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싶은 것도 없고 필요한 것도 없는.
10월은 좋은 달이다.
한 해의 농작물을 수확하는 여유로운 계절이다. 뿌듯한 시간이다. 그리고 내 생일이 있는 탄신월이다. 생일에 특별한 의미를 나는 부여한다. 또 한 해를 무사히 살아냈다는 뿌듯함에 내 마음이 둥둥 떠다닌다. 특별한 이름조차 없는 66세 생일이다. 탄신월의 시작인 국군의 날이 올해는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었고, 개천절, 한글날 등 휴일이 연달아 온다. 연금생활자는 매일이 휴일이지만, 공휴일은 체육관이 문을 닫아 배드민턴을 못 친다. 그리고 생일(13일)이다.
둥둥 떠다니는 내 마음은 지인들 여기저기 메시지를 보낸다.
'밥 함 먹을까?'
올해 칠순을 맞은 선배가 바로 반응한다.
'오늘 저녁?'
'난 오늘도 좋아!! 최근에 남영동 근사한 양고기집 갔었는데 내가 예약할게. 여섯 시 오케이?'
그렇게 3년 선배 둘이랑 개천절 저녁에 올해 첫 내 생일 만찬을 했다. 보통 음식점을 예약한 사람이 밥 사는 것이 국룰이다. 그러나 오늘 저녁을 정한 선배가 굳이 산단다. 생일축하한다며… 한 선배가 눈에 띄는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그래서 가끔 상대방을 당황케 하는) 내가 물었다.
“그거 진짜야?”
“응”
“얼마 주고 산겨?”
“이천만 원”
“시간 볼 일이 많지?”
“ㅎㅎ”
“난 사람들이 무거운 명품시계를 차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 왜 차고 다니는 거야? 스마트폰이 항상 정확한 시각을 알려주는데…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차고 싶다고 해야 할까?"
"명품시계야 감가상각이 많이 안되니까 나중에 자식한테 물려줄 수 있겠지. 벤츠 S500은 잘 타고 있어?"
"응 잘 타고 다니지."
"암 진단받고 우울해서 지른거잖아? 그렇지만 벤츠 S500은 일 년에 이천만 원 이상 감가상각되고 있는데 잘 샀다고 생각해?"
"네 말 들으니 좀 그렇네. 그렇게 많이 감가상각되고 있다는 것을 꼭 집어 알려주니까. ㅎㅎ"
"난 말이야. 만약 기분이 꿀꿀해서 일 년에 이천만 원씩 쓸 거면, 일단 파타고니아와 아이슬란드를 왕복하는 비즈니스석 비행기표를 살 거야. 한 천만 원씩 하거든. 가고는 싶은데 이제는 도저히 이코노미석 타고 그렇게 멀리 갈 자신이 없어서 못 가고 있거든. ㅎㅎ"
배드민턴 동호회에는 떡을 한 말 주문해서 돌렸다. 10시에 동호회가 시작되고 11시가 되면 보통 안내를 한다. 오늘 어느 회원이 자식 결혼이나 부모 상을 치르거나 좋은 일이 있어서 떡이나 과일을 대접한다고... 내 생일이라 떡과 음료수를 돌린다고 안내가 나가자, 잠시 경기를 중단한 회원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떼창으로 불러준다. 어르신 쑥스럽게...
특별한 일 없어도 나는 한 달에 한 번 초코파이랑 음료수를 돌린다. 회원들 덕분에 배드민턴 정말 재미있게 치고 있다는 내 마음의 표현이다.
아버지 생일 선물을 걱정(?)하는 딸과 아들을 위하여, 나는 보통 생일 한 달 전에 내가 필요한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내가 알아서 살 테니 1/2씩 내게 송금하라고...
그런데 올해는 필요한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갖고 싶은 것도 없다. 생일 당일이 되었건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적 없다. 갖고 싶은 것도 없고 필요한 것도 없는 이런 생일 처음이다.
정말 연로해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