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막 지난 시각에 필리핀에 도착했다.
도착한 그날 저녁 숙소의 TV에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을 보았다. 반복되는 영상을 황당한 마음으로 보는데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있다. 어마무시한 발표를 하는 대통령이 앉아서 한다. 그리고 의자에 앉는 대통령 뒤에서 경호원이 의자를 밀어준다.
이 장면이 왜 불편할까?
고급 레스토랑에서 숙녀가 앉을 때, 신사나 웨이터가 뒤에서 의자를 밀어주는 장면을 외국영화에서나 보았다. 특급호텔의 아주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대국민 담화 생중계 상황에서 보는 것이 심적으로 불편하다. 설마 내가 대통령을 질투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란 용어가 생각났다.
심리학에서, 인지부조화란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불편한 경험 등을 말한다. Leon Festinger의 인지 부조화 이론은 사람들의 내적일관성에 초점을 맞췄다. 불일치를 겪고 있는 개인은 심리적으로 불편해질 것이며, 이런 불일치를 줄이고자 하거나, 불일치를 증가시키는 행동을 피할 것이다. 개인이 이러한 인지부조화를 겪을 때 공격적, 합리화, 퇴행, 고착, 체념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
작금의 상황(2024.12.3 비상계엄 선포)을 보면 대통령이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대통령은 제왕(?)적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심지어 집사람조차 상남자로서 보호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대국민 담화를 앉아서 하고, 경호원이 하인이나 웨이터처럼 의자를 밀어주는 대우를 24시간 받고 있다. 부하라고 생각되는 여당 당대표가 감히 내게 대든다. 이런 인지부조화 상황을 공격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선제적 헛발질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인지부조화는 심리적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요구되고 따라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한다. 심리적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자기 합리화를 한다. 가장 편한 자기 합리화 방법은 남탓하는 것이다. 난 잘못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난 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야당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가 문제다.
계엄선포 이후 한 시간 정도 지났는데 핀란드에서 살고 있는 지인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Hi what happened in your country?'
뭐라고 답하나 고민하다가,
'Stupid President go to hang out his neck by himself.'
2016년 7월 터키(튀르키예)에 혼자 여행을 갔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 날 저녁에 쿠데타가 발생했다. 공항이 폐쇄되었다. 다음 날 아침 받은 문자가 기억난다.
[외교부] 터키 전역 특별여행주의보 발령, 긴급용무가 아닌 한 철수권고 7.16
걸어서라도 가장 가까운 불가리아로 가라는 소린가 했었다.( https://brunch.co.kr/@jkyoon/46 )
누구나 인지부조화를 겪는다. 대부분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추가 정보를 얻어 심리적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더욱 발전된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렇지만 어르신은 지식이나 정보 습득에 취약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분노(?)하거나 체념한다. 체념한 조용하고 얌전한 노인네가 되거나, 화 잘 내는 성질 고약한 노인네가 되는 것이다.
전혀 다른 문화권을 방랑하다 보면, 새로운 상황에 마주쳐 인지부조화를 겪는다.
기존 갖고 있던 가치관, 도덕, 정의, 예절, 관습 등의 적용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 말이다. 동물적 본능이 주체 못 할 정도로 용솟음치거나, 선천적 호기심이 심하게 발동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인지부조화와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