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가격 안정화를 위한 근본적 해결방법
농산물 유통에 있어 해외 농업선진국들은 선물거래를 핵심 수단으로 활용한다. 미국의 경우 선물상품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국제무역에서도 선물거래를 기반으로 농산물 대량유통이 이루어진다. 선물거래는 원유나 광석 등 다른 천연자원에서도 기본적으로 활용되는 거래 방식이다.
반면 한국은 자본시스템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농산물 거래에서 '선물'이라는 개념이 입도선매의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고려되는 실정이다. 국산 농산물의 대량 수매 필요성이 크지 않다 보니 선물거래 시스템을 구축할 동기가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유통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내 농산물은 작은 수확량 변동에도 가격이 크게 요동친다.
온라인 유통거래 시스템을 만든다고 해서 농산물 물가가 안정될까? 그럴 가능성은 낮다. 가격 변동의 핵심 원인이 유통업자의 마진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쌀값이 폭등한다고 하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폭락이었다. 폭등이든 폭락이든, 문제의 본질은 기본적인 쌀값조차 꾸준히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쌀 소비는 갑자기 늘거나 줄지 않는다. 과거에 "일본 관광객이 많이 들어와 밥을 많이 먹어서 쌀값이 올라간다"는 농담을 진짜로 믿었던 적도 있었다. 인구가 10% 정도 증감해야 쌀 소비량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것이다. 소비는 일정하게 줄고 있거나, 가공용으로 보완되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데, 왜 쌀 가격이 폭등할까?
쌀은 필수 식량이기에 항상 일정량의 재고를 유지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흉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정부가 남는 쌀을 사들여 물가를 조정한다. 그러나 가끔 과잉 또는 과소 매입이 발생하면 그때 쌀값이 급변하게 된다.
선물거래는 수요자가 원료 농산물을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미리 생산자에게 대금을 지불하고 미래의 농산물을 확보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선물거래의 핵심 효과는 가격 안정과 수요 안정이다.
이런 시스템 없이 농산물 물가가 안정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확률이 매우 낮고 어려운 일이다.
선물거래는 숏(short) 또는 롱(long) 포지션을 통해 기후변화나 생산환경 변화에 따른 물량 조절을 가격으로 커버할 수 있다. 선물거래를 상품화한다는 것은 정말 전문적인 지식과 통찰이 필요한 일이다.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채권 상품화 수준에 머물러 있을 정도로 덜 발달되어 있다. 중국, 홍콩, 싱가포르의 주식시장과 유가증권시장이 한국보다 더 선진적일 것이다. 한국은 주식거래만 활발할 뿐, 그 외의 유가증권거래는 소수 전문가들만 참여하는 상황이다.
농산물 거래와 유통은 결국 금융에서 풀어야 한다. 농협에 농산물 유통과 금융 기능이 통합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이 두 가지 핵심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농업경제 부문에서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낸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농산물 유통과 금융을 제대로 결합할 수 있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유통 전문가와 금융 전문가를 모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서양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이 가져온 현대 문명의 혁명적 원리가 내포되어 있다.
한국에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원천의 원천 기술까지 이해하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원천 기술을 이해하려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와 과학의 본질을 깊이 있게 알아야 하는데, 우리 교육 시스템은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고, 결과만 잘 활용하면 된다"는 식으로 가르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원천을 발견할 수 있는 인재가 나오기 어렵다.
과거 어떤 유니콘 기업이 농산물 거래시스템으로 1조 원이 넘는 가치로 평가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난 드디어 농산물 선물시장이 한국에 들어오는 구나 라고 잔뜩 기대를 햇었는데. 하는 걸 가만 보니 그냥 중개 수수료 따먹는 거였다.
선물 거래는 단순히 그런 게 아닌데.. 보다 더 깊은 농산물 유통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필요한 건데. 참 아쉬웠다.
농업경제학과에서는 반드시 선물거래에 대해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단순히 기존의 선물상품이 아니라, 국산 농산물을 어떻게 선물화할 것인지에 대한 혁신적인 시스템을 누군가 만들어낸다면, 대한민국 농업의 역사는 그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