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ul 04. 2024

키르기스스탄 13

나린 가는 길

방랑 스타일이 정착하고 있다. 숙소는 최소한 2박을 예약한다. 하루만 자고 떠나기는 배낭을 풀고 싸는 것이 끔찍하다. 그렇지만 비슈케크 같은 큰 도시가 아니라면 두 밤 자고 나면 모든 것이 익숙해진다. 더 이상 애매모호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러면 다시 방랑길을 떠날 마음이 생긴다. 애매모호한 상황을 나는 즐기는 것일까?


2박 하면서 코치코르에 익숙해졌다. 100km 떨어진 송쿨 호수를 당일로 갔다 왔고, 코치코르에 하나 있는 공중목욕탕 바냐도 찾아갔다. 러시아 스타일 바냐와 이슬람 스타일 하맘의 퓨전 같다. 러시아 스타일의 바냐는 다 벗지만, 이슬람 스타일은 탈의실에서 조차 절대 성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떤 이는 다 벗고 덜렁거리고, 어떤 이는 큰 천으로 아랫도리를 항상 두르고 있다. 오랫동안 러시아의 식민지였지만 종교는 이슬람이라 이런 상황이 되지 않았나 싶다. 습식 사우나가 있지만 열탕은 없다. 작은 냉탕이 있고, 열탕이 있어야 할 가운데 하맘처럼 큰 평상이 있다. 250 솜에 사우나의 열기를 즐겼다.


이제 떠나야 한다. 발릭치에서 코치코르를 오면서 본 경치에 반해 다음 행선지로 나린을 정했다. 이제 나린으로 이동해야 한다. 코치코르에서 나린으로 가는 마슈루카(미니 버스)는 없다. 아니 한 대 있다. 카라콜에서 아침 8:50에 출발하여 코치코르를 거쳐 나린으로 가는 마슈루카가 있지만, 코치코르에 언제 도착하는지 어디서 정차했다 떠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물어볼 수도 없다. 버스터미널이 아예 없으니...


Uluk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가 합승택시를 태워줬다. 합승택시의 제일 좋은 자리 조수석을 확보했다. 아직 정원을 채우지 못해 택시 기사는 "나른 나른" 하고 계속 소리치며 승객을 찾는다. Naryn을 여기 사람들은 나른이라고 발음한다.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정원을 채워 드디어 출발한다.


7인승 합승택시는 도요타다. 운전석이 오른쪽인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 중고로 수입되었을 것이다. 우측통행하는 도로에서 왼쪽 앞자리는 원래 운전석이다. 운전도 하지 않으면서 운전석에 앉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나린을 가려고 마음먹은 것도 순전히 경치가 좋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통행량이 거의 없는 2차선 도로를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렸다. 자율주행차량에 앉아 떨고 있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비가 와서 젖은 도로를 아랑곳하지 않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달린다. 창문을 조금 열고 달려 풍절음 때문에 더 속도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정말 겁나게 달린다. 사고라도 나면 완벽한 객사다. 아니 횡사인가? ( https://brunch.co.kr/@jkyoon/551 )

해발 3030m의 고개를 넘는다. 코치코르는 1900m 정도고 나린은 2000m 정도다. 이 구간의 경치는 정말  'breathtaking( extremely exciting, beautiful, or surprising )' 하다고 밖에는 표현 못하겠다. 내 예상했던 그대로 숨 막히는 경치다. 사진을 찍지 못했다. 쉬지 않고 1시간 반을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데 사진을 찍을 틈이 없었다. 눈과 마음에 담아 두었다. 며칠 뒤에 비슈케크로 돌아갈 때 이 길을 다시 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뿌듯하다.  


드디어 나린에 도착했다. 나린은 나린강을 따라 길게 조성된 작은 도시(나린주의 주도라는데)다. 남쪽과 북쪽은 높은 산들이 병풍 치듯 에워싸고 있다. 특히 남쪽 암벽산은 뜬금없이 서유기에 나오는 화염산이 연상된다. 손오공이 날아다닐 것 같은 풍경이다. 그렇지만 나린의 도시 색깔은 아주 칙칙한 회색이다. 변변한 건물조차 없고, 러시아 시골의 버려진 도시 같다. 합승택시의 종점은 시장 근처였다. 그럴듯한 음식점도 보이지 않는다. 우울해진다. 2박을 예약했는데 이렇게 버려지고 황폐한 도시에서 무엇을 할까?


트레킹 하는 마음으로 숙소까지 1.2km를 앞뒤로 배낭 메고 걸었다. 나린 강을 따라 길게 형성된 도시라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주택가 골목 안에 간판도 없는 숙소 Pamko를 구글맵으로 찾았다. 숙소가 맘에 든다. 침실, 욕실, 간이부엌, 식탁이 다 있는 스튜디오 형태다. 바닥과 침구 모두 내 기준에서는 깨끗하다. 나린 시내를 걸어오면서 느꼈던 우울한 감정이 좀 누그러진다. 가까운 음식점을 구글맵에서 검색했다. 메뉴 사진에 계란을 푼 진라면이 있다. 정작 메뉴판에는 Korean Spicy Soup이라고 있는데, 진라면은 떨어졌고 그냥 라면은 있단다.


라면국물은 역시 예술이다. 어디 라면인지 모르지만 면발과 국물 모두 훌륭했다. 이런 음식점이 숙소 근처에 있다니... 난 참 운이 좋다. 나린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버스터미널도 가깝다. 비슈케크 시간표도 확인할 겸 버스터미널로 걸었다. 첫 마슈루카가 7시 출발인데 18명이 차야 출발한단다. 하루에 4대 있고 요금은 400 솜. 9시 전에만 오면 타는데 문제없단다. 하루에 72명 만이 나린에서 비슈케크로 미니버스 타고 간다는 얘기다. 못 타면 합승택시를 탈 수 있을까? 항상 백업을 생각한다.


나린은 Tash Rabat이란 돌로 지어진 15세기의 실크로드의 호텔(?)과 Kel Suu 호수(고도 3514m)를 가기 위한 베이스캠프다. Kel Suu 호수는 중국과 접경지역이라 Permit이 있어야 한다. 여행사(CBT, Community Based Tourism)를 통하여 신청하면 이틀이 걸린다. 그리고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Tash Rabat은 고도 3030m에 위치하지만 길이 좋아 편도 2시간 이내에 승용차로 갈 수 있다. 다음 날 Tash Rabat 당일 투어 차량을 예약했다. 7,000 솜.


비슈케크 돌아갈 버스 정보도 확실히 얻었고, Tash Rabat day trip도 예약했고, 숙소와 음식점도 마음에 들어 나린이 점점 친근해진다. 여기서 하루 더 잘까?


https://maps.app.goo.gl/3Gbv5TXkbrx4cFyr9

https://maps.app.goo.gl/ABL25NTZu8BE8wWo8


이전 16화 키르기스스탄 1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