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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28. 2024

키르기스스탄 7

Altyn Arashan


개인배낭여행(방랑)을 다니다 보면 애매모호한 중에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애매모호한 이유는 정보가 충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누구는 좋다 하고 누구는 나쁘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평가 자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생은 살아내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생은 살만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카라콜의 호스텔에서 알틴 아라샨을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악수라는 작은 마을의 등산로 입구까지 가서 15km를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가장 저렴하고 많은 트레커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4륜구동 자동차를 대절하여 가는 방법이 제일 비싸지만, 걸어서 대여섯 시간 걸리는 거리를 두 시간 만에 데려다준다. 걸어가다가 힘들면 택시 합승하듯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희박하다. 다니는 차가 많지도 않거니와 빈자리를 장담할 수 없다. 말등에 올라갈 수도 있는데 한 명의 마부가 따라붙어야 해서 혼자 간다면 상당히 비싸다. 걷는 것보다는 빠르겠지만 오랜 시간 말 타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가장 비싼 선택을 했다. 9000 솜에 차를 대절했다. (100불이 8650 솜)


양압기까지 들고 가려니 배낭의 무게가 15kg은 되는 것 같다. 15km를 가는 동안 600m 정도의 고도를 올리는 길이라 트레킹 코스 난이도로는 아주 쉬움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20대가 아닌 내 몸으로는 배낭 때문에 무리다. 가고 보니 100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2시간을 앞뒤좌우로 흔들리며 손잡이 꼭 잡고 두 다리에도 힘을 주어야 몸의 균형을 유지한다. 말등 위에서 균형 잡는 것은 저리 가라다.


러시아 것인지 소련 때의 것인지 모를 군용 지프차였다. 앞자리라서 시야가 있어 지겹지 않다. 만약 뒷자리에 끼여 간다면 멀미를 할 수도 있겠다. 내 인생 경험한 가장 심한 오프로드길이었다. 한국에 있는 내 GV80으로 운전할 수 있을까? 아마 안될 것 같다. 차만 아작 낼 것 같다. 미쯔비시파제로, 니산패스파인더, 기아스포티지 초기모델, 치타공이라 불리는 러시아산 봉고, 화물칸을 개조하여 버스처럼 만든 러시아 군용 트럭 등이 알틴아라샨 초원에 올라와 있다.


ELZA guesthouse 가 이 동네에서 제일 오래되고 크다. 한국 여행객에게도 유명하다. 예약 없이 일단 갔더니 개인실은 이미 만실이고 공용실의 침대밖에 없단다. 그러면서 바로 앞 Altyn Arashan Hotel(이름만 호텔이다)에 가보란다. 처음 보여준 방은 침대가 4개 있는데 혼자 사용하는데 5500 솜이고 두 번째 보여준 방은 한창 공사 중이라 어수선한 건물입구의 끝방인데 침대가 두 개 있고 어설픈 전등은 있지만 전기 콘센트도 없는데 2000 솜이란다. 아침식사 포함이고 온천시설 이용도 포함이다. 어렵게 들고 온 양압기를 사용 못하지만 하루 정도 안 써보는 것도 경험이다. 일단 싼 방에서 하루 자 보기로 했다. 당연히 공용 화장실과 세면대를 써야 한다.


한국 단체 7명을 만났다. 여자 5명, 남자 한 명, 그리고 인솔자다. 세계여행 밴드에서 만나 떠나온 것이란다. 원래 계획은 열명에 인솔자 한 명이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네 자매가 취소했단다. 10박 11일 일정이란다. 환갑을 막 넘긴 남자가 알라쿨패스를 내일 갈 수 있을까 걱정하며 날씨도 걱정한다. 내일 말 타고 패스 밑까지 가서 걸어 올라가 알라쿨 패스를 찍고 알라쿨 호수를 내려다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란다.


여행은 목적이 있고, 방랑은 목적이 없다.

여행은 일정이 정해져 있고, 방랑은 정해진 일정이 없다.

여행은 보통 동행이 있고, 방랑은 동행이 없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행은 사고가 나지 않는 한 일정의 변경이 없고. 방랑은 아예 지켜야 하는 일정이 없다.

여행은 아침마다 서둘러 출발하지만, 방랑은 그럴 이유가 없어 느긋한 오전을 즐긴다.


I made it!(내가 했다는 것이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어 문장이다.)


사람들은 해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힘들게 알라쿨 패스에 올랐다는 것도 해낸 것이고, 종로구청장기 배드민턴 대회 60대 D조에서 우승하는 것도 해낸 것이다.(내가 해냈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예로 든 것이다.) 무엇인가를 해냈을 때 성취감을 느끼고 자부심을 갖는다. 이 역시 행복감처럼 순전히 호르몬의 작용이다. 행복감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듯이 성취감 역시 호르몬의 농도가 떨어지면 금세 없어진다.


좋다고 인정받는 대학에 합격하거나 소위 고시를 패스하거나 이즈음 의대에 합격하면 상당히 오래 지속되는 성취감을 느낀다. 이런 성취는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다. 좋은 직업을 갖거나 의사가 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ABC(Annapurna Base Camp)를 오르거나, 알라쿨 패스를 찍거나, 킬리만자로를 올랐다고 인생이 변하진 않는다. 그럼 왜 사람들은 그렇게 열심히 정상을 오르는 것일까? 순전히 인간의 인정욕구 때문이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것을 해냈다고 자타가 인정한다. 그리고 인정과 함께 생기는 자부심 때문이다.


남자들이 벤츠나 포르셰에 갖는 관심이나 여자들이 명품백에 대한 동경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을 갖는 사치가 인정욕구와 자부심을 채워준다.

알틴 아라샨 호텔
ELZA guest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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