 잘 각오도 해야 한다. 그럴 경우를 위해 겨울침낭을 한국에서부터 가져왔다. 문제는 체력과 고산병이다. 그리고 날씨가 내게 얼마나 호의적일까? 고산의 날씨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알틴 아라샨이 얼마나 붐벼 마음에 드는 숙소를 구할 수 있느냐는 것도 걱정이다. 이미 시즌이 시작되어 전 세계로부터 온 많은 등반객이 알틴 아라샨에 묵는다. 한국 관광객도 많다.


오늘 새벽 여섯 시에 73살의 한국 어르신이 사륜구동차를 대절하여 호스텔을 떠나셨고, 오전 열한 시에는 60년생 준어르신 두 분이 중간 크기의 배낭을 메고 걸어 오르겠다고 알틴 아라샨으로 떠나셨다. 내일 아침 열 시에는 곧 66세가 되는 내가 사륜구동차량을 예약했다. 혼자 타던 둘이 타던 오르는 차량 한 대 값은 100불이다. 두 시간 이상 소요되고 차가 너무 흔들려 차라리 걷고 싶다는 유튜버 영상도 있었다. 그러나 양압기까지 들고 걸어서 오를 수는 없다.


오늘은 호스텔에서 개기는 중이다. 아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고산병 약도 오늘 아침부터 먹기 시작했다. 알틴 아라샨에서 자고 다음 날 말 타고 알라쿨 패스 바로 밑까지 가서 몸이 허락한다면 급경사를 올라 알라쿨 패스에서 알라쿨 호수를 내려다볼지도 모른다. 희망사항이다. 꼭 할 이유는 없다.


많은 등반가들이 정상을 오른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곳에 도달해야 끝장을 본 느낌이다. 어제 알틴 아라샨에서 귀환하여, 내가 묵고 있는 호스텔에서 하루 자고, 오늘 카라콜을 떠나는 젊은 커플을 떠나기 직전 만났다. 알틴 아라샨에서 알라쿨 패스 밑까지 말 타고 갔단다. 말 타는 것을 내게 강추했다. 젊은 남자가 알라쿨 패스를 찍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패스를 찍고, 또 찍고 가는 것이 젊은 사람들의 인생이 아닌가 느껴졌다.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애가 성인이 되면 결혼시키고(표현이 좀) 마지막 은퇴하는 순간이 모두 패스를 찍는 순간 아닌가 싶다. 더 이상 찍을 것이 없으면...


새벽에 떠난 어르신도 하루 자고 떠나고, 준어르신 두 명도 하루 자고 떠나고, 알틴 아라샨에서 돌아온 커플도 하루 자고 떠났다. 정말 바쁘게들 여행하신다. 원래 여행은 그런 것 아닌가?


나는 여행이 아니고 방랑 중이다. 그래서 최소한 2박을 하고, 좋으면 3박 아니라 5박도 한다. 사실 3박은 해야 침구와 화장실을 비롯한 환경에 익숙해진다. 애매모호한 첫날은 잠이 안 오고, 익숙해진 두 밤째는 여유를 느껴 즐기고, 세 밤째는 습관적이 되어 다시 방랑길을 떠날 마음이 생긴다.  


키르기스스탄 떠나기 전 서귀포에서 만난 아들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6년을 직장 생활하다가 3년을 쉬더니(놀더니) 최근에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회사일이 힘들어 아버지 제주공항 마중이나 배웅할 시간조차 못 내겠단다.


아버지: 이즈음 사는 것이 재미있니?

아들: 재미라니... 그냥 사는 거지.

아버지: 너의 꿈이 제주도에서 호구를 해결하며 낚시하고 물질(프리다이빙)하며 사는 거잖아. 지금 그렇게 사니 얼마나 재미있겠어!

아들: 회사일이 바빠서 낚시하고 다이빙할 시간이 없어.

아버지: 회사가 그렇게 일 많이 시키니 월급도 많이 주겠네.

아들: 그래야 하는데...

아버지: 마지못해 사는 것은 아니지?

아들: 응.

아버지: 한번 사는 인생인데 재미가 있어야지!

아들: 그냥 사는 거야! 인생에 무슨 의미나 재미가 있겠어.


인생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https://maps.app.goo.gl/TKFBnSzuZzAtBQez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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