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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02. 2024

키르기스스탄 11

Uluk guesthouse in Kochkor

내가 하고 있는 단독배낭여행은 여행이 아니고 방랑이다.

왕복 비행기표를 사는 순간 방랑의 시작과 끝은 정해진다. 방랑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간다.


방랑 중인데 만나는 여행객들마다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오늘 잘 곳은 정해져 있지만 내일은 어디서 잘지 나도 모른다. 떠나기 전 날 저녁에 내일 이동을 어디로 할 것인지, 어디서 잘 지를 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로 대답할 문장을 만들었다.


"I am not travelling but wandering without destination. So I do not know where I wll sleep tomorrow." 문법이 맞는지 모르겠다. 방랑을 영어로 번역하면 'wandering without destination'이다.


카라콜에서 5박(알틴 아라샨 1박 포함)하고 코치코르로 이동했다.


코치코르는 고도 3000m에 있는 제법 큰 송쿨 호수로 가는 베이스캠프다. 보통은 코치코르에서 출발하여 송쿨호수에 있는 유르트에서 1박 하고 나온다. 날씨 좋으면 은하수도 보고 말도 탄다. 코치코르에서 송쿨호수까지는 100km 정도라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가는 길의 경치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3450m의 고개를 넘는다. 유르트에서 잘 마음은 없고(춥고 화장실이 불편해서) 코치코르에서 2박 하면서 온전한 하루 당일로 송쿨호수를 갔다 오기로 마음먹었다.


코치코르는 나린주에 속해 있으며 나린주가 키르기스스탄의 여러 주중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주라고 한다. 카라콜에서 코치코르와 나린으로 가는 미니버스 마슈르카는 하루에 딱 한 대뿐이다. 아침 8:50 출발이라는데 카라콜 호스텔에서 너무 일찍 나섰다. 버스터미널에 8:10분에 도착하여 코치코르 가는 미니버스표를 사려는데 발릭치를 경유해야 하니 발릭치 가는 버스기사가 자기차 타고 가란다. 그래서 낚였다. 8:50에 코치코르를 거쳐 나린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8:20분에 발릭치 가는 미니버스를 탔다. 카라콜에서 발릭치는 길쭉하게 생긴 이식쿨 호수의 끝과 끝이다. 그리고 발릭치는 교통의 요지다.


발릭치까지 4시간이 소요됐다. 중간중간에 사람을 태우고 내리느라 20분은 더 걸린 것 같다. Toilet stop도 없었다. 아직 내 방광이나 전립선이 괜찮은 것 같다. 4시간을 버텼으니... 요금은 300 솜, 점심값도 안된다. 낡은 미니버스, 싼 기름값(리터당 1000원이 안된다.), 낮은 인건비의 조합이려니 한다. 얀덱스 택시비도 시내에서 이동하는 것은 100 솜 정도다.


발릭치 버스터미널에서 라그만을 먹었다. 라그만은 고기와 야채를 넣은 육수에 국수를 말아주는 것이 보통인데 소위 면발이 맘에 든다. 굵은 칼국수 면발 같기도 하고, 수타 짜장면 면발 같기도 하다. 라그만에 들어간 고기가 말고기일 수도 있고, 양이나 염소 고기일 수도 있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발릭치에서 코치코르나 나린으로 가는 미니버스가 당연히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 비슈케크와 카라콜 가는 버스 밖에 없다. 코치코르의 인구가 11,000명, 나린의 인구가 42,000명 밖에 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할 수없이 7인승 합승택시를 탔다. 발릭치에서 코치코르는 60km인데 길은 좋고 차는 없어 40분 만에 도착했다. 경치가 근사하다. 고도 2,000m에 차도 없는데 2차선 도로를 잘 닦아놓았다. 얼마나 오래된 차량인지 모를 폭스바겐이 시속 100km로 신나게 달린다. 차륜정렬(Wheel Alignment)은 잘되어 있네!


2박을 예약한 Uluk guesthouse로 어마무시한 배낭을 앞뒤로 메고 합승택시에서 내려 500m를 걸었다. 얀덱스 택시를 타기는 애매한 거리다. 이런 거리를 걷기 위해 캐리어를 끌지 않고 어마무시한 배낭을 메지 않았던가? 15kg의 큰 배낭과 5kg의 작은 백팩이 힘에 부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확인해 가며 찾아가는 마음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확실히 있겠지? 설마 너무 일찍이라고 체크인을 안 받아주지는 않겠지? 카드로 결제는 안 되겠지? 키르기스스탄 돈 말고 달러도 받을까? 내가 예약한 전용화장실은 확실하겠지? 걱정, 불안, 우려 속에 오늘 눕기로 예정된 곳을 찾아간다.


말이 게스트하우스지 그냥 2층 단독주택이다. 간판이나 표지판도 없다. 구글맵에서 이 게스트하우스를 찍으면 아직 사진조차 없다. 다른 게스트하우스는 다 있는데, 그래서 내가 이 집의 리뷰를 통해서 대문사진을 찍어 올려줬다. 부킹닷컴으로 예약을 할 때 방에 전용욕실이 있다고 해서 2박이나 예약했는데 와서 보니 전용욕실은 커녕 내 방은 2층인데 화장실과 샤워실이 한 공간에 있는 데다 1층에 하나밖에 없다. 구글맵에 대문사진도 없고, 부킹닷컴에 나와 있기로 방 3개밖에 없고 내가 체크인한 오후 2시에는 주인가족 외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샤워하고 설산을 보며 맥주 한잔 하고 있는데 미니버스 한 대가 들이닥쳤다. 10명의 폴란드 단체 트레킹 팀이 왔다. 걱정된다. 주인 가족까지 14명이 하나의 화장실을 같이 사용해야 한다. 가능할까?


전망이 좋다. 남쪽으로는 설산이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버려진 땅 아니 험악한 산들이 늘어서 있다. 미국의 Badland National Park가 연상되었다. 어떻게 이름을 Badland라고 지었을까? 주인부부와 11살 아들 바크트가 아주 친절하다. 바크트가 그나마 영어를 좀 알아듣고 구글번역기도 사용할 줄 안다. 온 가족이 너무 친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심지어 좀 불편할 정도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이 친절하다. 좀 무뚝뚝한 듯 하지만 내가 먼저 하이하고 인사하면 금세 부드러워진다. 터미널에서 어디 가냐고 달려드는 사람은 있지만 상점이나 음식점이나 버스나 얀덱스 택시 기사들이 정말 다 친절하다. 바가지 쓸 가능성이 없다.


키르기스스탄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설산을 보며 사는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 만나러…

게스트하우스 찾아가는 길
Bad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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