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어디에 실존하는가?
꽝하는 큰 폭발음과 건물의 흔들림에 잠이 깼다. 순간적으로 지진인가 했다. 예전에 터키 전역이 큰 지진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지진이면 지금있는 4층에서 얼른 호텔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폭발음 바로 이전의 비행기 소리가 떠올랐다. 지진이 아니고 공습인가 보다. 스마트폰을 켜니 새벽 네시반이다. 무지많은 카톡메시지 알림이 눈에 들어온다. 터키에 쿠데타가 일어났단다. 공항과 보스포러스해협을 건너는 다리들이 봉쇄되었단다. 대통령이 망명을 고려중이란다. 가족들과 친지들의 카톡에 잘 있다고 답하면서 내가 지금 어디 있는가를 다시 떠올렸다.
어제 아침 10:20 서울을 출발하여 6시간 시차가 있는 터키 이스탄불에 오후 4시 도착하였다. 거의 12시간에 가까운 먼 곳이다. 이번 터키여행은 3월초에 산 비행기표 때문이다. 정확히 3월6일에 아시아나 직항왕복편을 80만원대에 하나투어를 통하여 샀다. 누구와 상의하지도 않고 동행을 구하지도 않고 3주간의 나 혼자만의 배낭여행을 꿈꾸며...
터키에서 계속 테러가 발생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잠잠해질줄 알았다. 그러나 출발 이주전에 이스탄불 공항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가족친지들 모두 가지말라 하는 중에 여행사에서 전화가 왔다. 출발일 변경 페날티없이 8월말까지 출발일 연기를 해준다고... 그러나 비행기표 차액은 지불해야 한다고... 그래서 출발일을 한주 뒤로 미루면 차액이 얼마냐고 물었다. 아시아나항공에 확인하고 돌아온 답은 어이없게도 차액이 80만원이란다. 혹시 모를 추가 테러에 대비하여 항공사로서는 일자변경의 혜택을 제공했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함일 것이다. 만약 페날티 없이 비행기표를 전액 환불해준다면 나도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주변에서 위험하다고 말리는 그 곳을 혼자서 무려 3주간이나 돌아다닌다는 것이 나도 부담스러웠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냥 왔다. 결국 오기때문에 온 것이다.
이스탄불 오는 비행기 안은 역시 럴럴했다. 전체좌석의 반 정도 찬 것 같았다. 창가쪽 두자리를 차지하고 편하게 왔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여행객들이 제법 많았다. 단체여행객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6월 28일에 폭탄테러가 있었던 아타튀르크국제공항은 여느때나 다름없는듯 보였다. 많은 유럽관광객들과 터키사람들로 붐볐고, 공항 주기장에 서있는 무지하게 많은 항공기들로 이 곳이 유럽에서 세번째로 붐비는 공항이란 것을 실감했다. 그러나 Passport control 앞의 긴 줄을 본 순간 약간의 짜증과 함께 후회가 되었다. 그 긴줄에 두시간을 꼬박 서 있으면서 내가 이 나이에 이 무슨 고생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호텔에 픽업서비스도 부탁해 놨는데 너무 늦어서 가버렸으면 어떡하나하고 괜한 걱정도 했다. 두시간을 배낭을 메고 서 있으려니 어깨가 죽을 맛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배낭을 부칠껄하고 후회도 했다. 배낭의 무게가 자신의 업보라더니...
폭발의 흔적은 이미 다 치워졌는지 공항은 마중나온 사람들과 여행객으로 인산인해였다. 나를 픽업온 운전수와 공항로비를 나가면서 물었다. 어디에서 폭발이 있었냐고... 세개의 폭탄이 터진 곳을 가리키며 내게 친절하게 설명한다. 세 군데서나 터졌다고? 그러나 공항출구는 여전히 붐비고 있었다. 아무일 없다는듯이... 총을 든 군인이나 경찰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삼엄한 경비는 없었다. 그 몇시간 뒤에 쿠데타군이 나타나 공항을 접수했지만...
[외교부] 터키 전역 특별여행주의보 발령, 긴급용무가 아닌한 철수권고 7.16
호텔의 아침부페를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위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내가 용무가 있어서 터키에 왔나? 긴급한 일이 내게 무엇인가? 터키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나는 이스탄불 호텔에 '실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