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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02. 2024

키르기스스탄 12

송쿨 호수

키르기스스탄에서 알틴 아라샨 다음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송쿨 호수다. 고도 3000m에 제법 큰 호수가 있다. 일대가 큰 초원이고 이 시기에는 끝없는 야생화 꽃밭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호숫가 유르트에서 1박 하고 한두 시간 말 타고 나오는 패턴으로 관광이 이루어지는데, 엄청 추웠다는 경험담이 많고 1박 하는 내내 비가 와서 별도 못 보고 망했다는 후기도 있다. 고산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어 복불복(福不福)이다. 여러 번 가다 보면 좋은 날 만나겠지만 그렇게 여러 번 갈 만큼 가기 쉬운 곳은 아니다.


코치코르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자동차가 두 대가 있다. 15년 된 러시아 SUV 라다(4X4)와 25년은 되었을 것 같은 폭스바겐 파사트가 있다. 주인 아들 바크트를 통역으로 주인아저씨에게 얘기했다. 내일 혼자 송쿨 호수를 당일로 갔다 오고 싶다. 가는데 2시간 호수에서 두 시간 오는데 두 시간 해서 총 6시간을 함께할 자동차와 운전할 기사가 필요하다고. 잠시 생각하더니 주인아저씨가 자기가 하겠단다. 파사트 똥차로... 6,000 솜


아침 8:15에 출발했다. 주도인 나린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45 km를 타다가 비포장도로로 들어서서 50 km를 달리면 호수에 도착한다. 고속도로 경치가 그만이다. 미국 유타, 애리조나, 네바다의 삭막한 풍경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마음을 굳혔다. 내일 코치코르에서 나린으로 가자고. 비포장도로는 제법 관리되어 승용차가 갈 만하다. 그러나 호숫가는 비가 내려 진흙탕길을 여러 번 마주쳤다. 벤츠의 미니버스 스프린터를 빗속에서 관광객들이 밀어내고 있다. 함께 간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는 코치코르 은행에서 운전사로도 일하고 있다고 했다. 단 한 번도 진흙탕에 빠지지 않았고, 비포장도로에서도 차 바닥이 긁히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송쿨 호숫가 어느 유르트 캠프에서 두 여인이 분주하게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 작업일까 싶다. 비 내리고 바람 불고 추운 상황 속에서 유르트를 들락거리며 야채 씻고, 고기 다지고, 쌀 씻고, 유르트 난로에 큰 웍을 올려 고기와 야채를 볶기 시작한다. 빵과 쨈, 꿀, 버터를 비롯해 과일을 설탕물에 담근 소스(?) 두 가지, 과자와 초콜릿 같은 간식거리 등이 먼저 기본으로 차려진다. 식탁을 보기 좋게 하기 위한 것들이다. 사탕이나 초콜릿, 잼 등은 색이 강하여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드디어 토마토와 양파 샐러드 접시가 나오고 메인인 고기와 야채 스튜가 밥 한 공기와 함께 나왔다.


유르트 캠프매니저(?) 같은(처음 영어로 소통했고, 우리의 점심준비를 총괄하고 있다.) 젊은 여인이 내 바로 앞에 앉아 차를 준비한다. 유리주전자에 우선 차를 우리고 밥공기에 우린 차와 뜨거운 물을 섞어 차례로 한 사람씩 준다. 내가 손님이라 나부터 건네준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내 옆에 앉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 그리고 마지막에 이 유르트 캠프 주인. 차에다가 과일 소스(앵두를 설탕물에 담가둔 것)를 스푼으로 몇 숟갈 넣어서 마신다. 나도 보고 따라 했다.


차를 다 만들어 나눠줬는데도 젊은 여인이 자리를 뜨지 않는다. 여인의 뒤로는 유르트의 유일한 출입문으로 송쿨호수가 보인다. 여인의 눈이 역광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갸름한 얼굴과 오똑한 콧날이 그녀에게서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녀의 뒤로 보이는 호수를 보며 밥을 먹는데 여인이 계속 내 앞에 앉아 있으니 눈을 어디로 둬야 할지 난감하다. 30대 초반으로 짐작되는데 이 유르트 캠프 안에서 영어가 되는 유일한 사람이다. 고산병 증상으로 속도 안 좋은데 젊은 여인이 바로 앞에서 나만 보고 있으니 어쩔 줄 모르겠다. 어색하기가 맞선이나 소개팅 자리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까맣게 그을린 두 손이 보인다. 약지에 낀 반지도 보인다.


남편 가족이 운영하는 유르트 캠프란다. 어제는 숙박손님 없었고, 그제는 열명 있었단다. 3일째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단다. 2시간 오다가 30분 개고, 2시간 오다가 30분 개고를 계속 반복하고 있단다. 그녀가 무슨 연유로 내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지 드디어 알았다. 차 시중을 들기 위함이다. 함께 식사하는 두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 계속 차를 마신다. 차공기가 비면 여인이 다시 우린 차와 더운물을 섞어 새로 만들기를 무한 반복한다. 속이 별로였지만 여인이 지켜보고 있어 나도 차공기와 접시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


점심이 끝나가는데 밖의 날씨는 아직 별로다. 난 계속 horse riding를 할지 말지를 고민 중이다. 이렇게 추울 줄 몰랐다. 체감온도가 영상 5도 수준이다. 내복바지를 입었어야 하는데, 방풍방수재킷을 입고 왔어야 하는데, 겨울 모자도 있으면 좋겠다. 점점 안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혀가고 있다. 두 사람의 점심값을 계산하려고 여인에게 물으니 시어머니를 찾는다. 아직 시어머니가 곳간 열쇠를 넘기지 않았구나 했다. 300X2 솜.


송쿨 호숫가에는 많은 유르트 캠프가 있다. 제법 알려진 여행사 깃발을 나부끼고 있는 캠프도 보인다. 캠프 뒤쪽으로 제법 떨어져 화장실이 보인다. 이 비 오고 추운 날씨 속에 이 화장실에서 화장을 할 수 있을까? 일종의 극한 체험 아닐까 싶다.


유르트에서 가장 환영받는 손님은 숙박하면서 세끼 먹고 horse riding을 하는 여행객이다. 유르트는 여름 한 철 장사다. 겨울에는 도로가 눈 때문에 폐쇄된다. 봄가을에도 너무 추워 아무도 찾지 않는다.


까맣게 그을린 손을 가진 며느리가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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