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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29. 2024

키르기스스탄 9

일본 골프투어를 함께 간 선배와 대화에서였다.

"윤교수는 여행 많이 다녔잖아! 어디가 제일 좋았어?"


글쎄 어디가 제일 좋았나?

좋은 곳은 세 번 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니 어디를 세 번 가봤나 생각해 보았다. 밴프, 옐로우스톤, 모뉴먼트 밸리, 그랜드 캐년, 나이아가라폭포 그리고 보니 전부 미국과 캐나다다. 자동차여행하기 전부 좋은 곳이다. 난 자동차여행이 좋다. 여행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짐을 싸고 푸는 지겨운 동작도 상당히 간편해진다. 자동차에 대충 때려 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자동차여행을 하기 좋은 인프라와 좋은 도로를 미국과 캐나다가 갖고 있다. 결국 미국과 캐나다 자동차여행이 제일 좋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행이 좋고 나쁘고는 누구와 동행하느냐도 결정적이다.

여행은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즐거움이 천양지차다. 불편한 동행보다는 차라리 혼자 다니는 것이 낫다. 누구와 동행하는 것이 좋았나 생각해 보니 아이들과 함께한 여행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어디를 가느냐가 별로 상관없다. 어릴 때는 아무 곳이나 다 좋다. 신기한 것 천지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새롭다. 그래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즐겁다. 자식들에게 좋은 경험을 내가 제공하고 있다는 것에 아버지로서 뿌듯하다. 그 아이들은 다 컸고 손주들이랑 떠나고 싶은데 손주들은 아직 엄마아빠와 떨어져 할아버지랑 갈 마음은 없다.


항상 새로운 여행지를 찾는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가봤으니 키르기스스탄에 온 것이다. 다음은 어쩌면 타지키스탄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르신 나이 되면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경치도 비슷하다. 이곳 키르기스스탄 텐샨의 경치도 5년 전 갔던 조지아 코카서스와 아주 흡사하다. 나무가 없는 초원의 경치와 여름에도 눈을 덮어쓰고 있는 설산이나 계곡을 세차게 흐르는 빙하 녹은 물이나 아주 유사하다. 경치사진만으로는 텐샨의 어디인지, 코카서스의 어디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산에서 말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유사하다. 사는 사람의 얼굴만 다를 뿐이다.


알틴 아라샨에서 만난 미국 뉴햄프셔에서 온 Angela에게 물었다. 여기 경치랑 미국 서부 록키산맥 경치나 비슷하고 여행하기는 미국이 훨씬 좋은데 여기 왜 왔냐고? 비슈케크에서 카라콜로 오는 미니버스에서 만난 스위스 처녀 한나에게도 물었다. 스위스의 알프스나 여기 텐샨이나 거의 비슷한데 왜 왔냐고?


새로움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상을 벗어나야 새로운 환경에 들어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방랑 중이다. 일상은 익숙하고 충분히 편안한데도...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싶은 것이 본능 아닐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는 분명 스트레스가 있다. 그렇지만 새로움이 그것을 충분히 보상한다. 새로움은 재미의 3요소 중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그렇게 보면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은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제일 좋았다면 다시 가고 싶은 갈망이 커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았던 곳을 다시 가기보다는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난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다. 미래의 재미를 충족할지 모르는 호기심이 지난 과거의 좋은 추억과 기억을 압도하는 것이다. 어디가 여행하기 제일 편했냐고?(미국) 어디가 다시 가고 싶은 곳이냐고?(파타고니아) 어디 음식이 한국인 입맛에 제일 맞냐고?(태국)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중에 다음은 어디를 준비하고 있냐고?




알틴 아라샨에서 25년 된 갤로퍼 택시를 타고 내려오다가 싱가포르 젊은 커플을 태웠다.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두 대의 마운틴 오토바이를 보고 나도 놀랐는데, 싱가포르 여자가 호들갑을 떨며 잠깐 세워달라고 한다. 서로 잘 아는 사이란다. 앞선 오토바이 운전자가 헬맷을 벗는데 인도남자의 얼굴처럼 느껴졌다. 뒤따르던 오토바이 운전자도 헬맷을 벗는데 야리한 젊은 여자였다. 이 험한 길을 싱가포르 커플이 가이드도 없이 마운틴 바이크로 오르는 중이다. 사륜구동 자동차가 오를 수 있는 길이니 마운틴 오토바이도 당연히 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난다면 큰 사고일 테고 그 후유증이 평생 갈 수도 있다.


1998년 여름 온 가족이 인도의 타그랑라 패스(고도 5300m)를 버스로 넘는데 버스를 추월하는 오토바이를 본 적 있다. 부러움보다는 경이감을 느꼈다. 9년 전 라오스를 친구와 버스 타고 열악한 비포장도로를 미니버스로 이동하고 있는데, 두 대의 마운틴 오토바이가 우리를 추월했다. 빨간 무늬가 있는 하얀 오토바이였다. 5년 전 조지아의 우쉬굴리에서 두 대의 오토바이를 보았다. 중년의 독일 남자와 조지아 가이드였다. 독일에서 이 여행을 계획하고 예약했단다. 


오토바이에 대한 로망이 있다. 말과 달리 오토바이는 결코 딴마음을 품지 않는다. 운전자의 의지와 조종에 의해 작동된다. 고장이나 사고 모두 오롯이 운전자의 책임이다. 결코 누구를 탓할 수 없다.


59세 육순 기념으로 오토바이 면허를 학원에서 취득했으니 벌써 7년 전이다.( https://brunch.co.kr/@jkyoon/170 ) 독일 남자처럼 가이드와 오토바이를 렌트하여 달려보고 싶다. 문제는 돈이 아니고 마음이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하고 싶다는 의지 말이다. 점점 내 안에서 갈망이 싹트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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