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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04. 2024

키르기스스탄 14

Tash Rabat

분명 9시에 픽업 오라고 했는데 8시 반도 안되어 숙소 주인아줌마 알굴이 내 방문을 두드린다. 타쉬 라바트 가는 차가 도착했다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나린의 지금 기온은 13도. 타쉬 라바트의 고도가 3000m가 넘는다. 나린은 고도가 2050m다. 3000m가 넘는 송쿨 호수의 기억이 생생하다. 너무 추웠다. 그렇게 추울 줄 몰랐다. 그래서 오늘은 만반의 준비를 했다. 내복바지를 입었다. 키르기스스탄 여행 와서 처음 입는다. 갖고 왔으니 한 번이라도 입어야 덜 억울하지 하면서...


타쉬 라바트는 승용차(사륜구동 말고)로도 갈 수 있는 곳이라 비용이 좀 쌌는데, 20년 넘은 니산의 패스파인더가 기다리고 있다.  뒷자리에 내 작은 배낭을 놓는데 큰 박스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운전기사는 고조라고 했다. 나린의 남쪽 방향으로 차를 몬다. 남쪽은 산인데... 고개를 오르며 나린을 벗어나면서 공동묘지가 보인다. 키르기스스탄의 묘지는 독특하다. 그냥 흙으로 만든 낮은 봉분 위에 나무인지 돌인지가 꽂혀 있는 것도 있지만 작은 건물 형태를 띠고 있는 것들이 제법 많다. 그래서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엄청 큰 묘지가 여럿 계속된다. 나린이란 도시가 형성된 지 오래되었다는 얘기다. 묘지를 보면 어르신은 잠깐 숙연해진다. 묘한 기분이 든다. 나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르기 때문이다.


타쉬 라바트 가는 길은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왼쪽으로 장엄한 설산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2차선 고속도로가 지평선을 향해 남서쪽으로 곧게 뻗어 있다. 큰 화물트럭들이 자주 오갈 뿐 차량 통행량은 거의 없는데 도로포장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구글맵을 열어보니 남서쪽으로 길게 뻗다가 왼쪽으로 산맥을 크게 돌면서 Torugart란 곳에서 중국 국경을 접한다. 길은 중국의 신장위구르 카스지역과 연결된다. 이 많은 트럭들이 중국을 오가며 상품을 실어 나르는 것이다. Torugart를 향하여 100km 가까이 달리다가 왼쪽으로 타쉬 라바트 14km 표지판이 나온다. 그때부터 비포장이다. 그렇지만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바위산 사이 협곡으로 조금 들어가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석조건물 Tash Rabat이 보인다.


타쉬 라바트 바로 앞의 큰 유르트 캠프에 고조가 차를 세운다. 캠프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서너 명이 달려온다. 그중에 가장 어린아이를 고조가 안으며 격하게 키스한다. 저런 키스는 자기 자식에게나 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여인이 다가와 영어로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유르트 캠프의 여인들과 영어로 소통하기가 쉽다. 어디서 왔는지? 유르트에서 자고 갈 건지? 잘 거면 며칠 밤 잘 건지? 말 타기 할 건지? 밥을 언제 먹을 건지? 등등 서로 의사소통할 내용이 너무 뻔하다.


고조는 차에서 박스를 내리고 유르트 여인들과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타쉬 라바트로 걸어갔다. 건물 출입구는 아직 큰 자물쇠로 굳게 채워져 있다. 건물 주위를 둘러보다가 건물 뒤편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숨이 차다. 70대가 가까워져 숨이 차는 것이 아니고 여기가 3000m가 넘는 고산지대라 그렇다고 위안을 삼는다. 100m 정도 올라갔을까? 돌아보니 일대가 충분히 잘 보인다. 앉아서 물을 마시며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유르트 캠프가 여기저기 보인다. 건너편 언덕에는 말 타고 천천히 이동하는 한 무리의 일행이 보인다.   


타쉬 라바트는 ‘Caravanserei’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불교 수도원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어쨌든 15세기 경의 건축물이라는데 최근에 보수한 흔적이 역력하다. 무너진 아치와 돔 구조를 돌과 시멘트로 엉성하게 복원했다. 감옥이라고 생각되는 방도 있고, 화장실이라고 생각되는 방도 있고, 우물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150 솜의 입장료를 내고 둘러보면서 고단한 삶을 살았던 캐러반이나 수도승이 아니고, 이 건물을 짓는데 동원되었을 노예나 다름없던 인간들이 떠올랐다.


유르트 캠프에는 두 여인이 있다. 한 명은 운전기사 고조의 아내이고, 한 명은 고조의 여동생이란다. 여동생의 남편은 올케의 남자 동생이고 지금 나린에서 일하고 있단다. 이렇게 결혼할 수도 있나 하고 잠시 의아했다. 올케이자 시누이와 함께 유르트 캠프를 운영한다? 어떤 상황일지 짐작이 안 간다. 자매보다 더 가까운 사이일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던데...


유르트 캠프는 가족사업으로 운영한 지 20년이 넘었단다. 5월이 되어 눈이 녹고 길이 열리면 유르트를 설치하고, 9월이 되어 관광객이 끊어지고 눈이 오기 시작하면 유르트를 해체하여 창고에 넣고 철수한단다. 유르트의 운영은 여자들이 맡고 남자들은 고조처럼 운전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한다. 점심 식사는 준비에 한 시간이 걸리고 아침 식사 준비는 30분이라고 하여 달걀이 있는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딱 두 개의 달걀 프라이와 채 썬 당근과 빵과 차가 전부였다. 300 솜.


식사를 마치고 이제 나린으로 돌아갈려는데 고조의 아내가 아들의 옷을 홀딱 벗겨 가방에 넣어준다. 아마도 겨울옷을 집에 갖고 가서 세탁하라는 눈치다. 고조는 이것저것 유르트의 잡일을 도와주고 있는 듯했다. 큰 깔개를 털기도 하고 유르트를 고정하는 줄들을 손보기도 한다.


나린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은 갈 때만은 못했다. 우선 더웠고, 낮이 되자 스모그가 연하게 드리워져 설산의 모습도 아침만 못했다. 그리고 잠이 무섭게 쏟아졌다. 3000m의 송쿨호수에서 돌아오는 길에서도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고산에 적응하는 중이려니 한다. 운전하는 고조도 졸리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되지만 내가 정신을 못 차리겠다. 그러면서도 계속 고민 중이다.


키르기스스탄은 팁문화가 없지만 오늘처럼 여행사를 통하여 투어를 예약하는 사람들은 나 같은 외국관광객이다. 외국관광객을 상대하는 기사나 가이드는 팁을 받는 것에 익숙할 수 있다. 고조도 팁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고조는 자기 집에 갔다 온 것이다. 박스로 유르트에 보급품을 배달했고, 유르트의 세탁물을 집으로 가져가는 중이다. 운전만 했을 뿐 가이드 노릇을 한 것도 아니고 나를 챙겨줄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다. 고조의 점심값을 내가 내줄 수 있지만 자기 집에서 먹는 것을 내게 청구할 수도 없다. 500 솜 정도는 팁으로 줄 수 있지만 지금 내게는 1000 솜짜리 지폐 밖에 없다. 어떻게 하지?

공동묘지
고급유르트라 샤워실이 있다. 찬물로 할 수 있을까?
유르트의 뒷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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