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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28. 2024

키르기스스탄 8

Peak Palatka

키르기스스탄을 여행한다면 제일 먼저 추천되는 곳이 알틴 아라샨이다. 왜 그렇게 유명한지 알았다. 알틴 아라샨에 와보니...


이렇게 깊은 산속 해발고도 2600m에 넓은 초원지대가 있다. 강(큰 개천)을 따라서 길이 1.6km 정도고 가장 넓은 곳의 폭은 500m 정도 된다. 게스트하우스는 다섯 곳 정도 운영 중이고 유르트 캠프도 많다. 개인 사륜구동 차량으로 올라올 수 있어 오토캠핑을 즐기는 가족들도 제법 보인다. 그렇지만 가장 유명한 이유는 고도 3500m의 알라쿨 호수와 3900m의 알라쿨 패스를 가고 오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이 정도의 고도는 전문 트레커가 아닌 일반인도 도전해 볼 만한 하다. 그래서 많은 단체나 그룹이 어느 정도의 복장을 갖추고 시도할 만하다.


난 알라쿨 패스를 포기했다. 그제부터 먹기 시작한 고산병 약의 부작용으로 어제는 설사를 했다. 설사 이후 먹지 않았다. 고산병 약의 부작용 중에 간에 부담을 준다는 것도 있다. 지난달 정기검진에서 초음파 상으로 간 표면이 단단해 보여 간경화증 초기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초음파 상으로 표면이 단단해 보인다는 것은 영상의학과 선생님의 보수적 소견이고, 피검사상은 간 기능이 정상이니 일 년 뒤에나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내 담당의사가 권했다. 나도 굳이 지금 정밀검사 해보자고 안 했다.


알틴 아라샨이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알틴 아라샨에서 보이는 독특한 형상의 설산 때문이다. 설산은 한국의 기와집 지붕을 연상시킨다. 설산의 이름은 Peak Palatka(4650 m)다. Palatka는 러시아어로 텐트다. 한국 사람은 기와집 지붕을 연상하지만 키르기스 인들은 텐트를 연상했다. 그래서 이름이 Peak Palatka가 되었지만 영어로 번역 하면 Peak Tent가 된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 식당 베란다에서 팔랏트카봉이 아주 선명하게 잘 보인다. 얼마나 오랜 시간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구름에 일부가 가리기도 하고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아침 태양빛을 받아 밝게 빛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여기서 며칠 자냐고?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그러나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루 자보고 내일 하루 더 잘지, 내일 아침 컨디션 보고 알라쿨 패스를 걸어갈지 말 타고 갈지 모른다. 난 여행이 아니고 방랑 중이다.


엉성한 공용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없는 것이 불편하고, 콘센트가 없어 양압기 사용을 못한 것이 아쉽지만 숙소가 갖고 있는 천연온천이 좋았다. 용출되는 물의 온도가 52도라 했는데 탕의 물의 온도는 43도다. 워낙 사우나를 많이 해서 몸으로 물의 온도를 느낀다. 인터넷이 안되니 할 일이 없어 저녁 9:30에 잠자리에 들었다. 가져온 겨울 침낭 속에서 잤는데 더워서 두세 번 깼다. 공사 중이었지만 난방은 작동하고 있었다. 5:12가 일출인데 4:30에 깼다. 반 달이 떠 있었다. 달빛이 훤하게 사방을 비추고 있다. Peak Palatka 주변에 구름 한 점 없다. 떠오르는 태양 빛에 빛나고 있다. 태양의 각도에 따라 설산의 색깔이 변한다. 한참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결정했다. 아침 먹고 짐 싸서 하산하자. 이 정도 Peak Palatka를 봤으면 충분하다.


어제저녁식사와 아침식사는 미국 뉴햄프셔에서 온 여인과 겸상했다. 그녀도 혼자고 나도 혼자라 겸상하는 것이 호텔 주인을 도와주는 것이라 서로 생각했다. Angela는 Vegetarian이고 중학교 과학선생님이다. 오늘이 미국 집을 세주고 여행을 떠난 지 딱 일 년 되었단다. 두바이를 거쳐 탄자니아로 간단다. 킬리만자로를 오를 생각이란다. 8월 말에 뉴햄프셔로 돌아간단다. 내 영어 실력을 보면 좀 천천히 말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인데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혼자 산다는데 나이는 묻지 않았다. 그런 개인적 질문이 서양인들에게는 실례라 생각해서. 당연히 내 나이도 묻지 않았고 내가 뭐 먹고 사는지도 묻지 않는다. 여행 얘기 하다가 그녀가 자신이 Sabbatical year라는 것을 얘기했다. 난 미국 중학교 교사가 Sabbaticla year가 있는 줄 모르고 대학교수냐고 물었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의 직업을 말했다.


Angela도 오늘 카라콜로 가는 것을 알았지만 동행하자고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당연히 걸어내려 갈 것이고 나도 혹시 걸어내려 가도 그녀의 페이스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배낭 안에 양압기가 들어있는 작은 백팩을 넣어 하나의 큰 배낭으로 만들었다. 걸어 내려갈 마음이다. 오르는 것은 힘들지만 내리막길은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숙박비를 지불하고 주인한테 물었다. 혹시 말 타고 내려가면 얼마냐고? 5000 솜이란다. 내 배낭을 가리키며 이 배낭도 (말과 함께 하기) 괜찮겠냐고 물었다. 내 배낭을 들어보더니 그렇게 무겁지는 않다고 하더니 나더러 몇 살이냐고 묻는다. 65라고 했더니 이 배낭 지고 걸어 내려가기는 좀 무리지 하는 표정이다. 배낭 무게는 보통이지만 내 나이가 많다는 것으로 난 이해했다.


씩씩하게 숙소를 나섰다. 드디어 15km 하산길 트레킹이다. 200 m 쯤 걸었는데 택시표시를 한 차가 한 대 서있다. 약간의 갈등 이후 얼마냐고 물었다. 7000 솜 이란다. 내가 비싸다는 표정을 짓자 몇 명이냐고 묻는다. 혼자라고 하자 기사도 망설인다. 내가 손바닥을 피며 "Five thousand" 했다. 약간 망설이더니 오케이 한다. (3/4쯤 내려 갔을 때 싱가포르 젊은 커플을 1000 솜 받고 태웠다) 차가 현대정공이 만든 갤로퍼다. 25년 된 차고, 차고를 약간 높였단다. 그렇게 트레킹의 기회를 날렸다.


골프 유머 중에 70대가 되면 그린 경사를 귀신같이 읽는다는 얘기가 있다. 그린에서 걸어보면 오르막은 숨이 차고, 내리막은 무릎이 아파서...


내 무릎을 아낀다고 생각했다. 굳이 차가 있는데 무리해서 걸어봤자 재생 안 되는 무릎연골만 상해서 내 건강수명만 줄어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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